
방치된 작품 330여점·자료 1천여점 '道미술관 특별전'
경인·경수지역 활동 초점… 복제 용이 '판화' 상당수
중심축 역할 '미술동인 두렁' 압수당한 15점 최초 공개
여성운동 작품에 유홍준·백기완·김윤수 원고도 눈길
1980년 5월 18일을 전후해 광주와 전남 일원에서 발생한 신군부의 집권 음모를 규탄하고, 민주주의의 실현을 요구한 '5·18 민주화운동'은 1980년대 사회운동의 주요한 동력으로 작용했다.
당시 전국 각지에서 발생한 다양한 사회운동은 학생, 노동자, 여성 등 사회 중간 계층의 참여 확대로 그 어느 때보다 열기가 뜨거웠다.
사회운동은 문화예술계까지 퍼졌다. 이들은 당시 사회 문제와 현상을 펜으로 노래로 담아내며 목소리를 높이는 데 동참했다.
미술운동을 기획하고 실천한 작가들에게 '전위·저항·실천'은 주요한 시대 정신이었고, 이들은 삶과 예술이 다르지 않음을 작품 속에 녹여냈다. 이런 미술운동은 전국 각지에서 펼쳐졌다.
보통 소규모 예술가로 구성된 '소집단'의 활동이 활발하게 이뤄졌는데, 안타깝게도 이들에 대한 기록은 거의 남아있지 않거나, 미술사에도 정리되지 않은 채 방치됐다.

경기도미술관은 1980년대 미술운동을 정리한 특별한 전시를 준비했다.
경인(서울-인천)·경수(서울-수원) 지역에서 펼쳐졌던 미술운동에 집중한 '시점(時點)·시점(視點)-1980년대 소집단 미술운동 아카이브' 전이다.
전시는 1980년대 한국 사회의 변화의 한 축을 견인하며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낸 서울, 경기, 인천지역 소집단 미술운동을 당대의 자료와 작품을 통해 새롭게 조명한다.
특히 이번 전시가 특별한 건 지난 30여 년 동안 잊혀진 채 방치돼 온 소집단들의 주요 미술작품 330여 점과 자료 1천여 점을 만날 수 있다는 점이다.
30년이라는 시간을 정리한 만큼 전시의 규모는 방대하다. 전시장 입구에 들어서면 1979년부터 1990년까지 활동했던 소집단들의 활동들을 살펴볼 수 있는데, 전시의 흐름을 알아보기 쉽게 정리했기 때문에 꼼꼼하게 읽고 가는 것을 추천한다.
1980년대 활동했던 소집단들은 대부분 서울에서 탄생했다. 홍대 등 미술대학이 서울에 위치해 있어 주로 이곳에서 결성됐고, 활동은 인천, 수원, 안양, 부천 등 지역 곳곳에서 이어졌다.
전시장에 걸린 작품들을 감상하다 보면 유독 판화가 많은 점이 눈에 들어온다. 복제가 가능한 판화는 싼값에 많은 사람에게 배포할 수 있는 장점이 있어 이 시기에 판화운동이 활발하게 이뤄졌다.
고가의 작품을 한 개인이 소유하게 하는 것보다 많이 찍어서 모든 사람이 볼 수 있게 하는 것이 1980년대 미술운동의 일환이었기 때문이다.
전시에서 소개되는 소집단들과 연결된 가장 중요한 소집단은 '미술동인 두렁'이다.

이 소집단은 1984년 창립전을 열 때 길놀이와 열림굿을 펼쳤는데, 당시 걸었던 걸개그림은 1980년대 미술운동에서 중요한 형식이었다.
전시장에는 열림굿 재연을 위해 걸개그림 4개를 재제작했다. 김봉준 주필로 '조선수난민중해원탱', '갑오농민신위', '여신위', '해방의 십자가' 등이 걸렸다.
특히 이 자리에서는 '1985년, 한국 미술, 20대의 힘' 전에서 경찰에 압수돼 자취를 감췄던 미술동인 두렁의 작품 15점을 발굴해 처음으로 관람객에게 공개해 눈길을 끈다.
여성운동의 발자취도 살펴볼 수 있다. 여성 작가들로 이뤄진 '시월모임'의 다양한 작품을 만날 수 있는데, 여성문제를 인식하고, 여성해방을 외쳤던 이들의 작품들은 1980년대 문화예술계를 발칵 뒤집었다.
또 시대정신기획위원회가 엮은 '시대정신' 관련 자료 중 미술평론가 유홍준의 번역 원고와 백기완, 김윤수 선생의 친필 원고를 비롯해 책을 편집하기 위해 수집했던 희귀 사진과 작품들도 소개된다.
전시를 기획한 김종길 경기도미술관 학예실장은 "1980년대 한국사회는 변화에 대한 요구가 그 어느 때 보다 강렬하게 분출하던 시기로 경인, 경수지역의 미술인 역시 그 변화의 한 축을 견인하며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낸 시대의 주인공이었다. 이번 전시가 한국현대미술사 서술의 새로운 시점이 되기를 기대해본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는 오는 2월 2일까지 계속된다.
/강효선기자 khs77@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