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시속 두 노동자의 용감한 활동

일제는 조병창을 본격적으로 운영한 1941년부터 매년 엄청난 양의 군수물자를 생산했다. 일제는 생산량을 맞추기 위해 조선인 노동자를 대규모로 동원했다. 전쟁 말기에는 초등학교를 갓 졸업한 어린 학생까지 강제 동원했다.
한반도 최대 규모의 군수공장인 조병창에선 소총과 포탄, 탄환뿐만 아니라 선박과 무전기까지 만들었는데, 조선인 노동자들에게 같은 공정만 반복하게 했다.
자신이 무엇을 만드는지도 모르게 했다. 인천대학교 이상의 교수가 2017년 7~8월 조병창 노동자 12명의 구술을 채록한 자료를 보면 한 노동자는 부품검사를 하고 이상이 없으면 탄창에 쇠도장을 찍는 업무만 했다.
다른 노동자는 칼이 제대로 만들어졌는지 판단하는 단순한 일만 했다. 조선인 노동자들이 무기 제조 종합기술을 습득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한 방편이었다.
일제의 엄중한 감시 속에서도 조선인 노동자들은 조병창에 들어가 무기를 밀반출하거나 무기 제조법을 빼내려고 했다. 독립운동가 오순환(1921~1992)과 황장연(1923~2008)이 대표적이다.
오순환은 조병창에 위장취업해 무기 제조법을 배우려고 했다. 그는 조병창에서 배운 기술로 무기를 만들어 조선 총독이나 일제 고관을 처단하고자 했다.
오순환의 계획은 안타깝게도 조병창 내에서 적발돼 실패로 돌아갔으나, 독립운동가들이 암시장에서 총기를 구매했던 점을 고려하면 매우 획기적인 시도였다.
황장연은 조병창에서 만든 무기를 빼돌리려 했다. 황장연은 동료 30여 명을 모아 '고려재건당(高麗再建黨)'을 조직했다. 또 임시정부 요원과 접선해 권총 3정과 실탄 50발을 전달하려고 했다.
조병창 침투 독립운동은 제대로 조명되지 못했다. 조병창은 해방 이후 미군부지로 징발당했다. '애스컴씨티'와 '캠프마켓'이다. 캠프마켓 부지반환을 앞둔 지금, 조병창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를 우리가 다시 주목할 필요가 있다.
/김주엽기자 kjy86@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