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대북특별대표 겸 부장관이 19일 예정에 없던 방중을 통해 중국과 북미 대화 재개를 모색했으나 기대를 모았던 북미간 접촉은 무산됐다.
그러나 비건 대표는 이번 방중 기간 중국 외교 당국자들과 연쇄 접촉하면서 유엔 대북 제재 대오에서 이탈하지 말 것과 중국이 북미 대화 재개를 위해 북한에 영향력을 행사해달라고 요청하는 등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9일 베이징(北京)에 도착한 비건 대표는 방중 일정을 마치고 20일 오후 서우두(首都) 공항에서 유나이티드 항공 UA808편을 타고 귀국길에 올랐다.
비건 대표는 이날 북미대화를 위해 평양행 항공편에 탑승할 것이라는 관측도 있었으나 예정된 일정을 마친 뒤 즉시 워싱턴으로 떠났다.
앞서 전날 평양발 고려항공을 통해 북한 고위급이 베이징으로 나오지 않아 베이징에서도 북미간 접촉도 이뤄지지 않았다.
비건 대표는 공항에서 북한 측과 접촉했느냐는 연합뉴스 기자의 질문에 "이번에는 노코멘트하겠다"고 짧게 답을 한 뒤 탑승장으로 향했다.
그는 또 중국에 온 목적이 뭐냐는 질문에도 아무런 답변을 하지 않았다.
미국 국무부는 19일(현지시간) 비건 대표가 북한과 접촉할지와 관련해 "발표할 추가적 방문이나 만남이 없다"고 밝혀 성사 가능성이 작다고 밝힌 바 있다.
다른 소식통은 "비건 대표가 방중한 것은 대북 문제 관련 중국과 상의가 주목적이었지만 극적인 북한과 접촉 가능성도 내심 염두에 뒀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비건 대표는 전날 뤄자오후이(羅照輝) 중국 외교부 부부장과 만난 데 이어 20일 오전에는 러위청(樂玉成) 외교부 부부장과도 만나 북한 비핵화 해법에 대해 깊이 있는 의견을 교환했다.
비건 대표와 회동에서 뤄 부부장은 미국에 대북제재 완화 등 유화적 조치를 통해 북한과 대화와 협상, 정치적 해결에 나서는 방안을 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뤄 부부장은 중국의 기존 북핵 해법인 북미 간 단계적, 동시적 행동원칙을 강조해 미국이 원하는 일괄 타결 방안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피력한 것으로 보인다.
러 부부장은 비건 대표와 회동에서 미중관계에 대해 중점적으로 의견을 교환했다.
러 부부장은 비건 대표에게 "현재 중미관계는 상당히 곤란한 상황을 맞았고, 그 원인은 미국 일부 인사의 대(對)중 인식이 편견에 사로잡혔기 때문"이라며 "중국은 미국과 패권과 왕위를 다투는 데 흥미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우리는 미국과 함께 노력해 상호 존중과 협력 공영을 실현하길 원한다"며 "미국이 양국 정상이 달성한 공동 인식에 따라 협력과 안정을 기조로 한 중미관계를 추진하기를 촉구한다"고 덧붙였다.
비건 대표는 최대한의 대북 제재 압박이 현재의 북한 비핵화 협상으로 이어졌다면서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중국이 대북 제재 전선에서 이탈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북한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중국이 북한의 연말 도발 자제와 북미 대화 재개에 역할을 해 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보인다.
비건 대표와 러위청 부부장과 회동에서도 대북 문제와 관련해 비슷한 내용이 논의된 것으로 전해졌다.
한 소식통은 "비건 대표의 갑작스러운 방중은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중국과 러시아가 대북 제재 완화안을 제기함에 따라 이를 잠재우며 대북 압박 대오를 추스르기 위한 목적이 크다"고 말했다.
주목할 점은 중국은 이번 대북 제재 완화 결의안 초안과 외교부 브리핑 등을 통해 6자 회담 재개를 주장하고 있어, 이번 북미 간 회동에서도 논의됐을 가능성이 크다.
6자 회담은 북핵 문제 처리에서 남북한,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이 참여하는 체제다. 의장국이 중국이라는 점에서 6자 회담 재개시 사실상 중국이 주도권을 쥐는 것으로 미국뿐만 아니라 북한도 반대하는 상황이다. /베이징=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