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자년 새해를 맞이해 '이슬처럼봉사회' 손복자(62) 회장이 장애인들과 진솔한 만남을 계속 이어가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동두천/오연근기자 oyk@kyeongin.com

수시로 이벤트 '삶의 의욕' 북돋아줘
암수술후 자리박차고 나와 김장담가
기관지원 대신 회원간 십시일반 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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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처럼 맑고 투명하게, 작은 물방울 하나라도 소중하게, 봉사 후에는 소리없이 사라지자'.

손복자(62)씨가 구성한 '이슬처럼봉사회'(이하 봉사회)의 창단 정신이다. 손씨는 우연히 시각장애인을 만나 단순한 도움을 줬는데, 그때의 인연으로 20여년 째 시각장애인을 돕고 있다.

당시 생각이 같은 지인 5명이 봉사 동아리를 구성해 활동한 것이 지금은 봉사단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만큼 구색을 갖춘 봉사회가 됐다. 손씨는 22명이 활동하는 이 봉사회의 회장이다.

우연이 손 회장을 이토록 오래 붙잡고 있었던 데는 깨달음이 있었다.

그는 "시각을 잃어버려 아름다운 세상을 보지 못하는 안타까움도 있지만 그보다는 작은 위기도 이들의 생명을 위협할 수 있다는 두려움이었다"며 "얼떨결에 잡은 손이라도 그 손을 놔 죽음으로 내민 것이 된다면, 당신은 손을 놓을 수 있겠나"라고 반문했다.

봉사회는 틈날 때마다 장애인들을 위해 자장면 나눔, 국수바자회, 김장 등 봉사활동을 하며 그들 곁을 지켰다. 봄과 가을에 각각 갯벌체험, 흰 지팡이 행사 등을 하며 시각장애인들에게 삶의 의욕을 불어넣었다.

그냥 행사일 수 있겠지만, 함께 어울리고 웃을 수 있는 이벤트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시각장애인들의 기쁨은 컸다.

봉사활동으로 삶의 빛을 본 것은 봉사 수혜자만이 아니다. 손 회장은 2015년 6월 갑상선암이 찾아왔을 때를 돌이켰다.

"수술을 마치고 의사는 안정하라고 주문했어요. 집이든 병원이든 몸을 쉬라는 거죠. 근데 누워있으면 있을수록 환자가 됐어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그해 늦가을, 매년 하던 김장을 하겠다고 나섰습니다. 시각장애인들을 위해 김장 400포기를 담갔어요. 배추를 씻고, 절이고, 속을 버무리고, 배추에 바르는 그 일을 같이 했죠. 그제서야 '살아있다'고 느꼈어요. 몸을 갉아먹는 암덩어리가 아니라 샘솟는 희망을 느꼈습니다."

시각장애인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타인의 도움을 필요로 해 일이 많다. 때문에 가끔 피로감으로 회원들 사이 의견이 평행선을 이룰 때도 있다.

손 회장은 "의견 조율은 크게 어렵지 않다"며 "회원들이 어려운 사람을 돕고 배려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뭉쳐 있어 한번 의견차이를 넘어설 때마다 서로 이해의 폭이 넓어졌다"고 어깨를 으쓱했다.

긴 세월을 남을 위해 살며 특별히 감사한 사람이 있을까.

손 회장은 "봉사활동에만 집착한 나머지 집을 자주 비우는 엄마를 향해 '장애인이 밉다'고 투정을 부렸던 두 딸아이가 이젠 중년을 바라보고 있다. 그럴 때마다 '내가 없으면 장애인은 손과 발이 없는 것과 같다'고 했는데, 엄마를 이해해주며 잘 성장한 딸들이 너무 고맙다"고 싱긋 웃었다.

이어 "기관 지원을 받아 단체를 운영할 수 있지만 봉사회 회원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순수한 마음을 이어가자며 십시일반 작은 정성을 모으고 있다. 마음이 힘들고 지쳐도 함께 해준 회원들이 너무 감사하다. 앞으로도 회원들과 동고동락하며 행복을 꿈꾸겠다"고 다짐했다.

동두천/오연근기자 oyk@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