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산한 판교테크노밸리
판교테크노밸리 한 상가건물 공실에 임차인을 구하는 현수막이 붙어있다. 김금보기자 artomate@kyeongin.com

투자자 조급함·결정권 쥐지못한 공공기관
난관 맞물려 현재 모습 머물러
지붕 덮는 초기계획 비용문제로 취소
올해부터 '10년 전매제한' 해제
인프라 악화로 기업들 외부이동 우려도


판교 상권의 위기는 곧 판교의 위기다.

IT산업 기반의 기업하기 좋은 곳은 여전히 유효하지만 상권이 붕괴되면 곧 생활 인프라가 무너지는 것이고 기업환경도 덩달아 악화되기 때문이다.

 

특히 올해부터 10년 전매제한이 풀리는데, 인프라 악화로 판교 기업들의 외부 이동이 현실화 될 수 있다.

이 위기의 근본적인 원인을 두고 '문화'의 부재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많다. 개발 당시부터 벤처산단의 업무 효율성에만 매몰된 나머지 사람을 모을 수 있는 구심점을 고민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사람이 모여야 상권이 활성화되는데, 문화가 없는 판교는 일하는 시간 외에 사람을 불러모으는 데 실패했다.

문화의 부재를 아쉬워하는 지점에 '알파돔시티'가 있다. 판교역 알파돔시티는 판교 상권의 중심부에 자리한 5조원 규모의 매머드급 사업이다.

알파돔시티는 축구장 16개를 모은 면적(13만7천497㎡)에 4개의 주축 건물을 세우고 그 위에 지붕(돔)을 덮는 프로젝트였다. 

 

부산 신세계 센텀시티의 4배, 영등포 타임스퀘어의 3배가 넘는 거대한 상업복합시설을 조성해 "강남 상권 수요를 끌어들이겠다"는 목표에서 시작했다.

이상후 전 LH 부사장은 "주말이면 강남역 뒷골목에 젊은이들이 넘쳐난다. 수도권의 젊은 층이 더 이상 강남을 가지 않고 판교로 모이게 하는 게 알파돔시티의 목표였다"고 설명했다.

알파돔시티의 변천사는 판교 상권의 성공과 실패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영화 스튜디오와 K-POP 타운과 같은 콘텐츠 외에도 알파돔시티에서 '판교 문화'를 만들어 내려는 시도는 여럿 있었다. 

 

알파돔시티에 러시아 볼쇼이 발레단을 유치해 발레 아카데미를 만드는 것, 실크로드가 경유하는 아시아와 유럽 국가를 묶어 나라별 공연을 연중 펼치는 구상이 그런 시도의 일환이었다.

만약 발레 아카데미를 유치할 수 있었다면 최근 유아와 성인을 막론하고 열풍처럼 번진 발레 인기에 힘입어 직장인 외 사람을 결집시키는 효과가 있었을 것이다. 

 

실크로드 국가를 주제로 펼치는 공연은 애초 목표가 관광 목적의 외부인을 끌어들이자는 취지였다.

판교 알파돔시티3
강남상권 수요를 끌어들이는 거대한 상업복합시설을 목표로 출발한 알파돔시티 사업은 여러 한계에 부딪히면서 여느 중심상가 수준의 상권을 조성하는 데 그쳤다. 사진은 판교역 광장을 중심으로 신축 중인 알파돔시티 2개동 건설현장. /임열수기자 pplys@kyeongin.com

알파돔시티가 꿈꾼 건 '한국의 롯폰기(六本木)'였다. 

 

8개의 대형 건물이 모인 일본 도쿄 최고의 번화가 롯폰기는 '모리그룹'이 주도권을 가지고 개발해 성공했다. 

 

모리그룹이 과반 지분을 보유한 채 명확한 상권 콘셉트를 바탕으로 건물마다 '여성용 명품', '이벤트', '미술', '전망' 등의 콘셉트를 부여해 유기적으로 어울려 상권을 형성하고 조율한다.

그 결과 80년대 전까지 도쿄 주변부에 불과했던 롯폰기는 한해 1천500만명이 찾는 명소로 탈바꿈됐다.

반면 알파돔시티 프로젝트가 기대만큼의 성과를 내지 못한 건 의사결정 과정에서 민간과 공공, 어느 한쪽도 주도권을 쥐지 못한 탓이 컸다. 

 

알파돔시티 프로젝트는 LH를 포함한 민관합동 PF(프로젝트 파이낸싱)가 맡았다. 관련 법상 공공기관(LH)의 투자는 20% 이내로 제한됐다. 공공기관의 땅장사를 막겠다는 게 관련 법의 취지다.

공공기관은 당장 자금을 회수할 수 없더라도 20~30년을 내다보고 투자할 수 있지만, 민간 투자자들은 빠른 자금 회수가 급선무다. 

 

영화, K-POP, 발레, 연중 공연과 같은 콘텐츠들이 민간 투자자들의 반대 속에 무산되면서 최대한 빨리 자금을 회수할 수 있는 방향으로 개발이 진행됐고, 결과적으로 알파돔시티를 관통하는 정체성도 흐려졌다.

판교역 상권이 구심점 없이 목 좋은 상점을 모아놓는 데만 그치자 '롯폰기'가 아닌 신도시에 흔히 볼 수 있는 중심 상가 정도의 수준으로 전락했다.

최근 흐름은 거대 상권에도 일관된 정체성을 부여하는 게 추세다. 사양길에 접어든 코엑스를 신세계가 인수해 '스타필드'로 일관되게 리모델링하자 상권이 되살아난 것이 대표적인 예다.

판교역 상권의 상징인 알파돔시티는 단기 투자회수를 목적으로 한 민간 투자자들의 조급함과 지분 제약으로 결정권을 쥐지 못한 공공기관의 한계가 맞물려 현재 모습에 머물렀다.

LH와 대한지방행정공제회 등이 가지고 있던 알파돔시티 건물은 현재 각각 신한알파리츠·미래에셋으로 소유권이 넘어간 상태다. 

 

모두 4개 건물이 주축인 알파돔시티는 2개 건물이 완성됐고, 2개 건물은 공사가 진행 중이다. 4개 건물 위를 지붕(돔)으로 덮는 애초 계획은 취소됐다. 역시 비용 문제였다. 알파돔시티에는 돔이 없다.

돔 없는 알파돔처럼 가장 성공한 신도시 판교에는 주중·낮에만 붐빌 뿐 밤과 주말엔 사람이 모이지 않는다. 판교가 반쪽짜리 성공인 이유다.

/기획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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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취재팀

글: 공지영차장, 신지영, 김준석기자
사진: 임열수부장, 강승호차장, 김금보기자
편집: 안광열차장, 장주석, 연주훈기자
그래픽: 박성현, 성옥희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