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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만대 팔아야 흑자로… 10년간 달성 못해
러시아·우크라이나 무역분쟁 탓 수출 급감
전기차 출시 지연으로 400억 영업손실 전망

노사 위기 극복 노력… 복지비 500억 절감
산업은행에 대출 만기연장·추가자금 요청
선 그었지만… 2009년 구조조정 악몽 아른

# 쌍용차, 위기의 실체

마힌드라 고엔카 의장의 지원 요청에 산업은행은 "마힌드라의 구체적인 투자 계획과 의지가 우선"이라는 입장을 보였다.

 

고엔카 의장이 산업은행을 찾은 직후, 산업은행장과 만난 자유한국당 원유철(평택시갑) 의원은 "마힌드라가 투자 의지를 보여야 한다는 원론적인 입장만 확인했다"고 면담 내용을 전했다.

국내 자동차산업 연구의 권위자로 꼽히는 이항구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결국 산업은행이 지원은 할 것"이라고 전망하면서도 "쌍용자동차 정상화는 지원으로 풀릴 문제가 아니다"고 선을 그었다. 

 

그는 1987년부터 국책 연구기관인 산업연구원에서 연구 활동을 펼쳐왔고 지난 1999년, 2009년, 2018년 쌍용차 관련 정부 TF에 모두 참여한 인물이다.

2013년 산업연구원이 2곳의 회계법인에 분석을 의뢰한 결과, 쌍용차는 매년 17만대를 팔아야 흑자로 전환(BEP)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쌍용차 사태 이후 10년 간 한 번도 달성한 적이 없는 수치다. 쌍용자동차는 2018년 14만3천309대, 지난해 13만5천235대를 판매했다.

특히 쌍용차의 위기는 수출이 가장 큰 원인 중 하나다. 지난해에도 내수가 10만7천789대, 수출이 2만7천446대였다. 한때 쌍용차도 수출이 호조일 때, 연간 8만대 가량을 해외에서 판매했다. 

 

그 중 3만 대를 러시아·우크라이나에 팔았다. 이 두 국가는 쌍용차의 주요 수출국이었는데, 지난 2013년부터 무역분쟁을 겪으며 수출이 급감했다. 

 

연간 약 8천대를 팔았던 이란은 핵 문제로 미국과 갈등을 겪으면서 수출길이 막혔고, 연간 1만5천대를 수출했던 페루·칠레·베네수엘라 등 남미 국가는 멕시코 장벽 건설 이후 경기 부진과 내부 분쟁으로 수출 악재를 겪었다. 

 

결국 5만대 정도의 수출물량이 순감했고, 유럽과 뉴질랜드·호주 등 아태 지역에만 연 3만대 가량을 수출하고 있다.

수출 물량의 급감보다 더 큰 문제는 유럽 시장이다. 

 

오는 2021년부터 유럽은 내연기관 차량의 이산화탄소 배출량 규제를 ㎞당 130g에서 95g으로 강화한다. 배출 규제를 넘기면 g당 95유로의 벌금을 내야 한다. 

 

이 연구위원은 "쉽게 얘기해 100원을 벌더라도 130원을 벌금으로 내야 하는 꼴"이라고 비유했다.

쌍용차는 중형차에 해당하는 C세그먼트 전기차를 내년에 출시한다. 일각에선 올해 전기차를 생산해야 했지만, 만들지 못했다. 그로 인한 영업손실은 약 400억원에 이를 것이란 예측도 나온다. 

 

미래 자동차 시장에 대한 준비가 제대로 돼 있지 않다는 방증인데, 국내 자동차 산업의 틀에서 보면 더욱 절망적이다. 

 

이 연구위원은 "더 심각한 건 국내 자동차 부품 업체 중 미래차를 준비하는 업체가 4%밖에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부품 업체가 뒷받침이 돼야 완성차 업체도 미래차를 생산할 수 있는데 당장은 그럴 수 있는 부품업체가 거의 없다. 해외 산업구조가 빠르게 변화하는데, 전혀 따라가질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2009년보다 해법이 더 복잡해졌다"면서 "쌍용차 문제는 자동차 산업 전체의 문제와 이를 대비하지 못한 부품 산업의 문제가 얽혀 있다"고 설명했다.

게다가 국내시장도 문제다. 쌍용차의 최대 강점인 'SUV'가 시장의 포화를 겪고 있는 것. 

 

쌍용차는 준중형에 해당하는 B세그먼트에 티볼리, 중형차인 C세그먼트에 코란도, D세그먼트에 G4 렉스턴을 주력 차종으로 생산한다.

 

2015년 출시 이후 티볼리가 연간 10만대 규모인 B세그먼트 SUV 시장을 휩쓸었지만, 현대자동차의 베뉴·코나와 기아자동차의 니로·스토닉·셀토스, 한국GM의 트랙스·트레일블레이저, 르노삼성의 QM3 등 다양한 차들이 진입하며 예전만큼 인기를 끌지 못하고 있다.

쌍용차와 한국GM, 르노삼성 등 이른바 자동차 '3사'의 역학관계도 난제다. 한국GM은 산업은행이 2대 주주였기 때문에 비교적 지원의 명분이 있었지만, 쌍용차에게 산업은행은 단순 채권자에 불과하다. 

 

여기에 서서히 위기가 표면화되고 있는 르노삼성도 문제다. 만약 산업은행이 쌍용차를 지원할 경우, 르노삼성도 지원을 요청할 가능성이 커진다. 

 

특히 2022년이면 한국GM의 지원 5개년 계획이 끝나는데, 대통령 선거를 앞둔 시점이라 3사가 모두 정부 지원을 바라는 상황이 초래될 수도 있다는 분석이 많다.

이 연구위원은 "쌍용차에 포드 간판을 붙여 팔겠다는 계획도 있는데, 지난해 포드 영업이익이 5%에 불과했다. 평균 영업이익이 7~8%였는데 이를 밑돌았다는 건 여력이 없다는 뜻이다. 

 

1% 정도만 해도 천문학적인 액수라 (포드 매출) 타격은 클 것"이라고 고개를 저었다. 그러면서 "마힌드라가 5천억원에 쌍용차를 인수해 1천300억원만 투자했다.

 

연평균으로 따지면 얼마 되지 않는 금액이다. 그런 면에선 2009년과 지금 유동성 위기를 겪는 형태는 너무나 비슷하다"고 덧붙였다.

결국 현재 쌍용차가 겪는 위기는 상하이차 인수 이후 맞았던 2009년과 닮아 있으면서도 해법을 찾는 과정은 더 복잡하고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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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데칼코마니', 겨울이 다가온다


다시 찾아온 유동성 위기를 극복하고자 쌍용차 노사는 각고의 노력을 다하고 있다. 

 

노사가 위기 진화에 나선 건 지난해 9월부터다. 직원 복지 축소와 비업무용 토지·설비 매각에 나섰다. 토지와 설비 매각 작업은 순조롭게 진행되지 못했고, 복지 축소를 통해서만 500억원 가량의 지출을 줄였다.

지난해 12월에는 임금을 삭감하고 상여금을 반납해 500억 원 이상을 줄였다. 이 과정에서 마힌드라는 500억원을 유상증자했고 산업은행은 평택공장을 담보로 1천억원을 대출했다. 

 

노사는 마힌드라가 약속한 직접 투자액 '2천300억원'에 산업은행의 지원을 합하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쌍용차 관계자는 "신차 개발이 36개월에서 길게는 48개월까지 걸리고 3천500억 원에서 4천억 원이 투입된다. 이 비용이 한 번에 투입되는 건 아니고 금형을 만드는 작업부터 비용이 많이 소요된다. 

 

단계마다 마힌드라 투자액에 매칭으로 산업은행이 자금을 투입한다면 단번에 큰 비용을 들이는 부담 없이 지원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차세대자동차 개발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있지만, 현대차와 쌍용차 두 곳만이 2.5단계 자율주행 기술을 가지고 있다. 내년엔 전기차 SUV도 출시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자율주행 2단계는 방향과 가속·감속을 차량이 스스로 제어하는 기술을 뜻하고 3단계는 고속도로 등 특정한 조건에서 자율주행이 가능한 수준을 말한다.

이를 근거로 쌍용차는 산업은행에 당장 상반기에 도래하는 만기 대출금 1천억원의 상환을 연장하고, 추가 자금 지원을 요청하고 있다. 하지만 이 지점에서 시계를 10년 전으로 돌려보면, 불행했던 과거의 장면들이 반복되고 있음을 직감할 수 있다.

2009년 쌍용차 사태가 터지기 전, 정부와 산업은행은 "공적자금을 투입하기 위해선 '선(先) 구조조정 후 가능'"이란 입장을 내세웠다.

당시 금속노조가 정부 측에 제공한 '위기극복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위한 노조의 제안' 문서에 따르면 노조는 "정부나 산업은행이 자금지원은 하지 않고 인력감축을 강요했다. 실제로는 노조에 대한 공격의 무기로 공적자금투입을 활용하는 형국"이라면서 "공적자금 지원과 구조조정 문제를 연계시키는 것은 '병은 발에 생겼는데 머리를 수술하는 행위'와 다름 없다"라고 주장했다. 

 

또 "정부는 쌍용차에 대한 공적자금 지원 시 GM대우차도 지원해야 하는 형평성 문제 때문에 어렵다고 한다"는 당시 상황도 적혀있다. 지금의 상황과 매우 유사하다.

이후의 상황은 모두가 아는 바다. 회사는 구조조정을 강행했고, 2천여명의 직원들이 회사에서 쫓겨났다. 그 과정에서 10년 간 30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외부로 나간 해고자들과 회사는 끊임없이 갈등을 반복했다.

이번 위기에도 '구조조정'의 그림자는 어른거린다. 평택시에 따르면 산업은행은 지원의 선제조건으로 '최대주주 마힌드라의 증자'와 '강력한 구조조정'을 요구하고 있다. 

 

시 관계자는 "시가 직접 산업은행과 접촉한 건 아니다. 쌍용차의 말과 산업은행과 만난 정치권의 말을 종합하면, 이 2가지가 은행 측의 요구"라고 전했다.

다만, 산업은행 측은 "지난해 연말, 만기가 도래한 300억원의 대출을 연장했고, 공장 담보로 추가 1천억원을 대출했다. 그 건 외에 오고 간 대화는 없다. 쌍용차가 2천700억원 추가 지원을 요청했다는데 공식적으로 요청이 온 적도 없다. '강력한 구조조정'은 완전히 루머"라고 선을 그었다.

아직까지 '구조조정'은 지금의 쌍용차 위기에 공식적으로 나타나지 않은 단어다. 그럼에도 대규모 구조조정을 선택했던 10년 전 쌍용차 사태를 노동자들은 물론, 모든 이가 기억하고 있다. 근거 있는 불안이 희망을 잠식하고 있다.

/기획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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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취재팀

글: 공지영차장, 신지영, 김준석기자
사진: 임열수부장, 김금보기자
편집: 안광열차장, 장주석, 연주훈기자
그래픽: 박성현, 성옥희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