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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여년간 치매 노인들을 위한 미술치료 봉사를 펼쳐온 신현옥 치매미술치료협회 회장이 최근 발간한 '치매예방과 치매미술치료'라는 책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송기자 snowsong@kyeongin.com

어린이처럼 순수한 마음 심금 울려
"남 도울 수 있는게 가장 현명한 삶"
'미술치료 회상요법' 다룬 책 발간


"망각의 병에 굴하지 않는 어르신들을 위해 추억을 붙들어드리고 싶습니다."

봉사활동으로 30여년간 치매 노인들을 위한 미술치료를 펼쳐온 신현옥 치매미술치료협회 회장의 바람이다.

개인전을 여는 등 잘 나가는 서양화가였던 신 회장은 치매를 앓는 시어머니를 모시면서 인생의 전환점을 맞았다. 시어머니에게 크레파스를 쥐어드린 후 그림을 매개로 고부간에 소통이 이뤄졌다. 시어머니는 하루가 다르게 활기를 되찾았다.

신 회장은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주변의 치매노인시설을 찾아다니며 무료 교육을 하고 사비로 사무실을 마련해 1991년 비영리민간단체인 치매미술치료협회를 설립했다.

하지만 그때만 해도 '치매미술치료'는 생소한 개념이어서 냉대도 많이 당했다. 신 회장은 "주변에서 이상하게 봤다. 뭘 팔려는 의도가 있는 거 아니냐, 나중에 정치하려고 저러는 거 아니냐는 등 말도 많았지만 변화되는 어르신들을 보며 한 길만 걸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지금은 치매미술치료에 대한 인식이 바뀌며 다양한 건강증진프로그램을 시행하고 있다. 세미나 개최, 대학 강의 등도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신 회장은 이에 힘입어 최근 '치매예방과 치매미술치료(신현옥·김은경 공동저서)'라는 단행본도 발간했다.

그는 "어쩔 땐 낙서 같아 보여도 어르신들의 추억이 담긴 그림은 기억력 향상, 정서적 안정감, 성취감뿐만 아니라 사람들과 소통하는 도구가 되어 온기를 느낄 수 있게 해준다"며 "이번 책은 미술치료의 회상요법에 관해 주로 다뤘다"라고 밝혔다.

신 회장은 "일전에 어느 분이 보름달을 그렸는데 꼭 일렁이는 파도처럼 보여 이유를 물어봤다. 전기가 귀했던 어린 시절 친구와 놀다 늦게 집에 오니 어머니가 아까운 전깃불을 못 끄고 기다렸다고 혼내셨단다. 그때 집에서 쫓겨나와 그렁그렁 눈물 맺힌 눈으로 보던 보름달이 꼭 그렇게 보이더라고 말씀하셔서 깜짝 놀랐다"며 "치료를 하다 보면 어린이처럼 순수한 마음으로 돌아가 심금을 울리는 어르신들의 그림이 많다"고 말했다.

그는 "저도 나이가 들면서 힘들 때도 있지만 기다리시는 분들을 생각하면 힘이 난다. 치매환자를 돌본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그럴수록 가족들의 칭찬과 격려가 중요하다"면서 "교육을 하면서 열악한 곳부터 부유한 시설까지 안 다녀본 곳이 없다. 물질이 풍요하다고 행복한 것이 아니더라. 결국은 나눔이 있는 곳이 따스하다"고 미소 지어 보였다.

'남을 도와줄 수 있을 때 도와주는 것이 가장 현명한 삶'이라는 신 회장은 오늘도 크레파스와 도화지를 챙기며 어르신들과의 '그림 같은 동행'에 나섰다.

/이송기자 snowsong@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