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첫 실현' 경기도 지원제도 의미
지방정부는 화폐발행권 없고 예산상 제약
李지사 성남시장 시절 정책 프로젝트 맡아
'최소 예산으로 최대 수혜' 지속가능 모델
#취약계층·영세 소상공인 선별 집행 비판
하위 20%에 500만원 주면 80%가 세금부담
소득격차 불과 100만원 '상하역전' 부작용도
중산층에 소비여력 나도록 국가가 나서야
일자리와 소득의 붕괴로 국민들의 생계마저 위협받는 상황에 빠져들자, 대안으로 '기본소득'이 중요한 키워드로 떠올랐다.
경기도는 도민 1인당 10만원의 재난기본소득을 지급하기로 했다.
시·군에서 추가적으로 재난기본소득을 지급하면 그것도 함께 받는다.
경기도의 제안을 도내 여러 지자체에서 수용했다. 경기도를 중심으로 오랫동안 논의돼 온 '기본소득'이 실현되는 상황을 강남훈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이사장은 남다른 눈으로 지켜보고 있다.
강 이사장은 일찍이 지난 2009년 기본소득네트워크를 창립, 제도를 집중적으로 연구해온 국내 대표적인 기본소득론자다. 강 이사장이 주장해온 '1인당 30만원'은 일시적이나마 코로나 변수로 실현됐다.
강 이사장은 이 같은 경기도형 재난기본소득 시행에 의미가 깊다고 했다.
그는 "전국적으로 가정에 현금을 지원하는 거의 첫 사례이고, 경우에 따라 작은 액수가 될지라도 경기도민 전체가 받는다"며 "작동하는 원리를 도민들이 알게 되면 머지않아 전 국민이 모두 알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강 이사장은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성남시장 재임 시절부터 인연이 있다. 성남시 '청년배당'이 시행되기 2년 전에 이 정책의 기본원리 및 실행방향과 관련한 프로젝트를 맡았다.
강 이사장은 "이재명 지사가 먼저 발 벗고 나서줘 큰 힘이 됐다"고 말했다.
2015년 6월, 이재명 지사는 기본소득 국제학술대회에서 "보편적 복지 확대를 목표로 하는 성남시에서 기본소득이 실제적인 어젠다가 될 수 있는지 모색 중"이라며 청년배당 정책을 알렸다.
강 이사장은 이어 "경기도 재난기본소득은 이 지사가 성남에서 활동하며 나온 결실이다. 성남시장 재임 당시 제안을 하면서도 불안한 마음이었다. 기존에 없던 정책이었기에 유권자 반응이 불확실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용감하게 받아들였다"며 "성남시민들의 반응이 좋았기 때문에 (이재명 지사가)경기도민 전체를 대상으로 해도 반응이 좋겠다는 확신을 한 것 같다"고 말했다.
강 이사장은 기본소득이 현금이 아닌 지역화폐와 결합하게 된 배경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그는 "지방정부는 화폐발행권이 없고 예산상 제약이 있기 때문에 전체 지역주민이 아닌 대개 특정 연령대 등을 한정해 기본소득을 집행한다. 그러면 수혜자가 적어지고 지지를 얻기도 힘들다"며 "이때 지역화폐를 사용하면 지역 내 소상공인에게 도움이 돼 간접적인 수혜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최소한의 예산으로 최대의 수혜자를 만드는 게 기본소득의 기본적 원리에 부합하는 것"이라고 했다.
강 이사장은 그러면서 "모든 사람에게 기본소득을 주는 게 원칙이지만, 최소의 예산으로 최대의 수혜자를 만들어야 '지속가능한 정책'이 된다"며 "그런 점에서 지역화폐와 기본소득의 결합이 선택됐다"고 덧붙였다.
이런 강 이사장의 설명은 지난해 5월 28일 수원역에서 열린 경기도 청년기본소득 락(樂) 페스티벌에서 한 이 지사의 발언과도 일맥상통한다.
당시 이 지사는 지역화폐로 기본소득을 지급하는 이유로 "공정한 세상을 위해 약간의 불편을 감수해 다수가 골고루 혜택을 누리자는 취지"라며 "받은 돈을 골목에 쓰고, 영세 자영업자에 도움이 되는 같이 사는 사회를 만들자"고 제안했다.
경기도 지역화폐는 연매출 10억원 이상 매장에서는 사용할 수 없도록 해, 영세 자영업자에게 혜택이 골고루 돌아가도록 함으로써 '최대의 수혜자'를 만들겠다는 의미다.
기본소득에 찬성 입장만 있는 것은 아니다.
모든 국민에게 줄 게 아니라 더 어려운 사람, 영세 소상공인, 기업 등 적절한 곳에 선별해 집행해야 한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강 이사장은 이에 대해 "선별 집행은 증세거부감과 소득역전이라는 두 가지 문제에 직면한다"고 반박했다.
이를테면 하위 20%에게 500만원씩을 주면 나중에 나머지 80%가 그 돈을 갚는 세금부담을 떠안는다는 것이다. 원래 하위 20%는 세금도 적게 부담한다.
강 이사장은 "이처럼 일부에게 조세부담을 가하는 방식의 복지는 지속하기 어려운 모델"이라며 "재난기본소득을 애초 3개월로 예상했다가 상황이 장기화돼 6개월을 집행한다고 가정하면 조세부담을 떠안은 나머지 80%의 반발이 폭발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강 이사장은 아울러 '소득역전' 문제도 지적했다. 그는 "하위 20%와 80%의 경계선에 있는 이들의 소득격차는 100만원 이하다. 세금으로 소득을 역전하면 정의 원칙에도 어긋나고 사람들이 분노한다"고 설명했다.
결국 단기적으로 보면 하위계층에 몰아주는 게 유리할 것 같지만 장기적으로 여러 문제를 발생시켜 경제를 살리는 효과가 떨어진다는 논리다.
강 이사장은 모든 사람에게 지역화폐로 기본소득을 지급했을 때의 효과에 대해서도 차근차근 설명했다.
강 이사장에 따르면 올해 10조원을 지역화폐로 지급할 경우 이를 받는 사람의 소득이 10조원 늘고, 소상공인 매출도 10조원이 늘고, 소비는 계속 순환되면서 소비승수가 2를 넘겨 3에 가까워진다.
그래서 10조원을 정부가 기본소득 형태로 사용하면 GDP 증가액은 20조원 이상이 된다. 소득증가분은 한해에 끝나는 게 아니라 장기적으로 발생한다.
물건이 팔리고, 공장이 돌고, 임금을 주고, 다시 소비를 하는 식으로 계속 이어진다.
강 이사장은 "기본소득이 감염병 재난상황에서 경제를 살릴 수 있다"고 강조하면서 코로나19에 대한 대처가 상반된 미국과 우리나라의 상황을 놓고 비교했다.
설명에 따르면 미국은 방역이 잘 이뤄지지 않아 경제를 막아서라도 방역을 했다.
그러면 소비를 할 수 없다. 우리나라 방역은 경제적 장애물을 최소한으로 줄이면서 하고 있다. 안전한 소비를 계속 할 수 있도록 열어놓는 것인데, 이는 경제성장을 어느 정도 유지하려는 목적이다.
강 이사장은 "자칫하면 미국처럼 경제활동을 하기 힘든 사회가 된다. 일상이 돌아가야 한다. 경제가 덜 나빠지면서 방역에 성공해야 한다. 대한민국 방역모델에 맞게 소비는 정상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그게 중국, 미국과 다른 우리의 목적"이라고 설명했다.
강 이사장은 '불안하니 돈을 줘도 경제에 소용이 없다'는 것은 우리가 아닌 미국식 방역모델이라고 봤다.
그는 "현재 중산층의 소득이 없어지고 있다. 소비가 더 줄어들면 초기 방역에 성공한 효과를 더는 누릴 수 없다. 중산층에 소비여력이 나도록 국가가 나서 도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 이사장은 한국 모델에 맞게, 적절하고 필수적이며 안전한 소비를 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안전한 소비라는 말에 대해 그는 "해외 유입자가 아닌 직장에서 3주간 만나는 사람과 밥 먹는 건 괜찮은 일이다. 지역화폐를 전체 도민이 받으면, 매일 만나는 식구끼리 동네식당에서 외식하는 안전한 소비도 충분히 가능하다"면서 "경제성장률 마이너스 2%와 마이너스 1%에서 각각 회복하는 상황은 큰 차이다. 이는 기본소득이 장기적 재정건전성을 얻을 수 있는 이유 중 하나"라고 했다.
인터뷰 말미에 강 이사장은 "한국은 가난한 사람에게만 복지를 주고 중산층은 안줘도 된다는 의식이 너무 강하다"며 보편복지 정책을 포퓰리즘으로 바라보는 시선을 경계했다.
그는 "경기도민 사이에 기본소득은 '중산층을 위한 복지'라는 인식이 자리 잡았으면 좋겠고, 나아가 증세와 복지 확대에 힘이 실렸으면 한다"며 "나에게 이익이 되는 정치인에게 투표하면 장기적으로 경제적 불평등이 완화되고, 살림살이도 나아지고, 정치도 더 잘 작동할 것이다. 기본소득은 그런 효과를 낼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글/강보한기자 kbh@kyeongin.com 사진 /김금보기자 artomate@kyeongin.com
■강남훈 이사장은?
▲ 1979년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동대학원 석·박사 취득▲ 1985년 한신대 경제학과 교수 부임 ▲ 1988년 민교협 사무처장 ▲ 2009년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창립 참여 ▲ 2011년 제6대 전국교수노동조합 위원장 ▲ 2013년 한신대학교 경제학과장 ▲ 2015년 성남시 청년배당정책 연구용역 ▲ 2018년 경기도 기본소득위원회 위원장 ▲ 2019년 '기본소득의 경제학' 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