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구 화백, 단원고 학생 화폭 담아
작가로서 '마음의 힘' 소진되는 느낌
'다시 4월, 봄이 오다' 10월까지 전시
"우리나라의 축적된 모순으로 소중한 아이들이 희생됐어요. 기성세대가 반성하고 앞장서서 세상을 변화시켜야 합니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함께 그 길을 가자고 손을 내밀어야 합니다."
인천에 작업실을 둔 이종구 화백(중앙대 미술학부 교수)을 만났다. 그는 안산시 단원고 근처에 있는 한 전시실에서 보자고 했다.
학교 근처 주택가의 작은 상가 건물 3층에 자리한 '4·16 기억전시관'이었다. 지난 9일 오후 2시께 찾아간 이곳에는 그와 정평한 화백의 작품들이 전시돼 있었다.
이 화백은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단원고 2학년 학생들의 생전 모습을 그림으로 담았다. 아이들이 1학년 때 반별로 찍은 단체 사진을 구해 그렸다. 그림 속 아이들은 해맑은 표정으로 한가운데 담임 선생님을 향해 자기 반 숫자를 가리키는 듯한 포즈를 취하고 있었다.
이 아이들 중 325명이 이듬해 인천에서 수학여행지인 제주도로 향하는 세월호에 몸을 실었고 그날 사고로 250명이 숨졌다.
이 화백은 2017년 여름 해남 임하도의 한 폐교에서 먹고 자면서 꼬박 3개월을 작업했다. 세월호가 다니던 뱃길이 보이는 곳이다.
그는 "이 시대의 작가라면 누구나 세월호를 그대로 지나치기 어려울 것"이라며 "화가로서 아이들의 영혼이라도 되살려야 한다는 의무감 같은 것이 있었다. 그림으로 기록해서 역사적 증언을 해야겠다는 각오였다"고 말했다.
이 화백은 이 그림들과 함께 세월호 참사로 촉발된 광화문 광장의 촛불 시위, 이어 탄생한 새 정부, 그리고 4·27 판문점 남북정상회담으로 이어지는 역사적 사실들을 화폭에 담아 2018년 서울 종로 학고재 갤러리에서 '광장-봄이 오다' 개인전을 열었다.
작업을 모두 마치고 '4·16 기억교실(현재 안산교육지원청 별관에 위치)'을 다시 찾았다는 이 화백은 "초상의 주인공인 아이들을 책상 위에 놓인, 이제는 영정이 된 사진 속에서 만났을 때의 그 충격은 말로 설명하기 어렵다. 작가로서 마음의 힘이 완전히 소진되는 것 같았다"고 기억했다.
"산 자의 초상이 아닌 억울하게 죽어간 이들을 그리는 작업이라서 마음이 무겁고 힘겨웠어요. 영혼들이 나를 바라보는 그런 긴장감을 느꼈어요. 목숨을 잃은 아이들을 모두 빼면 이 그림들이 어떻겠습니까. 끔찍해 상상하기도 어렵습니다. 배경색을 핑크 등으로 예쁘고 따뜻한 색으로 채워넣어 아이들을 위로하고 싶었습니다."
이번 '다시 4월, 봄이 오다' 전시회는 '4·16 기억전시관'에서 오는 10월까지 이어진다.
/기획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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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취재팀
글: 임승재차장, 배재흥, 김동필기자
사진: 김금보, 김도우기자
편집: 안광열차장, 장주석, 연주훈기자
그래픽: 박성현, 성옥희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