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교문 코치
1990~2000년대 초반 한국 남자 양궁의 대들보 역할을 했던 오교문 현 한국 여자 국가대표팀 코치. /오교문 코치 제공

연무초 '첫시위' 경인일보와 인연
시드니올림픽 12년만에 단체전 金
수원시청 초대감독·호주팀 맡기도
"자신과 싸움 이겨야만 좋은 성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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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선수단이 올림픽 종목 중에서 가장 메달을 많이 따낸 종목은 양궁이다.

양궁은 그동안 올림픽 종목에서 수많은 금메달을 수확하며 효자종목으로 자리매김해 왔다.

특히 한국의 양궁이 세계를 주름 잡자 국제양궁연맹은 올림픽 세부종목 중 거리별 메달에서 남녀 개인·단체전으로 메달 수를 4개로 축소하는 등 한국을 견제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고안해냈다.

그럼에도 한국 양궁은 남녀 개인전은 물론 단체전 최강자로 우뚝 서며 올림픽 레전드의 반열에 오르기도 했다.

이렇듯 양궁은 올림픽을 통해 그동안 수많은 스타를 배출해냈다. 이런 레전드 중에서 수원 출신의 양궁 선수가 있다. 그는 현재 양궁 여자 국가대표팀 코치를 맡고 있는 오교문이다.

수원 연무초 5년 때 활을 잡은 오 코치는 연무중과 효원고, 강남대를 졸업한 뒤 지난 1994년 처음으로 태극마크를 달았다.

그해 히로시마 아시안게임 양궁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딴 오 코치는 1996년 애틀랜타올림픽 개인전 동메달 및 단체전 은메달, 1998년 아시안게임 개인전 3위·단체전 금메달 등의 성적을 내며 국가대표 간판스타로 활약해왔다.

또 1994년 제75회 전국체육대회에서 맹활약하며 유망주로 떠오르면서 경인일보가 제정한 제6회 전국체전 MVP 대상을 받기도 했다.

특히 오 코치는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 12년 만에 양궁 남자 단체전 우승을 이끌며 체육훈장 청룡장을 수상했다. 당시 수원의 자랑이자 아들이었던 오 코치는 시드니 올림픽 단체전에서 금빛 과녁을 잇따라 맞혀 국민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오 코치는 "올림픽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시드니 올림픽이었다. 당시 한국 남자는 12년 만에 금메달을 노렸는데 화살 한발 한발에 집중해 쐈던 것 같다"며 "올림픽 금메달은 누구에게나 큰 영광이다.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떨린다"고 말했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 남자 양궁 단체전 우승을 이끈 오교문 코치의 앳된 얼굴. /경인일보DB

오 코치는 한국 양궁이 세계를 주름잡을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 "양궁은 현재도 마찬가지지만 국내 국가대표 선발전이 곧 올림픽 메달 후보로 거론될 정도로 치열하다"면서 "나도 선수 생활 때 슬럼프를 겪는 등 어려운 시절이 있었지만 그때 마다 동료, 선·후배들과 함께 위기를 극복했다"고 전했다.

그는 은퇴 후 2005년 1월 수원시청 여자 양궁팀의 초대 감독에 부임하며 지도자 생활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이후 한국을 떠나 호주 양궁국가대표팀 감독에 부임했고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 앞서 치러진 프리 이벤트 경기 개인전에서 스카이 김(한국명 김하늘)의 우승을 조련하는 등 세계를 떠들썩하게 했다.

오 코치는 "한국 양궁이 세계 정상에 오르면서 우리나라 지도자들이 해외 국가대표 지도자로 많이 나가게 됐다"면서 "실업팀 감독에서 다른 나라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는 것이 낫다는 판단에 호주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게 됐다"고 설명했다.

오 코치의 장점은 선수 생활을 오래 한 탓에 선수들의 심리를 잘 알고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그는 강압적인 훈련이 아닌 선수들과 함께 호흡하고 고민하는 지도자로 꼽힌다.

오 코치는 "양궁은 기본기도 중요하지만 날씨와 심리적인 변화에 특히 영향을 받는 스포츠"라며 "이 때문에 정신을 집중하고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야만 좋은 성적을 올릴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여자 선수들은 남자들에 비해 꼼꼼해서 강압식보다는 다독거리며 훈련해야 한다"며 "한국 여자 양궁팀이 계속해서 세계 정상을 지킬 수 있도록 다양한 방법을 연구하고 가르치겠다"고 덧붙였다.

/신창윤기자 shincy21@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