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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착륙 '마의 11분' 안전 핵심
항공기 하중 지탱 포장두께 1m 넘어
표면은 매끄럽되…또 미끄러우면 안돼
눈·비 등 악천후에도 마찰계수 0.4 이상 유지

작은 노면 이물질도 사고 가능성
차량 운행자들 'FOD' 의무 수거해야
음파·엽총 활용 '버드 스트라이크' 예방
백령도 '사곶해변' 세계적 희귀 천연 활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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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주로(滑走路)는 비행기에 있어서 어머니의 품과 같은 존재다.

 

비행기가 그 품을 떠나는 순간이 운항과정에서 가장 위험하다. 그 품에 살포시 안겼을 때 승객들은 드디어 안도하게 된다. 

 

활주로를 뜨고 내리는 게 말처럼 그리 쉬운 것은 아니다. 활주로는 한자 말 그대로 미끄러져 달리는 길을 말한다. 

 

좋은 이륙과 훌륭한 착륙은 이 미끄러짐에 있다. 미끄러지듯 날아오르고, 미끄러지듯 내려앉아야 한다. 비행장에서 가장 중요한 시설을 꼽으라면 단연 활주로다.

활주로는 이 세상 어떤 도로보다도 단단하다. 500t이 넘는 항공기가 시속 200㎞ 안팎의 속도로 지상으로 내려올 때 받는 하중을 견뎌야 한다. 

 

이 때문에 일반도로의 두께는 15~30㎝이지만 활주로는 몇 배 더 두껍다. 인천공항 활주로의 포장두께는 105㎝에 이른다.

 

하중을 견디는 것 외에도 안전을 위해 고려해야 할 요소가 많다. 우선 활주로 표면이 매끄러워야 한다. 

 

그렇다고 너무 미끄러워도 안 된다. 매끄러우면서도 미끄러우면 안 된다니, 참으로 어려운 과제가 아닐 수 없다. 공항 운영기관들은 항공기의 이·착륙에 적합한 마찰력이 유지될 수 있도록 끊임없이 신경을 쓴다.

연중기획-공항이야기 활주로 사진
인천공항 활주로 마찰력을 측정하는 모습. /인천공항공사 제공

인천공항은 지난달 모두 7차례에 걸쳐 마찰력 정기측정을 진행했다. 전문적인 용어를 쓰자면, 마찰력은 0~1μ(마찰계수)로 표현되며, 1에 가까울수록 마찰력이 커 제동하기에 좋고 0에 가까울수록 미끄러워 제동거리가 길어진다. 

 

인천공항의 이번 측정에서는 평균 0.78μ를 기록했다. 지극히 정상 수준이다. 마찰력이 0.6 이하로 떨어지면 유지보수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또 비가 오거나 눈이 왔을 때에도 마찰력을 측정하는 데 0.4 이상을 유지하도록 한다. 0.26 이하가 되면 항공기 이·착륙이 불가능한 것으로 보고 있다.

활주로에는 항공기 이·착륙 과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물건이 있어서는 안 된다. FOD(Foreign Object Debris)는 활주로 있는, 제거해야 하는 모든 것을 일컫는다. FOD를 제거하는 것은 공항 안전에 중요한 요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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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공항공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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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공항공사 제공

인천국제공항에는 3개의 활주로가 있다. 제1·2활주로의 길이는 3천750m, 제3활주로는 4천m다. 

 

항공기는 이·착륙할 시기가 가장 중요하면서도 위험한 때다. 이륙할 때 3분, 착륙할 때 8분을 '마의 11분(critical eleven minutes)'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항공기가 활주로에서 주행하는 거리는 이륙할 때가 더 길고, 활주로가 받는 하중은 착륙할 때가 더 크다. 항공기는 뜨기 위해 양력을 받아야 하는 데 충분한 속도가 필요하고, 착륙할 때는 속도를 줄인다. 

 

대형 항공기인 A380은 이륙할 때 3천m, 착륙할 때 2천100m가 필요하다. 활주로는 이륙할 때 필요한 길이와 착륙할 때 받는 하중을 모두 만족하도록 설계해야 한다. 

 

항공기가 이륙하기 전이나 착륙한 뒤에 이동하는 도로를 유도로(taxiway)라고 한다.

인천공항에서도 활주로나 유도로 FOD 제거작업이 수시로 이뤄진다. 활주로 외에도 계류장 등 항공기와 가까운 곳에서 운행하는 차량과 장비가 1만여대에 이른다. 

 

차량에서 떨어진 나사나 볼트, 장비 등이 바닥에 있으면 항공기가 이동하는 과정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또한 아무리 작은 것들이라고 해도 항공기가 이·착륙할 때 바퀴와 부딪쳐 튕겨 나가게 되면 주변의 장비나 인명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 

 

이 때문에 인천공항 계류장 등을 오갈 수 있도록 허가받은 차량의 운전자는 FOD를 발견하면 의무적으로 수거해야 한다.

연중기획-공항이야기
인천공항 활주로 전경. 인천공항은 모두 3개의 활주로가 있다. 1·2활주로의 길이는 3천750m, 3활주로는 4천m다. /인천공항공사 제공

인천공항에서 가장 많이 발견되는 FOD는 무엇일까. '타이어 찌꺼기'라고 한다. 

 

항공기가 착륙할 때 타이어 바퀴가 고속으로 회전하면서 생긴 마찰열로 인해 타이어 일부가 녹아 활주로에 달라붙는 것을 타이어 찌꺼기라고 한다. 

 

인천공항공사는 고압의 물을 뿌리는 방식으로 바닥에 붙은 타이어 찌꺼기를 정기적으로 제거한다. 

 

인천공항공사 유덕기 운항안전팀장은 "지금은 고무제거를 위해서 첨단장비를 활용하지만 오래전에는 활주로를 관리하는 직원들이 일일이 손으로 활주로에 달라붙은 고무를 제거하기도 했다"고 이야기했다. 

 

인천공항은 다행히 FOD로 인한 항공기 사고는 한 차례도 발생하지 않았다.

인천공항을 운영하는 인천공항공사는 항공기 안전을 위해 FOD 수거 외에도 여러 가지 일을 수행한다. 이·착륙시설에 대한 점검을 하루 4차례 진행하고, 계류장 등을 순찰하며 과속을 하거나, 장비 사용 후 이를 방치하는 등의 규정 위반자를 적발해 낸다.

유덕기 팀장은 "활주로와 유도로, 계류장 등 접근이 제한된 공간인 '에어사이드'에서 공항 운영기관은 안전관리부터 사건·사고 등에 대한 조사까지 진행한다"며 "공항 안전을 총괄하고 있기 때문에 무거운 책임감을 갖고 일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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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공항공사 제공

항공기 운항에 영향을 주는 또 하나의 대표적인 요소는 '새'다. 사람이나 육상동물은 지상에서 통제가 가능하지만, 하늘을 나는 새는 막기가 쉽지 않다. 

 

공항에 새들이 날아다니고, 그 새들이 항공기에 부딪히거나 엔진으로 빨려들어가면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새로 인한 항공기 사고, 버드 스트라이크다. 이들 새가 각 공항 당국의 골칫덩이 중 하나다.

인천공항도 연간 10건 안팎의 버드 스트라이크가 발생한다. 

 

운항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 적도 한 차례 있는데, 2014년 3월 필리핀항공 여객기가 이륙 후 조류 충돌로 인해 엔진이 손상됐고, 다시 인천공항으로 회항해야 했다. 외국에서도 조류 충돌로 인한 항공기 운항 장애가 잇따르고 있다.

인천공항공사는 다양한 방식으로 조류를 퇴치하기 위해 힘쓴다. 조류들이 싫어하는 음파를 내보내는 '음파퇴치기'를 도입했고, 엽총으로 공항으로 들어오는 조류를 내보내기도 한다.

활주로가 처음부터 지금과 같은 모습은 아니었다. 세계 최초의 항공기는 윌버 라이트(Wilbur Wright·1867~1912)와 오빌 라이트(Orville Wright·1871~1948) 형제가 만들었다. 

 

'라이트 형제'는 1903년 12월 17일 조종이 가능한 비행기를 제작해 세계 최초로 동력 비행에 성공했다. 이때 항공기를 띄웠던 곳은 평평한 모래바닥이었다. 이곳이 최초의 활주로인 셈이다. 이때까지만 해도 활주로는 항공기가 나아가는 데 장애물이 없는 평평한 곳일 뿐이었다.

연중기획-공항이야기 활주로 사진
한국전쟁 참전군인인 '바넷 월리스 로버트(Barnet Wallis Robert)'가 1950년도에 촬영한 사곶해변에 항공기가 착륙해 있는 모습. 로버트 가족은 이 사진을 2003년에 옹진군에 기증했다. /옹진군 제공

하지만 모래바닥은 항공기를 이륙시키기에 좋은 조건이 아니다. 항공기의 무게를 못 이기고 모래에 바퀴가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빠르고, 더 무거운 항공기 개발이 이뤄지면서 뜨고 내리는 전용장소인 '공항'이 생겨났다. 그 공항에서 활주로는 핵심시설이 되었다.


1916년 건설된 여의도비행장은 우리나라 최초의 공항이다. 주로 군사용으로 사용됐으며, 활주로와 격납고로만 이뤄졌다. 이때 활주로 길이는 지금보다 훨씬 짧았다. 

 

한국항공협회에 따르면 1930년대 각 비행장의 활주로는 500~750m였다. 대구비행장이 500m였고, 여의도에 있는 '경성비행장'이 750m로 가장 길었다. 

 

활주로의 길이는 항공기의 크기·무게에 비례한다. 항공기가 무거울수록 이륙하기 위해서는 더 빠르게 긴 거리를 내달려야 하고, 착륙할 때도 제동할 때까지 더 많은 공간이 필요하다. 

 

일제강점기 운항했던 항공기는 탑승인원이 10명이 채 되지 않았고, 무게는 10t 안팎에 불과했다. 폭과 길이도 현재 여객기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주로 포장된 도로에서 항공기가 뜨고 내리지만, 평평하고 단단한 모래바닥이 활주로 역할을 수행하기도 했다. 인천 옹진군 백령도 사곶해변은 세계에서도 그 유례를 찾기 힘든 천연활주로다. 

 

석영 성분의 모래가 두껍게 쌓여 이뤄진 사곶해변은 썰물 때가 되면 길이 2㎞, 폭 200m의 평평한 모래 바닥을 드러낸다. 

 

길게 펼쳐진 이 해변은 한국전쟁 때 UN군이 활주로로 이용했다. '옹진군지'는 "콘크리트 바닥처럼 단단하여 자동차의 통행은 물론이고 천연비행장으로 쓰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한국전쟁 참전용사인 '바넷 월리스 로버트(Barnet Wallis Robert)'가 직접 찍어 옹진군에 제공한 사진은 사곶해변에 착륙한 항공기의 모습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2000년대 들어 이곳은 활주로로 쓰이진 않았다고 한다. 다만 헬기 이·착륙 장소로는 활용되기도 한다.

전 세계 모든 공항에 활주로가 있고, 이 활주로에는 모두 이름이 있다. 활주로 이름은 활주로의 위치를 드러내기 위해서 지어지는 데 이름만으로도 그 기능을 알 수 있다. 

 

공항 활주로 양 끝에 표시된 숫자와 알파벳이 활주로 이름이다. 이름을 짓는 기준은 방위각이다. 전체가 360도인 방위각 중 끝자리를 떼어낸 것이 활주로의 이름이다. 

 

활주로 각도가 150도라면 15라고 표기되며, 그 정반대는 180도가 더해지기 때문에 33이 되는 식이다. 활주로 이름은 조종사에게 중요하다. 

 

항공기 조종 방향을 결정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전 세계 공항의 활주로 이름은 같은 방식으로 만들어진다.

글/정운기자 jw33@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