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 몫 '사명감' 할머니까지 돌봐야
추억의 물건으로 '옛 기억'만 떠올려
"6년이 지나… 또다른 피해를 막아야"
지난 20일 안산 중앙역 인근 한 카페에서 만난 세월호 참사 유가족 김모(25)씨는 메고 온 가방에서 뽀얀 먼지가 앉은 게임기와 CD 2장을 꺼냈다.
하나는 아버지, 다른 하나는 동생과 어린 시절 즐겨 한 게임이라고 했다. 철 지난 게임이지만 그에게는 아버지와 동생에 대한 옛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애틋한 물건이다.
"세월호 참사 이후 당신 삶의 변화는 어떠한 것이었습니까?" 그에게 이 질문을 던졌다.
안산 단원고 학생이었던 한 살 터울 동생은 세월호 참사로 세상을 떠났고, 지난해 12월에는 아버지마저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김씨는 이제 한 집안의 실질적인 가장이 됐다. 그와 동생은 집안 사정 때문에 학창 시절 아버지와 꽤 오랜 기간 떨어져 지냈다고 한다. 동생이 떠난 뒤 아버지가 더 깊은 슬픔에 빠졌던 가장 큰 이유이기도 했다.
작은 아들이 수능시험을 보지 못한 채 떠난 걸 안타깝게 여겨 공인중개사 자격증 시험을 치르기로 마음먹은 아버지였다. 자격증을 딴 이후에는 영상 편집 기술을 배워 유튜브를 하고, 블로그도 운영할 정도로 열심이었다.
아버지가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 일주일 전쯤 온 가족이 만난 자리가 마지막이었다.
아버지의 빈 자리는 컸다. 김씨에게는 동생의 몫까지 더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다짐에 더해 이제는 할머니를 돌봐야 하는 가장으로서의 책임감이 큰 파도처럼 다가왔을 것이다.
"돌이켜보면 동생은 내가 살아가면서 어려울 때 서로 도울 수 있는 '인생의 전우'였어요. 아버지는 '인생의 선배'라고 해야 할까요. 인생 선배로서 물어볼 것도 많은데 갑작스럽게 아버지가 떠나 슬프면서도 화가 나요."
그는 다시는 이런 비극이 없길 바란다고 했다.
"6년이란 시간이 지났어요. 지금 중요한 건 세월호 참사로 인한 또 다른 피해를 막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제 입으로 하게 될 말일 줄은 몰랐어요. 세월호를 잊지 말았으면 해요. 한 사람 한 사람의 관심이 모여 여론이 되고, 그 힘이 다시 안전한 사회를 만드는 밑거름이 될 거라고 믿어요."
/기획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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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취재팀
글: 임승재차장, 배재흥, 김동필기자
사진: 김금보, 김도우기자
편집: 안광열차장, 장주석, 연주훈기자
그래픽: 박성현, 성옥희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