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에 맞서 정의구현사제단 결성
옥고… 핵폐기장 등 지역에 관심도
오늘 답동주교좌 성당서 장례미사
인천지역 민주화운동의 상징, 사제(司祭) 김병상이 지난 25일 선종(善終)했다. 향년 88세.
김병상 몬시뇰은 2006년 11월, 38년간의 사목 일선에서 은퇴한 이후 2008~2013년 민족문제연구소 이사장으로 참여하는 등 사회선교 활동을 계속했다. 2018년 3월 뇌경색으로 쓰러진 후 인천 서구의 요양시설에 머물러왔다.
고인은 1932년 충남 공주의 교우촌인 요골공소에서 4남1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어머니에게 순교자 이야기를 들으며 자란 김 몬시뇰은 어머니의 기도대로 1948년 용산 소신학교에 입학해 사제의 길을 준비했다. 그러나 한국전쟁 통에 폐결핵에 걸려 1953년 7월 신학교를 그만둬야 했다.
병마에서 겨우 벗어나 1963년 서울 가톨릭신학대에 입학한 그는 1969년 12월 38세의 늦은 나이로 사제 서품을 받았다. 이후 인천 답동주교좌 성당의 보좌 신부를 시작으로 김포·주안1동·만수1동·부평1동 본당 주임신부 등을 지냈다.
김 몬시뇰이 사제로서 한결같이 가슴에 품고 있었던 것은 '인권과 약자들을 향한 사제들의 의식과 실천'을 강조한 마태복음 구절이었다.
1974년 서슬퍼런 박정희정권 시절 원주 문화방송의 부정을 폭로한 지학순 주교를 정부가 탄압하자 동료 신부들과 함께 '정의구현사제단'을 결성해 싸웠다.
김 몬시뇰의 첫 시민·사회운동이었다. 1977년 유신헌법철폐 기도회 사건으로 구속된 바 있으며, 이후에도 동일방직 탄압사건 대책위원장, 굴업도 핵폐기장 대책위원회 상임대표, 실업극복 국민운동 인천본부 상임대표를 맡는 등 사회 운동을 이어갔다.
가톨릭 정의평화운동의 지도자이며 시민사회운동의 버팀목이었던 고인은 2003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로부터 몬시뇰 칭호를 받았다. 몬시뇰은 천주교에서 주교품을 받지 않은 원로 신부에게 교황청이 공로를 인정해 내리는 명예 호칭이다.
사제 김병상과 인연을 이어온 천주교 인천교구의 사제·평신도들의 모임인 '김병상과 함께'의 대표인 김일회 신부는 "김병상 몬시뇰은 힘들고 지친 곳에 늘 함께 있었고 함께 울었던 사람들의 마음속에 있었다"면서 "한평생 '세상의 작은 이들'과 함께 한 따뜻한 동행자였다"고 고인을 회고했다.
한편, 고인의 장례미사는 27일 오전 10시 인천 답동주교좌 성당에서 봉헌된다. 장지는 하늘의 문 묘원 성직자 묘역이다.
/김영준기자 kyj@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