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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 보험 6개월치 내고 여행사 직원으로
수료증 대여가능 허점… 잔심부름 도맡아
사전답사 제외 현장 대응력 부족도 문제


'수학여행 안전요원'으로 일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세월호 참사 이후 교육부는 학생들의 안전을 위해 '수학여행·수련활동 등 현장체험학습 운영 매뉴얼'을 내놓았습니다.

안전요원도 그렇게 생겨난 겁니다. 작은 이벤트 회사를 운영하는 저도 봄·가을에는 안전요원으로 일합니다. 코로나19 사태만 아니었다면, 지금 한창 바쁠 때죠.

부끄러운 고백을 하겠습니다. 3년 전이에요. 한 여행사 대표가 안전요원으로 일할 사람들을 급히 구한다는 연락을 해왔습니다. 학교와 수학여행 계약을 하려면 안전요원이 필요했던 거죠.

안전요원이 되려면 일정한 교육을 이수해야 합니다. 국내여행안내사, 국외여행인솔자, 소방안전교육사, 응급구조사, 청소년지도사, 숲길체험지도사 등에게만 교육받을 자격을 줍니다.

여행사 대표는 어느 민간단체가 발급하는 국외여행인솔자 자격증을 추천했습니다.

이유는 간단해요. 따기가 쉽거든요. 해외를 나가본 적 없는 제게 여권에 도장 하나는 찍혀 있어야 한다더군요. 부랴부랴 여권을 만들고 당일치기로 일본을 다녀왔죠.

이 자격증을 따려면 여행사에 최소 6개월 이상 근무해야 합니다. 여행사 직원인 것처럼 꾸미려고 최저임금 수준으로 4대 보험 6개월 치를 냈어요. 당국에는 신고가 늦었다고 거짓말을 했죠. 자격증 시험이요? 수업도 안 받고 자격증을 손에 쥔 사람도 봤습니다.

이렇게 꼼수로 자격증을 따서 교육부가 대한적십자사에 위탁한 안전요원 교육을 받았어요. 그런데 정작 학생 인솔에 필요한 전문 교육은 빠져 있더군요.

응급처치 위주였습니다. 적십자가 발급하는 안전요원 수료증은 사진이 안 들어가 대여도 가능하다는 허점이 있어요.

안전요원은 학생들을 안전하게 인솔하는 데 집중해야 합니다. 하지만 매표소 발권 등 잔심부름까지 안전요원 몫이에요. 교사, 학부모 등이 따라가는 수학여행 사전 답사에 안전요원이 빠진다는 점도 문제예요. 안전요원들이 현장을 몰라 허둥지둥합니다.

매뉴얼에 따라 학생 50명당 1명씩은 안전요원을 둬야 합니다. 학생이 100명 미만이면 안전요원은 단 1명만 있어도 된다는 계산이 나오죠. 안전요원은 최소 인력만 쓰고 나머지는 알바생으로 채우는 게 현실입니다.

혹여 저의 이야기로 원칙을 지키는 여행사, 학교 관계자들에게까지 피해가 가는 일은 없길 바랍니다. 수많은 안전 대책이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하는지 정부가 잘 살펴봤으면 합니다. 

/기획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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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박근혜정부는 '안전혁신 마스터플랜'을 확정, 발표했다.

대한민국의 재난안전 관리 체계를 근본적으로 혁신한다는 목표로 당시 국무총리실과 국민안전처를 중심으로 17개 부·처·청이 참여한 중장기 종합계획이다.

학생·학교 안전관리, 소방·해경의 현장 대응 역량 강화, 해양(선박) 안전 등 다양한 정책이 수립됐다. 수학여행 안전요원 대책도 이때 나왔다.

경인일보는 이 익명의 제보자와 두 차례에 걸쳐 인터뷰를 진행했으며 추가 취재를 통해 사실 관계에 대한 확인 과정을 거쳤다.

 

■기획취재팀

글: 임승재차장, 배재흥, 김동필기자
사진: 김금보, 김도우기자
편집: 안광열차장, 장주석, 연주훈기자
그래픽: 박성현, 성옥희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