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 당시 구조된 단원고 생존 학생들은 6년이란 시간이 지나 어엿한 청년으로 성장했다.
이들은 참혹했던 그 날을 어떻게 기억하면서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고 있을까.
극적으로 구조된 한 학생은 전남 진도군 서거차도로 옮겨진 자신에게 따뜻한 담요와 위로의 말을 건넸던 119구조대 응급구조사처럼 생명을 살리는 일이 하고 싶어졌다.
이제는 군 복무까지 마치고 사회에 첫발을 떼려 하는 다른 한 학생은 후회 없는 삶을 다짐하며 미디어 콘텐츠 에디터를 꿈꾼다.
잠시 휴학을 하고 미래에 대한 고민을 이어가고 있는 학생도 있다.
병원 응급실에서 응급구조사로 경력을 쌓고 있는 장애진(23)씨, 그리고 이지훈(가명·23·대학생), 김소연(가명·23·휴학생)씨 등 세월호 참사를 겪은 청년 3명이 우리 사회에 전하는 이야기를 들어봤다.
# '세월호'라는 낙인이 따라 붙다
이들은 6년이란 적지 않은 세월이 흘렀지만, 여전히 단원고 출신임을 주변에 드러내는 게 껄끄럽다고 입을 모았다. 익명을 원한 이씨와 김씨도 자신의 신상이 드러나는 걸 걱정했다.
어릴 적부터 아버지를 따라 집회에 참석한 경험이 있다는 장씨는 그런 면에선 비교적 자유로운 편이라고 했다. 그래도 익명성 뒤에 숨어 단원고 생존 학생들을 조롱하는 막말이 부담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장=사실 가장 부담되는 건 '아~그러냐'며 뭔가 도와주려고 하는 사람들이에요. 그들의 마음을 충분히 알지만, 저희들 입장에선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죠.
김=물론 신경이 많이 쓰여요. 다른 사람들이 제가 생존자라는 걸 알게 됐을 때는 상대 반응부터 살피게 돼요. 이 사람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에 대해서…. 혼자서 계속 세월호라는 낙인에 대해 생각하고 걱정하게 되죠.
이=뒤에서 무슨 말을 하든, 앞에서만 안 하면 다행이라 생각해요. 제 과거에 대해 남들이 폄하하지 않도록 하는 방법을 깨달았어요. 과거가 아닌 현재와 미래로 평가하도록 치열하게 스스로를 개발하고 증명하는 방법이에요. 이렇게 하지도 않고 낙인에 대해 억울하다고 생각하는 건 간절하지 않다고 외치는 것과 같아요. 제가 이런 노력을 했는데도 좋지 않게 보는 이들에 대해서는 신경을 안 써요. 그건 억지에 불과하니까요.
# 누군가는 지겹다지만… 우린 여전히 아프다.
평생 잊지 못할 학창시절, 그 소중한 친구들을 잃은 이들의 상처는 깊다. 왜 친구들이 희생돼야 했는지, 왜 적극적인 구조가 없었는지, 누가 책임을 질 것인지는 여전한 숙제로 남아있다.
장=자기가 겪어보지 않았으니까 하는 얘기가 아닐까 싶어요. 자신의 일이라고 생각하면 안 그럴 거니까요. 아니, 그럴 수가 없죠. 저도 예전에는 대구 지하철 참사와 같은 사고를 나와는 상관없는 먼 일로 여겼어요. 하지만 막상 제 일이 돼 보니까 생각이 달라졌어요. 그런 참사를 겪지 않은 이들에게 내 일이라고 생각하라고 강요하긴 힘들겠죠. 하지만 지겹다며 세월호 희생자들을 깎아내리는 일은 없었으면 합니다. 다시는 이 같은 참사가 없어지려면 계속 말하는 수밖에 없는 것 아닐까요?
이=자연스러운 반응이라 생각해요. 굳이 그 주장에 반박하고 싶지도 않아요. 다만, 확실한 게 하나 있다면 찢어지게 아팠던 경험은 절대 지겨워질 수 없다는 거예요. 아프지 않았다면 지겨울 수 있고, 이 생각이 이상하다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아요. 강요할 수 있는 일도 아니고…. 그저 아프지 않았던 사람은 공감하지 못하는 거고, 많이 상처받은 사람은 공감해서 절대 지겹게 생각하지 않는 것뿐이라고 생각해요.
# 잊지 않고 기억한다는 다짐의 의미는
이들은 '진상규명'이라는 본질이 사라지는 게 아닐까 염려했다.
세월호와 관련한 여러 유언비어와 막말 등이 사람들을 이쪽 저쪽 편을 가르게 하고 다투게 한다는 이유에서다.
생존 학생들은 진상규명과 재발 방지책 마련을 위해 세월호 참사를 잊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잊지 않았으면 합니다.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은 곧 재발 방지로 이어지는 거예요. 잊으면 똑같은 유형의 사고가 반복될 겁니다. 참사 당사자인 제가 진상규명이 왜 필요한지 알리는 활동을 하는 이유예요. 사회 안전망은 너무도 중요한데, 쉽게 잊히곤 해요. 참사가 있었다는 걸 기억해야 재발도 없어요. 다른 참사 피해자들을 만나면 듣는 게 '우리가 잘해야 다음이 없다'는 것이에요. 그래서 더 노력해보려고요.
이=세월호 참사와 관련해서 편을 나눠 다투는 일이 없었으면 합니다. 서로에게 자신의 주장을 강요하다가 싸우는 건데, 강요하면 할수록 사실과 전혀 상관없는 문제로 넘어가고, 정작 중요한 본질은 흐려지고 말아요. 이를 막기 위해서라도 조금씩 서로 이해하면서 싸우지 않는 시대가 오길 바랍니다.
김=교양 수업에서 교수님이 '한 주제에 대한 이야기가 계속 나온다면 처음에는 관심 없고 지겨워하던 사람들도, 점점 그 무언가에 문제가 있는 거구나'라고 생각하게 된다고 말씀하신 게 떠올라요. 세월호 참사도 똑같다고 생각해요. 계속 잊지 않고 얘기하면서 기억하는 거죠. 저희는 안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발걸음을 계속할 거예요.
/기획취재팀
■기획취재팀
글: 임승재차장, 배재흥, 김동필기자
사진: 김금보, 김도우기자
편집: 안광열차장, 장주석, 연주훈기자
그래픽: 박성현, 성옥희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