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재는 중세 벗어나 '임금 아닌 국가에 충성' 근대적 영웅상으로 소환
조카 이분 이충무공행록이 '최초 위인전기'… 박태원의 역주로 빛 보게 돼
신분 아닌 재능·노력으로 일어서… 코로나·남북문제 등 '주체 역할 메시지'
본디 모습은 사라지고 왜곡된 채 위정자들의 통치 수단으로 이용되기도 하고, 역사적 사실과 의미가 더해지거나 감해져 시대가 원하는 전혀 다른 인물로 재탄생하기도 한다.
우리나라 위인의 표본으로 꼽히는 이순신(李舜臣·1545~1598)도 마찬가지다.
해방 이후에는 국민국가 건설의 영웅으로 들어 올려져 박정희 독재 정권의 명분으로, 일제강점기에는 민족 해방의 상징으로 소환되기도 했다.
대한민국 사람들에게 가장 친숙한 위인으로 꼽히는 이순신.
과연 우리가 아는 이순신의 모습은 참일까 거짓일까. 국내 근·현대문학 분야의 석학으로 평가받는 최원식 인하대 명예교수가 최근 '이순신을 찾아서'를 펴냈다.
이 책은 중세의 영웅 이순신을 처음으로 근대로 불러들여 국민적 영웅으로 해석한 단재(丹齋) 신채호(申采浩·1880~1936)의 '수군제일위인 이순신(水軍第一偉人 李舜臣·1908)'과 구보(丘甫) 박태원(朴泰遠·1909~1986)이 번역하고 주를 단 '이충무공행록(李忠武公行錄·1948)'을 중심으로, 이광수에서 김훈까지 이순신을 다룬 작가들의 소설에 관한 짧은 논평을 달았다.
지난 11일 미추홀구 학익동에 있는 최원식 교수의 연구실인 '동이서옥(同異書屋)'에서 그를 만났다.
2015년 퇴직 후 개인 연구 공간으로 사용하고 있는 동이서옥을 최원식 교수는 자신의 '놀이터'라고 소개했다.
최원식 교수는 조선후기 실학자 안정복이 우리나라와 중국의 역사·제도·유교경전 등에 관하여 수록한 책인 '잡동산이(雜同散異)'의 동 자와 이 자를 따서 연구실 이름인 동이서옥을 지었다고 설명했다.
연구실 이름대로 근·현대 문학이 그의 전공 분야지만 최 교수는 그 경계를 넘나들며 왕성한 연구 활동을 벌이고 있다.
최원식 교수는 "2017년부터 이순신에 대한 본격적인 집필 작업을 시작했는데 국한문혼용체로 된 단재의 이순신(수군제일위인 이순신)을 역주하는 게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라 눈을 다칠 정도였다"며 "독자들이 제 글을 찬찬히 들여다보며 우리가 모르고 있던 이순신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는 기회로 삼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다음은 최원식 교수와의 일문일답.
■ 중세에 갇혀 있던 이순신을 근대로 소환한 단재의 이순신(수군제일위인 이순신)이 주는 의미
단재가 수군제일위인 이순신을 세상에 내놓기 전까지 이순신의 충(忠)은 신하가 임금에게 충성하는 중세적 테두리 안에 머물러 있었다.
이런 중세의 이순신을 근대로 소환한 게 바로 단재다.
단재는 임금이 아닌 국가와 백성에게 충성하는 근대적 '영웅'의 상을 이순신에게서 끄집어냈다.
이순신을 국민적 영웅으로 만든 것인데 단재의 작품은 이후로 이어지는 충무공 숭배의 원점이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단재가 대한매일신보에 수군제일위인 이순신을 연재한 시기가 1908년이다. 국권이 풍전등화에 달린 시기에 단재는 이 책을 통해 백성 하나하나가 '제2의 이순신'이 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충무를 불세출의 영웅으로 기리는 게 아니라 우리 모두가 영웅이 돼 국난을 이겨내는 것, 국민 영웅을 대망한 것이다. 중세에 갇혀 있던 이순신이 단재에 의해 근대의 이순신으로 빛을 보게 된 것이다.
■ 근대 이순신 위인 전기의 시초라 할 수 있는 구보의 이순신(이충무공행록)은 어떤가
구보 박태원은 단재 이후 최고의 이순신 전문가라 할 수 있다.
구보는 해방 직후부터 이순신전을 여러 번 연재했는데 1948년 서울에서 출판한 이충무공행록이 의미가 크다.
이 책은 이순신의 조카 이분(李芬·1566~1619년)이 지은 행록(行錄)을 번역하고 주석을 단 것이다. 이분의 행록은 이순신을 대상으로 한 최초의 위인전기다.
이후 모든 이순신전의 시초라 할 수 있는데 구보의 이충무공행록은 번역 문장과 주석이 모두 훌륭하다.
구보의 번역 이후로도 이분의 행록은 여러 번역본이 나왔지만 구보를 넘는 본을 보지 못했다.
이순신 최초의 위인전을 근대의 전으로 빛을 보게 한 이가 바로 구보 박태원이 역주한 이충무공행록이라 할 수 있다.
■ 국난 위기 속에서 이순신을 호출하는 이유는
단재의 이순신이 1908년, 구보의 이순신은 1948년 세상에 나왔다.
1908년은 국권이 일본으로 넘어가기 직전이다. 1948년 해방 공간은 분단의 그림자가 스멀스멀 한반도를 덮치는 어수선한 시기였다.
모두 국난의 시기로 볼 수 있다. 이런 시기에 이순신이 공통적으로 호출됐다. 이순신은 일생이 완벽한 사람이다. 처음부터 출세의 길을 걸은 것도 아니고 어떻게 보면 아래에서부터 올라온 사람이다.
근대적 시각에서 보면 신분이 아니라 재능과 노력으로 일어선 인물이다. 또 이순신은 백성과 함께 7년 전쟁(임진왜란)을 이긴 영웅이기도 하다.
좌수영 안에서 백성들과 밥과 술을 같이 먹으며 해전에 있어 중요한 물길, 물때 등 많은 정보를 수집했다고 한다.
결국 국난은 백성들이 힘을 합쳐 이겨내야 한다. 어느 개인이 나서 해결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백성 모두가 영웅이 돼야 한다.
이런 근대적 시각에서 볼 때 이순신을 통해 전할 수 있는 메시지가 크다고 할 수 있다. 현시점에서도 코로나19와 같은 당면한 위기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남북 화해의 과제도 결국 국민들이 주체가 돼 해결해야 하는 문제 아닌가.
■ '이순신을 찾아서'가 독자들에게 주는 의미는
이순신의 본 모습을 찬찬히 살펴보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단재의 이순신과 구보의 이순신은 그 의미가 큰데도 그동안 망각돼 왔던 게 사실이다.
단재는 수군제일위인 이순신을 연재한 후 망명했고, 구보의 경우 이충무공행록을 펴낸 후 월북한다. 그동안 제대로 된 조명 작업이 이뤄지지 못했던 이유다.
이들의 빈자리를 춘원 이광수의 '이순신'이나 노산 이은상의 '성웅 이순신' 등과 같은 왜곡된 이미지의 이순신이 차지하게 된다.
이 중에서도 노산 이은상의 이순신은 박정희 개발 독재를 합리화하는 수단으로 이용됐다. 광화문에 있는 이순신 동상이 세워진 것도 바로 이때다.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이 이순신을 찾아서 떠나는 새로운 여정을 시작했으면 한다.
지금까지 내가 알던 이순신이 아닌, 이순신의 본 모습을 찬찬히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로 삼길 바란다.
글/김명호기자 boq79@kyeongin.com 사진/김용국기자 yong@kyeongin.com
■최원식 교수는?
1949년 인천에서 태어났다.
서울대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계명대와 영남대를 거쳐 1982년 인하대에서 교수로 재직하다 2015년 퇴임했다. 현재는 인하대 명예교수로 있다.
197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평론으로 등단하여 창작과비평 편집주간, 민족문학사연구소 공동대표, 인천문화재단 초대 대표이사, 한국작가회의 이사장 등을 역임했다.
저서로 민족문학의 논리, 문학의 귀환, 문학과 진보, 한국근대문학사론, 제국 이후의 동아시아 등이 있다. 대산문학상, 임화문학예술상 등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