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기획 출입국외국인청 통합국경관리시스템
법무부 인천공항출입국·외국인청 정보분석관들이 지난 21일 인천국제공항 제2여객터미널 내 정보분석과 사무실에 있는 '통합국경관리시스템' 상황판을 보면서 한국 입국 예정자들의 정보를 살피고 있다.

대기업·상장사 직원 한정 복수·상용여권
일반인, 신원조회뒤 단수·방문용만 발급
1983년부터 50세 이상·예치금땐 연간 1회

# 1989년 '해외여행 자유화' 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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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면이 바다인 데다 분단국가인 대한민국을 드나드는 사람 대다수는 인천국제공항을 통해야 한다.

 

인천국제공항은 국경이 아니면서도 사실상 '대한민국 국경'으로 기능한다. 그러면 왜 인천공항을 사실상의 국경이라 칭할 수 있을까. 

 

다음 2개의 통계를 보면 그 이유가 명확해진다. 

 

2019년 4월 한 달간 우리나라 공항과 항만을 통해 출국·입국한 사람은 총 779만1천648명이다. 이 가운데 69.5%인 542만1천669명이 인천국제공항을 거쳤다.

 

인천공항 출입국자는 이 기간 2위인 김해공항(87만4천31명)과 3위인 김포공항(38만953명)을 합한 수보다 4배 이상 많고, 같은 기간 인천항(13만4천292명)과 부산항(22만7천31명) 출입국자보다 15배나 많다.

연중기획 출입국외국인청 자동출입국시스템 DB 사진
2018년 인천공항 제2여객터미널 개장전 시험운영 모습.

코로나19 팬데믹(세계 대유행)이 지구촌을 뒤덮은 현재 상황은 더욱 특수하다. 

 

올해 4월 한국 출입국자는 19만3천322명으로 지난해 4월의 불과 2.4%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는데, 인천공항 출입국자는 16만75명으로 전체의 82.8%를 차지했다. 

 

이 기간 김해공항 출입국자는 250명, 김포공항 77명, 제주공항 536명, 대구공항 0명, 무안공항 0명, 청주공항 0명, 양양공항 0명이다. 

 

전 세계 국경이 사실상 봉쇄된 지금의 시대는 인천공항을 거의 유일한 우리나라의 출입국 관문으로 만들어 버렸다.

법적으로 '출국'과 '입국'의 기준은 출입국심사다. 출국심사를 통과한 후 여전히 인천공항 내 면세점을 쇼핑하더라도 이미 국경을 넘어 출국한 것으로 본다. 

 

마찬가지로 해외에서 인천공항에 도착해 한국 땅을 밟았어도 입국심사를 마치지 않았다면 아직 입국하지 않은 게 된다.

지난 21일 오전 10시 30분. 인천국제공항 제2여객터미널 출입국심사장은 항공편이 급감한 탓에 텅 비어 있었다. 

 

코로나19 사태 이전, 하루 평균 1천여 대의 항공기가 뜨고 내리던 평상시라면 공항에서 가장 붐비는 공간이다. 

 

하지만 이날 하루 인천공항에서 출발한 여객기는 29대, 인천공항으로 들어온 여객기는 28대에 불과했다. 출입국자는 4천256명뿐이었다.

연중기획 출입국외국인청 자동출입국시스템
지난 21일 오전 찾은 인천국제공항 제2여객터미널 출국심사장. 아무도 이용하지 않아 텅 비어 있다.

현재 외국인 입국자는 휴대전화에 자가격리 애플리케이션을 설치한 뒤 국내 거주지를 확인해야만 정상적인 입국절차를 밟을 수 있다. 

 

10명 안팎의 외국인이 출입국심사대가 아닌 별도의 테이블에 앉아 거주지 확인 절차를 진행하고 있었다. 휑한 인천공항 출입국심사장은 전 세계적인 국경 봉쇄를 실감케 했다.

인천공항 출입국관리는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 산하 인천공항출입국·외국인청이 담당한다. 

 

전국의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 소속 공무원 2천500여 명 가운데 900여 명이 인천공항출입국·외국인청에서 근무한다. 인천공항 출입국심사관만 600명 규모다. 최근 인천공항 출입국자가 크게 줄었다고 하더라도 출입국 관련 업무까지 줄어들지는 않았다. 

 

인천공항 출국·입국 시스템은 출입국심사장에서만 작동하는 게 아니다. 오히려 코로나19 사태 속에서 더욱 긴박하게 하루가 돌아간다. → 그래프 참조

그래픽/성옥희기자 okie@kyeongin.com/아이클릭아트

인천공항출입국·외국인청 정보분석과는 '통합국경관리시스템'을 통해 다른 국가에서 인천공항행 여객기를 타려는 승객의 탑승권 발권단계부터 입국자 정보를 분석하는 '탑승자사전확인시스템(I-precheking)'을 운영 중이다. 

 

각 항공사로부터 승객 정보를 전송받아 국제테러범, 형사범 전력자, 분실 여권 소지자 등을 골라내 해당 국가 공항에서부터 인천공항행 여객기 탑승을 막는 방식이다. 

 

지금은 중국이나 일본 등 코로나19 확산지역에서 출발하거나 경유한 승객의 한국행을 미리 차단하는 데 이 시스템을 활용하고 있다.

이날 인천공항 제2여객터미널 내 인천공항출입국·외국인청 정보분석과 사무실에서 만난 한 분석관은 통합국경관리시스템 상황판을 가리키며 "타국 공항의 탑승객 정보가 정보분석과로 전송돼 우범자 등 탑승 거부 결과를 항공사로 다시 통보하는 데 1분이 채 걸리지 않는다"며 "현재는 평소의 10%도 되지 않는 정보를 분석하고 있지만, 시기가 시기인 만큼 더욱 긴장을 늦추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연중기획 국경과 공항 상
1957년 서울 여의도공항에서 대한국민항공사(KNA·현 대한항공)의 서울~홍콩 간 국제노선 여객기의 탑승 수속을 밟고 있는 승객들. /국가기록원 제공

출입국자 70% 이용 사실상의 '국경' 역할
해외서 탑승전 정보분석… 형사범 등 막아
코로나 이후… 확산지역 승객 차단 활용

# 첨단 출입국시스템의 인천공항

인천공항 출입국시스템은 국제적으로도 첨단을 달리고 있다.

 

탑승객이 항공기로 날아오는 동안에도 '사전승객정보분석시스템(APIS)'을 통해 세밀하게 분석해 출입국심사관에게 관련 정보를 전달한다. 

 

입국심사 때 출입국·외국인청이 취득한 외국인의 지문과 얼굴 등 생체정보를 축적해 계속 활용하는 '자동출입국심사시스템(SES)'을 도입하기도 했다. 

 

이 같은 시스템 개선·간소화는 한국인은 물론 외국인도 심사관을 거치지 않는 자동출입국심사를 가능하게 했다.

인천공항이 국제공항협의회(ACI)의 세계 공항서비스평가(ASQ)에서 12년 연속으로 1등을 유지한 주요 요인 중 하나가 출입국심사 대기시간이 다른 해외 공항보다 짧다는 평가였다. 

 

황정운 인천공항출입국·외국인청 계장은 "과거처럼 여권이나 사증(비자)을 위조·변조해 출입국을 시도하는 것들이 많이 적발되자 최근에는 아예 신분을 세탁해 출입국심사를 통과하려는 경향이 대부분"이라며 "출입국시스템 첨단화는 절차 간소화를 위해서라기보다는 보이지 않는 국경을 계속해서 촘촘하게 짜려는 목적이 더 크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나라에서 누구나 자유롭고 간편하게 공항을 통해 국경 바깥으로 나갈 수 있게 된 지는 30년밖에 안 됐다. 1989년 1월 1일 '해외여행 자유화' 조치 이전까지 정부는 국민의 출입국을 일일이 통제했다. 

 

해외여행 자유화 전에는 대기업이나 상장회사의 영업부장 이상 직위인 사람만 복수·상용 여권이 발급됐다.

 

또한 해외에 4촌 이내 가족이 있는 경우에 한해 철저한 신원조회를 거쳐 일회용인 단수·방문 여권을 발급받았다. 

 

정부는 1983년부터 50세 이상 국민에 한해 1년 동안 200만원을 예치하는 조건으로 연 1회씩 해외여행을 허용했다. 남북 분단과 냉전 상황이 이처럼 국경의 벽을 엄격하게 높인 이유였다.

스티브 잡스 입국신고서
애플 창립자인 스티브 잡스(1955~2011)가 1983년 11월 방한했을 당시 입국신고서. 당시 28세 청년이던 스티브 잡스는 삼성전자 초청으로 한국을 찾아 74세인 이병철(1910~1987) 삼성그룹 회장을 만났다. 출처/대한민국 출입국심사 60년사

이 시기 여권을 받으려면 해외여행자교육과 보안교육을 필수로 이수해 '교육필증'을 신청서에 첨부해야 했다. 

 

공무원의 해외출장은 총무처(현 행정안전부)의 심사위원회 심사를 거쳐 출장명령이 내려져야 가능했다. 

 

출국자는 1차 출국심사 후 항공사에서 탑승권을 받을 수 있었고 보안검색, 세관신고 등을 거쳐 2차 출국심사까지 마쳐야 비행기에 오를 수 있었다.

1980년대 이전에는 중앙정보부가 이른바 '시국사범' 등에 대한 출입국 규제를 수시로 요청했다고 한다. 

 

출입국 규제자로 명부에 한 번 이름을 올리면 빠지는 경우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출입국심사관들의 '규제자 명부'는 나날이 두꺼워졌다. 

 

명부가 전산화되지 않은 때라 심사관이 직접 명부를 펼치면서 한 명씩 확인했다고 한다.

1965년 이후 일본인 관광객이 늘어나면서 한때 외국인 출입국심사 절차가 간소화하기도 했다. 

 

그러나 1974년 8·15 광복절 기념식에서 재일교포 문세광(당시 22세)이 박정희 대통령 암살을 시도하고, 영부인 육영수 여사가 총탄을 맞고 사망한 사건이 터지면서 외국인 출입국심사가 다시 강화됐다.

당시 문세광은 다른 일본인 명의의 여권을 발급받고, 주오사카 한국 총영사관으로부터 관광 목적의 사증을 받아 입국했다.

 

여권 자체는 위조·변조하지 않았으나, 다른 사람으로 가장해 입국한 것이다. 봉형 금속탐지기와 X-Ray 등이 이 사건을 계기로 공항에 도입됐다. 

 

사건의 여파로 1973년 202만6천90명이던 출입국자는 1974년 188만333명으로 급감했다.

2001년 인천국제공항 개항 때 우리나라 전체 출입국자 2천264만명 가운데 인천공항 출입국자는 77.6%인 1천759만명이었다. 

 

지난해 인천공항 출입국자는 6천679만명으로 20년 사이 우리나라 인구에 맞먹는 4천920만명이나 늘어났다.

 

환승객은 출입국자로 포함하지 않는데 지난해 인천공항 국제선 전체 이용객은 7천75만명이다. 여전히 국내 출입국자의 70% 이상이 인천공항을 거친다.

 

국경이 열리거나 닫히는 정도는 시대에 따라 변하기 마련이다. 인천공항의 국경 모습도 '포스트 코로나'에서는 다시금 큰 변화를 맞을 수밖에 없다.

글/박경호기자 pkhh@kyeongin.com, 사진/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