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하얀 종이는
내가 살던 지구처럼
드넓고 평화롭다.
어느 날,
이 종이가 꼬깃꼬깃 구겨졌다.
작고 주름져버린 종이
마치 오늘의 봄처럼
꽉꽉 막힌 집 안에서
꼭꼭 숨어 지내는 사람들
꽉꽉 조이는 마스크 속에서
덜덜덜 불안한 사람들
구겨진 삶 때문에
모든 것이 멈췄고
숨이 턱 막혀버렸다.
그러나
구겨져서 알게 되었다.
모두를 위해 희생해 준 사람들도
모두를 위해 잠 못 자는 사람들도
나와 같은 사람들도
나와 다른 사람들도
원래 이 세상에서 함께 살고 있었고
항상 서로를 걱정하고 있었다.
구겨진 덕분에
세상 사람들 모두
가까운 이웃이 되었고
구겨진 덕분에
세상 사람들 모두
서로를 아끼고 위해 주게 되었다.
구겨진 일상은
모든 걸 뒤엎어 버렸고
세상은
작디작은 먼지가 되었지만
모두가 더 단단해지고 가까워졌다.
이런 이웃이 생겨
희망이 생기고
이런 이웃이 생겨
코로나도 이겨낼 용기가 생긴다.
원치않은 봄이지만
구겨진 채로 서로 돕는다.
이 구겨진 세상
나쁘지만은 않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