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 비행 이착륙 조종사 육안 의지
항공기 충돌 예방 '지상통제' 필요성
세계 최초 관제사 미국인 '아키 리그'
깃발 두개 이용 'GO'·'HOLD' 전달
국내 한국전쟁 시기 도입 '제주 흔적'
인천 3개 운용… 사람 이동까지 통제
'안전 책임' 관제사 전국에 600여명
그 많은 비행기들이 그냥 이착륙하는 게 아니다.
항공기를 일사불란하게 지휘·통제하며 안전하면서도 제시간에 운항할 수 있도록 역할을 하는 곳이 '관제탑'이다. 관제탑의 승인이 없다면 항공기는 이·착륙뿐 아니라 활주로 내 이동도 불가능하다.
"에어재팬 8535. 팔로 더 그린(follow the greens)."
지난달 28일 오후 2시25분께 인천국제공항 인천관제탑. 서울지방항공청 소속 김세은 관제사가 일본 나리타에서 온 에어재팬화물항공 소속 항공기에 활주로 이동 경로를 안내했다.
항공 교통관제, 즉 관제업무를 수행하는 인천관제탑은 100.4m높이다.
관제사들의 공간은 가장 높은 21층이다. 관제공간 외벽은 유리로 돼 있어 인천공항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
항공기는 운항 전부터 끝날 때까지 관제사의 통제를 받는다. 이륙할 때를 기준으로 인천관제탑은 항공기가 유도로에 진입해서 활주로를 거쳐 이륙 직후까지 컨트롤한다.
활주로 마지막 부분부터 0.5마일(800m) 이상 멀어지거나 이륙 후 500피트(152m) 이상 고도가 올라가면 인천관제탑은 서울접근관제소로 항공기 주파수를 이양한다. 착륙할 때는 활주로 10마일(16㎞) 이전부터 착륙해 게이트로 이동할 때까지다.
이날 김세은 관제사는 동측 지상 관제석에 앉았는데 관제석 앞 모니터에 다양한 정보가 떴다. 레이더 화면에는 인천공항 인근의 항공기 운항 상황이 드러났다. 또 다른 모니터에는 인천공항 내 활주로와 유도로에 있는 항공기 위치와 이동정보를 보여줬다. 인천관제탑은 인천공항 중앙에 있다.
관제탑 기준으로 동측 좌석에서 1·2활주로를, 서측 좌석에서는 3활주로를 관제한다. 각 좌석마다 관제 구역과 역할이 정해져 있다. 김세은 관제사가 앉은 지상 관제석에서는 유도로와 활주로 등 항공기의 지상 이동을 통제·지휘한다.
동측이나 서측에 각각 지상 관제석, 국지 관제석이 따로 있다. 지상관제는 활주로를, 국지관제는 뜨고 내리는 과정을 통제한다. 허가 중계 관제석, 감독석, 항공교통 흐름석 등도 있다.
인천공항 관제탑은 관제사 피로도 등을 감안해 1시간 단위로 근무 좌석을 교체한다. 관제 업무는 그만큼 높은 집중력을 요구한다.
이날 오후 2시35분께 영종도 왕산해수욕장 인근에서 소방헬기가 이륙했다. 긴급 환자를 이송하기 위한 것이다. 연평도 주민이 전기톱으로 작업하다 크게 다쳤기 때문이다. 인천소방본부는 인천공항 관제탑에 이 같은 내용을 통보했다.
김세은 관제사는 "환자 이송 등 긴급 비행에 대한 정보가 들어오면 다른 항공기의 이동을 중단시키고, 긴급 항공기를 먼저 이동하게 한다"며 "도로에서 119 소방차 등 응급차량이 먼저 통행할 수 있게 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했다.
관제탑에서는 항공기뿐 아니라 사람들의 움직임도 통제한다.
이날도 예정된 지역에서 잔디정리작업이 이뤄지는지 근무자에게 확인했다. 김 관제사는 "이 지역에 있는 모든 인원은 관제탑과 통신할 수 있는 장비를 착용하고 있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인천공항에 인천관제탑 외에도 2개의 관제탑이 더 있다. 인천국제공항공사가 운영하는 제1, 제2 계류장 관제소다. 1계류장 관제소는 2008년 4월부터 운영을 시작했으며 제1여객터미널 인근 계류장, 제방빙장(겨울철 항공기 얼음을 제거하는 장소), 화물항공기 계류장 등을 관할한다.
2계류장 관제소는 제2여객터미널 인근을 담당하고 있으며 2017년 11월부터 운영을 시작했다. 인천공항은 규모가 크고 오가는 항공기가 많아 공간을 이원화해 관제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국내 공항 중에서 계류장 지역과 활주로·유도로 구역을 이원화해 관제 업무를 하는 곳은 인천공항이 유일하다. 김포국제공항과 제주국제공항은 1곳의 관제탑에서 모든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인천공항공사 김은별 계류장 관제팀장은 "계류장 지역은 항공기뿐만 아니라 차량과 장비 등도 이동하는 공간"이라며 "항공기와 장비가 가장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고 했다.
김세은 관제사는 지난 2015년부터 인천관제탑에서 근무를 시작했다. 그는 관제업무가 '안전'을 위해 가장 중요한 업무라고 했다.
그는 "한 번은 착륙하는 항공기의 고도가 너무 낮아 기장님에게 해당 내용을 알린 적이 있다"며 "다행히 항공기가 고도를 높였고 무사히 착륙할 수 있었다"고 했다.
그는 또 "당시에 관제를 소홀히 했다면 사고로도 이어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며 "착륙 후 기장님이 '고도가 낮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알려줘 고맙다'고 인사를 하기도 했다. 그때 관제사로서 안전을 책임지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고 했다.
항공기 운항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게 관제다. 지금과 비슷한 형태의 관제업무가 진행된 지는 100년이 채 되지 않았다. 세계 최초의 관제사는 미국인 아키 리그(Archie William League·1907~1986)다.
미국 연방항공국(FAA)에 따르면 그는 1929년 처음으로 항공교통 관제 서비스를 제공했다. 그는 지금과 달리 'HOLD'를 의미하는 붉은 깃발과 'GO'를 의미하는 체커깃발로 의사를 전달했다. 그가 근무한 '관제탑'은 작은 파라솔과 테이블이 전부였다.
미국 연방항공국은 관제 업무 시작 이유를 '항공기 충돌 예방'이라고 분명히 하고 있다. 초기 항공기는 조종사의 육안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기장은 항공기 구조상 뒤와 옆을 볼 수 없었다. 주위에 어떤 비행기가 있는지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사고를 막을 수 있는 길이었다. 항공 교통관제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국내 최초 공항인 여의도 비행장은 1916년에 조성됐다. 비행장이라고는 하지만 항공기가 뜨고 내릴 수 있는 활주로와 격납고만을 갖추고 있을 뿐이었다. 항공기 안전은 온전히 기장과 정비사의 능력에 의존했다.
안창남(1901~1930)은 한반도 상공을 비행했던 최초의 조선인 비행사였다.
그를 다룬 책 '안창남 : 서른 해의 불꽃 같은 삶'을 보면, 조선 최초의 비행장은 1911년 5월 문을 연 일본의 첫 비행장인 도코로자와비행장보다 5년 늦은 1916년 3월 여의도에 조성됐다. 그 무렵엔 비행기에 무선장치가 달려 있지 않아서 비행장이라 해도 관제시설 없이 활주로와 간단한 격납시설만 갖추었다.
안창남은 오로지 자신의 조종기술로 비행을 했다. 크고 작은 사고도 있었다. 안창남은 실습생 시설인 1920년 '개벽'에 기고한 글에서 "비행할 때 중요한 것은 오로지 온몸의 정력을 써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작은 부주의로 생명을 버리는 큰 실책을 합니다"라고 썼다.
국내에서 관제 업무가 처음 시작된 것은 한국전쟁 때로 추정된다. 한국전쟁 때 이용한 제주도 모슬포 비행장의 관제탑 흔적이 지금도 남아 있다. 한국전쟁 당시 울산비행장 등의 사진을 보면 관제업무를 수행하는 장소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때도 항공기를 쉽게 식별할 수 있도록 높은 구조물을 설치했다. 현재와 비슷한 형태의 관제탑이 조성된 것은 한국전쟁 이후 만들어진 김포공항이 처음이다. 1962년 개장한 김포공항 관제탑은 높은 건축물 꼭대기에 사방을 볼 수 있는 공간을 마련했다. 지금 형태와 비슷하다.
관제업무가 한국전쟁 때 시작됐지만, 국내 최초의 공식 항공교통관제사가 탄생한 것은 1960년대다. 1962년 12월 31일 고(故) 김두방 관제사를 비롯해 23명에게 항공교통관제사 자격증을 발부했다.
항공기가 늘어나고, 국내 항공교통량이 증가하면서 관제사의 역할도 점차 커졌다. 현재는 600여명의 관제사가 전국 공항에서 관제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글/정운기자 jw33@kyeongin.com, 사진/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