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여간 전쟁으로 300여만명 피해
북한의 위협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
민족비극 재발 막으려면 '교육' 중요
"6·25전쟁과 같은 민족 비극이 다시 일어나지 않으려면 '교육'이 중요합니다. 그것도 제대로 해야 하는데 요즘은 아쉬운 게 많습니다. 나 같은 전쟁세대는 급격히 줄어들고 해주고 싶은 얘기는 많은데 마음만 급해집니다."
대한민국 6·25참전유공자회 경기광주시지회 이재경(87) 회장은 기자를 만나자마자 빼곡히 면을 채운 A4용지 4장을 건넸다.
이 회장은 "며칠 뒤면 6·25이고 올해는 한국전쟁 발발 70년이 되는 해라 그 의미가 더 크다. 할 말이 많아 신문에 기고를 하고 싶었지만 행여나 두서없이 쓴 글이 누가 되지는 않을까 싶었다. 인터뷰에서 혹시나 하지 못한 말이 있을까 싶어 몇 자 끄적였다"고 말했다.
무슨 할 말과 사연이 이리 많기에 구순(九旬)을 바라보는 연세에 컴퓨터와 씨름하며 글을 정리했을까.
"그러니까 1950년 6·25전쟁이 일어난 해에 스무살이었던 분들이 올해로 90세다. 아무리 의료기술이 발달했다 하더라도 돌아가신 분도 많고 실제로 내 친구들만 봐도 수시로 부고가 날아온다. 또 거동을 못하거나 요양원에 있는 이들이 대부분"이라며 "전쟁을 겪어내고 이를 후세에 알려줄 이들이 운명을 달리할 때마다 조급한 마음이 든다"고 이야기했다.
이 회장은 "전쟁의 포성이 멎은 지 70년이 지났지만 북한의 위협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당시 3년여 간의 전쟁으로 300여 만명에 달하는 인명손실과 막대한 재산 피해를 입었다"며 "특히 수많은 젊은이들이 자신의 입신(立身)에 대한 꿈은 접어두고 오직 국민과 민족을 위해 전쟁터에 뛰어들어 적의 총탄 앞에 맞섰다. 이는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중요한 대목"이라고 강조했다.
그도 전쟁이 일어났을 때 16살의 앳된 학생이었다. 학도병으로 자원했고 교복을 입은 채 서울(용산중)에서 울산 언양면 길천리(현재 울주군)까지 가서 훈련을 받았다.
"나뿐만이 아니었다. 6·25전쟁 중 가장 치열했던 낙동강 방어전투 중 다부동전투는 맥아더 장군이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시킬 수 있었던 발판을 마련한 전투였다. 이때 16~17세 학생까지 '나라가 먼저'라며 교복을 입고 책 대신 총을 들고 5만여 명이 낙동강 전선에 뛰어들었다. 죽은 사람의 시체가 산처럼 쌓이고 그 피가 낙동강을 붉게 물들여 시산혈해(屍山血海)라는 말까지 생겨났다"며 열변을 토해낸 그는 '지면 사정상 다 못 담을 수도 있다'고 기자가 말하자 "그럼 이 말만은 꼭 담아달라"고 했다.
"6·25에 대한 많은 기록 중 역사적 사실에 충실한 것이 있는가 하면, 정반대로 왜곡된 침략자의 주장을 대변하는 기록이 넘쳐나는 것도 현실이다. 젊은이들이 올바른 역사관을 가졌으면 하고 조국 수호를 위해 전쟁의 포연 속으로 사라져 간 호국영령들에게 오늘도 깊은 감사를 전한다."
광주/이윤희기자 flyhigh@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