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둘 키우는 성남 전기정·양신덕씨 부부
코로나 사태후 탄천 라이딩·주말농장 분양
사람 많은 곳 피하니 "지역사는 재미 알아가"
자연스레 '마을쇼핑' 지역화폐 사용도 늘어
"가끔 비싸도 시간벌고 필요한 만큼 사게돼"
짧은 시간동안 우리 삶을 뒤흔든 코로나19 바이러스. 감염병은 지역의 평범한 한 가정의 일상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IT업계에서 일하는 아내와 두 아들(초등학교 3·5학년)과 함께 성남시에 사는 전기정(43)씨 가정도 코로나19가 가져온 변화의 한 가운데 있다.
"집 가까운 곳에 탄천이 있다는 것을 지금처럼 다행스럽게 느껴본 적이 없네요."
전씨는 코로나19가 국내에 확산하고 나서야 탄천의 소중함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요즘 전씨 가정에서는 인라인스케이트나 자전거를 타고 온 가족이 함께 즐기는 라이딩이 중요한 주말 일정이 됐다. 전씨는 "갈 곳이 마땅치 않은데, 만약 탄천마저 집 주변에 없었다면 매 주말이 너무 지루하고 막막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전씨가 거주하는 아파트 단지와 탄천은 지하보도로 연결돼 있다. 아파트 통로에서 탄천까지의 거리는 100여m에 불과하다. 한창 정신없이 뛰어다니는 시기의 아들들이 차량 통행이 빈번한 도로를 건너지 않고도 빠르고 안전하게 자전거를 타고 탄천에 도착할 수 있다는 얘기다.
아이들은 새로 산 자전거를 매일 같이 타고 나가 땀범벅이 돼서야 돌아왔다. 전씨 부부도 10여년 동안 한 번도 신은 적 없는 인라인스케이트를 신발장에서 꺼내어 깨끗이 닦았다. 두 아이들과 함께 바퀴를 구르며 탄천변의 상쾌한 공기를 들이마시면 감염병에 대한 걱정을 날려버릴 수 있었다.
전씨는 "집 문밖을 나서자마자 자전거를 탈 수 있다는 점이 엄청난 행운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며 "내가 사는 지역, 마을 주변에 뭐가 있는지, 그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다시 살펴보고 생각해보는 계기가 됐다"고 했다.
이보다 더 두드러진 변화는 채소를 기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아내 양신덕(43)씨는 지난 2월 말께 집에서 2㎞ 떨어진, 차로 5분 거리의 낙생저수지 인근 주말농장을 찾았다. 15㎡의 비옥한 땅을 1년 동안 분양하는 비용은 12만원이다.
이들 가족은 텃밭에 치커리, 상추, 적상추 등 쌈채소와 감자, 고추, 대파, 수박 등을 심고 주말 이른 아침이나 초저녁마다 찾아가 작물을 돌본다. 쌈채소를 수확하는 날에는 온 식구가 삼겹살 파티를 벌인다.
이 가족에게는 수년 전 의욕만 앞서서 집과 1시간여 거리에 있는 주말농장을 분양받은 후 제대로 작물을 돌보지 못해 낭패를 본 경험이 있었다. 양씨는 "5분 거리에 주말농장이 있어 행복하다"며 "지역에 사는 재미를 알아가고 있다"고 했다.
코로나 이전 전씨 가정의 주말 풍경은 어땠을까. 이들 가정의 주말은 이동으로 시작해 이동으로 끝나곤 했다. 수많은 인파로 북적이는 테마파크에 가거나 일상에서 벗어나 기분전환을 하기 위해 집에서 가능한 먼 곳으로 떠났다.
그게 아니면 한달에 1번 정도는 축구를 좋아하는 둘째 아들의 클럽리그 참가를 위해 가깝게는 화성이나 용인, 멀게는 천안 등지를 다니거나 1시간여 거리인 인천과 부천에 있는 양가 부모님 댁을 찾아가 주말을 보냈다.
그러나 설 연휴 이후로 부모님 댁에 방문하는 대신 안부전화로 대신했다. 당연하게 누릴 수 있었던 일들이 중단됐다.
전씨는 "둘째 아들 녀석이 좋아하던 축구클럽 경기도 언제 다시 열릴지 알 수 없고, 여행을 가거나 테마파크에 놀러 간 것도 언제였는지 이젠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며 "얼굴을 마주하는 것이 미덕이 아닌 세상이 낯설다"고 했다.
전씨 가정은 지난 5월부터 매달 1일에 성남시 지역화폐인 성남사랑상품권 50만원 어치를 지류 상품권으로 사서 온 가족이 동네 쇼핑에 쓰고 있다. 50만원은 개인 월 최대 구매 한도다. 성남시는 코로나19로 침체한 지역경제를 활성화하겠다는 취지에서 지난 5월부터 지역 화폐 할인율을 10%까지 높였다.
양씨는 "카드를 들고 있어야만 쓸 수 있는 전자화폐와 달리 지류 화폐는 온 가족이 나눠서 쓸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며 "45만원으로 50만원어치 상품권을 살 수 있는 혜택도 매력적이다"고 했다.
자연스레 대형마트를 찾는 횟수는 줄었고 동네 상점에서 돈을 쓰는 경우가 늘었다. 이들 가정은 소·돼지·닭고기는 아파트 상가에 있는 '아빠가 준비한 고기'라는 상점에서, 야채와 과일은 역시 아파트 상가에 있는 '총각네 야채가게'에서 산다.
양씨는 "동네 상점에서 판매하는 물건이 마트보다 더 비싼 경우도 종종 있기는 하지만, '시간 낭비', '기름 낭비'하지 않고 집 앞에서 필요한 것을 필요한 만큼만 사서 쓰는 장점이 더 크다"고 했다.
전씨 가족은 코로나19에 적응해 집안 방 배치도 바꾸었다. 그동안 두 아들은 한 방에서 함께 공부했지만 최근 공부방을 나누었다. 학교 수업의 상당 부분이 원격수업 형태로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또 서재로 쓰던 방은 양씨의 재택근무가 가능하도록 책상을 추가로 배치했다.
양씨는 확진환자가 급격히 증가하던 지난 3월 한 달 동안은 집에서 근무했고, 지금은 매주 1차례 수요일마다 재택근무를 하고 있다. 양씨는 "집에 머무르는 시간이 많아지다 보니 방이 해야 하는 역할도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면서 "주변에는 최근 들어 '집 꾸미기'를 하는 집들이 많다"고 말했다.
/기획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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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획취재팀
글 : 김성호·민정주차장, 신지영기자
사진 : 조재현·김도우기자
편집 : 안광열차장, 장주석·연주훈기자
그래픽 : 박성현·성옥희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