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BC 뉴스 시그널로 베토벤 '운명'
적이 아닌 인류대표 음악가 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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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거리에 정확한 통신문을 전송하려면 전건을 길게 누르거나 짧게 눌러서 신호를 보내는데 이게 우리가 아는 모스부호였다. …(중략)… 짧은 신호는 '돈', 긴 신호는 '스'였다. A는 약속 신호가 짧게 한 번 길게 한 번이었고, '돈스'로 읽었다. B는 긴 신호 한 번 짧은 신호 세 번, 그러니 '스돈돈돈'. 한글 ㄱ은 돈스돈돈 식이었다. 무선놀이할 때 우리 입에서는 스돈돈돈돈 스돈스 돈돈돈 하면서 '돈'과 '스'가 무한대로 흘러나올 수밖에 없었다. - 양진채 소설집 '검은 설탕의 시간'(강 刊) 가운데 '북쪽 별을 찾아서' 중에서.

사무엘 모스가 창안한 '모스부호'는 1844년 미국 워싱턴과 볼티모어 간에 연결된 전선 65㎞ 구간에서 첫 공개 전송됐다. 이후 가장 간단한 방법으로 세계를 연결했다. 우리나라에선 1885년 인천(제물포)과 서울(한성) 사이 전신업무 개시와 함께 도입됐다.

우리가 '운명'이라고 부르는 베토벤 '교향곡 5번, Op 67'(1808년 초연)은 서양에선 작품의 주요조성인 'C단조' 교향곡으로 불린다.

베토벤을 수식하는 '악성(樂聖 )'이니 이 작품의 부제 '운명(運命)'은 이름 붙이기 좋아하는 일본인들이 만들었다. 때문에, 우리와 일본에서 주로 통용되는 '운명'은 서양에서 '승리' 교향곡으로도 잘 알려졌다.

우연이겠지만, 유명한 셋잇단음 모티브인 '딴딴딴따~'의 리듬이 승리(Victory)를 의미하는 'V'의 모스부호(돈돈돈스)와 일치하기 때문이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연합군은 베토벤의 이 작품으로 승리를 다짐했다. 당시 영국 BBC 방송은 전쟁의 승리를 염원하면서 라디오 뉴스 시그널로 '운명'의 첫 소절을 사용했다. 이는 레지스탕스를 비롯해 나치의 통제 아래 있는 유럽 가정에 전파되는 희망의 신호였다.

전시(戰時)에 적국(독일) 작곡가의 음악을 방송 시그널로 사용하는 것에 대한 찬반이 영국에서 있었지만, 당시 총리였던 윈스턴 처칠은 '불에는 불'이라는 견해를 밝혔다. 전제주의를 부정했던 베토벤의 음악이 나치의 비뚤어진 명분에 대항하는 것으로 본 거였다.

또한 처칠과 영국, 연합군에 포함된 유럽인들은 베토벤을 독일 작곡가가 아니라 인류를 대표하는 음악가로 인정했기 때문에 가능했을 터였다.

투쟁적이며, 궁극에 승리를 쟁취하는 베토벤의 다섯 번째 교향곡 '운명'은 작품의 성격과 함께 순번 '5'를 뜻하는 로마숫자(Ⅴ)마저도 영문 'V'와 일치하며 '승리'의 이미지를 굳혔다.

/김영준 인천본사 문화체육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