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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이라서 죄송합니다'. 시대를 헤쳐나온 김희수(오른쪽) (주)비엠라인 대표는 올드-보이로 가득찬 사업계에 자신만의 원칙으로 대응하며 그들의 관행을 물리쳐 왔다. 늦은 밤까지 이어지는 술과 노래에서 사업의 정보를 얻느니 차라리 내발로 뛰어 찾겠다는 당당함이 세 자녀를 강하게 키운 원동력이다. 우수지 랑데부 대표는 세 자녀 중 둘째다. 안양/권순정기자 sj@kyeongin.com

2017년 안양창업센터 1인기업 첫발
수익은 유기견·한부모 가정 돕고파
어머니 김 대표 "오히려 내가 배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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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업 성적이 안 좋아도 난 내가 목표하는 바가 있으니까 그 길로 가면 된다고 생각했어요."

안양의 반려견용품 판매업체 '랑데부'의 우수지(24·여) 대표는 당찬 꿈이 많다.

'자신의 한계, 실패와 좌절에서 겪은 조심성이나 의기소침 대신 기업을 전문경영인에게 맡기고 홀연히 유학을 떠나겠다', '랑데부의 수익을 유기견을 위해 쓰고 한부모가정이란 이유로 마음 다친 사람들을 돕고 싶다든가' 하는 큰 꿈을 꾼다.

우 대표는 꿈이 큰 만큼 열심히 산다. 2017년 11월 랑데부를 탄생시키고 아이템 기획부터 판매까지 혼자 담당한다. 세금처리는 물론 계약서도 본인이 작성하고 검토한다. 오전 6시부터 시작된 하루는 낮 시간엔 회의로 가득 차, 이른 시간과 늦은 시간, 주말 등을 업무에 쓰지 않을 수 없다.

지칠 법도 한데 우 대표는 차분하고 진지한 특유의 톤으로 "제가 선택한 길"이라고 선을 그었다. 그러면서 "하루 목표치는 하고 쉬어야 한다"고도 했다.

바삐 뛰는 젊은 사장은 지난 10일 온라인 수출화상회의에서 MOU를 끌어내는 성과를 내고, (사)경기중소기업연합회 화장품 산업위원회 사무국장을 맡으면서, 이번엔 안양시 청년기업인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안양창업지원센터에 자리한 1인 기업 랑데부의 사무실이 24살 청년이 이끄는 '실험실' 정도가 아닌 것이다.

나이를 뛰어넘은 추진력과 의젓함은 엄마에게서 받은 가장 큰 자산이다. 엄마, 김희수(53)씨는 안양의 화장품 제조업체 (주)비엠라인의 대표다. 사람들은 우 대표의 엄마가 김 대표라는 사실을 알면 '엄마 덕'을 기정 사실화한다.

하지만 김 대표는 "그런 말을 들으면 겉으론 웃지만 너무들 쉽게 판단한다고 생각한다. 우 대표가 얼마나 애를 쓰는가를 보지 않고 그저 '엄마 덕'으로 치부한다"며 "우리 사회는 전반적으로 청년들의 진실에 대해 관심이 없다"고 일침을 놨다.

'모녀기업인'으로 콘셉트를 잡고 인터뷰를 요청했는데, 우 대표는 기자 앞에서 단 한 번도 김 대표를 엄마라고 부르지 않았다.

심지어 서로 통화할 때도 엄마 대신 '김 대표님'이었다. 그게 하도 이상해 김 대표에게 얘기했더니, "우 대표가 스스로 호칭을 정했다. 아마 밖에 나와 엄마라고 불렀으면 아직도 그 정도밖에 안되냐고 했을 것"이라며 "공과 사는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고 답했다. 일은 일로서 대한다는 단호함에서 두 기업인이 닮아있었다.

동료 사업가이자 딸에게 김 대표는 "다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나이 든 남성이 대다수를 차지하는 기업인 사이에서 20대 여성이 겪을 크고 작은 일들이 엄마로서 걱정이 되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김 대표는 "우 대표에게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항상 감사하고 고마워요. 그를 보고 저도 더 열심히 하려고 합니다"라고 응원의 메시지를 남겼다.

안양/이석철·권순정기자 sj@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