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천항 성장에 중추적 역할
2005년 터무니없는 컨물동량 예측 재조사 요구
대형선박 입출항 신항 '증심' 밀고나가 목표달성
2017년 年300만TEU 돌파 "관계자 힘합쳐 성과"
# 외형적 성장속 부족한 내실
'코로나 악재' 空 컨테이너 비율 예년보다 늘어
울며겨자먹기식 운송 '하역사·선사 수익 악화'
제조업 발전 필요… 철도·도로사업 차질 없어야
인천대교 주경간 너비가 700m로 확정되면, 인천항에 입출항하는 1천500TEU(1TEU는 20피트짜리 컨테이너 1대분)급 이상 화물선의 교차 통행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현재 인천항을 가장 많이 찾는 컨테이너선이 3천~5천TEU급인 점을 고려하면 인천대교 주경간 너비가 700m보다 넓어야 했다. 주경간 너비가 좁을 경우 인천항은 국제항만이 아닌 부산항에 종속된 지역항만으로 전락할 수 있었다.
당시 인천항만업계 관계자들과 시민사회는 '인천대교(제2연륙교) 주경간 폭 확대 범시민대책위원회'를 만들었다. 이 단체는 시민들을 대상으로 서명 운동을 진행하는 등 대정부 투쟁을 벌여 인천대교 주경간 너비를 700m에서 800m로 늘리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이후 범시민대책위원회는 공부하는 인천항 CEO 모임인 '인천항을 사랑하는 800인 모임'(이하 인사 800)의 토대가 됐다. 인사 800은 2006년 설립 이후 햇수로 약 15년이라는 시간이 흐르면서 어느덧 인천항만업계를 대표하는 단체가 됐다. 그 중심에는 남흥우(68) 전 인사 800 회장이 있었다.
인사 800 결성을 주도하고, 회장을 맡아 모임을 이끌어 온 남 전 회장은 지난달 인천복합운송협회 양창훈 회장에게 바통을 넘겼다.
남 전 회장은 "3~4년 전부터 새로운 인물이 인사 800을 이끌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이제야 기회가 됐다"며 "젊은 사람이 회장으로 취임했기 때문에 인사 800은 앞으로 더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인천 출신인 그는 1982년 고려해운(주) 인천사무소에서 근무하면서 인천항과의 인연을 시작했다.
그는 "1970년대에 연안부두를 중심으로 인천항 물류단지가 만들어졌고, 인천 주안과 부평에는 산업단지가 들어섰다"며 "당시 인천항을 찾은 외국 선원들이 '인천항이 한국 최고의 항만이 될 것'이라고 이야기를 할 정도로 기대감이 컸다"고 회상했다.
이어 "안타깝게도 인천항은 애초 기대보다 성장하지 못했다"며 "이러한 마음이 인사 800을 만드는 데 밑거름이 된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인사 800의 기초가 된 인천대교(제2연륙교) 주경간 폭 확대 범시민대책위원회를 구성할 때도 인천항은 성장의 갈림길에 서 있었다. 인천대교 주경간 너비가 700m로 결정되면 대형 선박 입출항이 어려워져 인천 신항개발 사업이 무산될 수 있었다. 인천항만업계 관계자들은 십시일반 돈을 모아 주경간 너비 확장에 힘을 보탰다.
남 전 회장은 "인천대교 주경간 폭을 확장하기 위한 연구용역 비용으로 8천만원이 필요했다"며 "내가 공동대표를 맡고 있던 선주협회 인천지구협의회에서 모아야 했던 800만원을 80명이 10만원씩 마련해보자는 취지에서 '인천항을 사랑하는 80인 모임'을 만들었고, 이는 인사 800의 바탕이 됐다"고 설명했다.
인사 80은 애초 목표 금액인 800만원보다 많은 1천200만원을 모금했고, 더 많은 사람을 수용하기 위해 인사 800으로 명칭을 바꿔 현재에 이르고 있다.
남 전 회장과 인사 800 회원들은 현재 인천항의 모습을 만드는 데 중추적 역할을 했다.
2005년 해양수산부가 '2011년 인천항의 연간 컨테이너 물동량 예측치'를 5년 전 추정치보다 92만TEU 줄여서 발표하자 남 전 회장은 인천항만업계와 함께 재조사를 요구했고, 인천항 예측 물동량이 수정되면서 인천 신항이 만들어질 수 있었다.
인천항은 신항 개항으로 2017년 국내에서 두 번째로 연간 컨테이너 물동량 300만TEU를 돌파했다.
인사 800은 2012년부터 2년여 동안 대형 컨테이너선 입출항을 위한 인천 신항 증심(수심 14→16m) 사업을 줄기차게 주장했고 목표를 이뤄냈다. 현재 인천항에 기항하는 컨테이너선 중 최대 규모는 1만TEU급이다. 증심이 이뤄지지 않았다면 대형 컨테이너선의 입출항이 불가능했다.
남 전 회장은 "인천항을 더 발전시켜야 한다는 마음으로 인천항만업계 모든 관계자가 힘을 합쳐 성과를 낼 수 있었다"며 "인천항만업계가 노력해 구축한 인프라는 인천항 성장에 버팀목이 되고 있다"고 자평했다.
인사 800에서 진행하는 세미나도 인천항만업계 종사자들이 발전하는 데 도움이 되고 있다는 게 남 전 회장의 생각이다. 인사 800은 매년 6차례 정도 인천항 현안 세미나를 개최하고 있다. 또 매년 1차례 국내 다른 항만을 방문해 세미나를 열기도 했다. 매년 월미산 정상에서 용왕제를 개최하며 인천항만업계 화합의 자리도 만들고 있다.
남 전 회장은 "인천항은 하역사와 선사, 항만 근로자, 창고업계 등 45개 업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힘을 모아 운영되는 곳"이라며 "선사부터 예선, 도선사, 하역 근로자, 줄잡이, 통선, 창고, 포워더 등 각 영역 종사자들이 자기 분야에서 최선을 다해야 원활하게 운영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그동안 각 업계가 서로 다른 정보를 갖고 있어서 인천항의 장점을 적극적으로 홍보하기 어려웠다"며 "인사 800의 세미나는 모든 업계가 한데 모여 정보를 공유하고, 협업할 부분에 대해 논의하는 소통 창구가 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남 전 회장은 "인천항은 외형적 성장을 거듭하고 있지만, 아직 내실이 부족한 것 같다"고 진단했다.
코로나19 영향에도 올 상반기 인천항 컨테이너 물동량은 부산항·광양항 등 국내 주요 항만 중 유일하게 전년 동기 대비 늘었지만, 전체 컨테이너 중 공(空) 컨테이너 비율이 예년보다 높아져 하역사와 선사들의 수익은 나빠졌다. 석유와 유연탄, 가스를 제외한 순수 벌크 화물 물동량은 몇 년째 감소세가 계속되고 있다.
남 전 회장은 "벌크 원자재 화물을 인천항으로 수입한 뒤, 인천에서 재가공해 다시 컨테이너에 실어 수출하는 구조가 만들어져야 항만산업의 부가가치가 높아질 수 있다"며 "지금은 인천 지역 제조업이 부진한 탓에 소비재 화물이 컨테이너에 담겨 수입되고, 선사들은 수출 물량을 찾지 못해 어쩔 수 없이 최소한의 비용만 받고 수출 컨테이너를 운송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인천시와 인천항만공사 등 항만 관계 기관이 인천 제조업의 발전을 위해 노력해야 물동량도 늘어날 수 있다"며 "이를 위해선 인천 신항 철도 인입선과 수도권 제2외곽순환고속도로 인천~안산 구간 착공 등 인프라 구축 사업을 차질 없이 진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동안 가장 앞에서 인사 800을 이끌었던 남 전 회장은 이제 한 발 뒤에서 후배들을 응원하는 입장이 됐다.
그는 "인천항은 세계에서 가장 큰 소비 시장인 중국과 가깝고 인천공항과 인접해 있어서 발전 가능성이 높은 항만"이라며 "반평생을 함께 한 인천항이 앞으로 더욱 큰 역할을 하길 바란다. 인천항이 한 단계 더 도약할 수 있도록 후배들의 뒤에서 힘이 닿는 데까지 도움을 주겠다"고 밝혔다.
글/김주엽기자 kjy86@kyeongin.com, 사진/김용국기자 yong@kyeongin.com
■ 남흥우 전 회장은?
▲ 1952년 인천 출생
▲ 1971년 인천고 졸업, 1976년 한국해양대 기관과 졸업
▲ 2001~2015년 (사)한국선주협회 인천지구협의회 위원장
▲ 2004년 제2연륙교(인천대교) 주경간 폭 확대 범시민대책위원회 공동대표
▲ 2006~2020년 인천항을 사랑하는 800인 모임 회장
▲ 2012~2015년 천경해운(주) 인천지역본부장
▲ 2014~2019년 인천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공동대표
▲ 2015년~ (주)천경 경인지역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