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인터뷰 권은숙
인천 구도심 배다리에 문화 공간을 만들어 동네에 활기를 불어넣는 활동을 10년 넘게 이어온 문화기획자 '청산별곡' 권은숙 대표가 미추홀구로 영역을 넓혀 수봉공원 인근에 '창작실험실 수봉정류장' 문을 열고 1년을 맞았다.

배다리 벗어나 옛 수봉공원 밑자락에 창작실험실 '예술가와 공유'
무인형태 가게… 로봇 대체 아니라 주인장 더 많은 손길 '친근함 선사'
혼자가 아닌 작가들 교류·소통 일반인 이웃에 소재 얻을 수도 있어
'활짝 열린 셔터' 동네어르신들 반겨… 4층 건물 '문화빌라' 조성 포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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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대신 고양이가 서점을 지키는 무인 책방, 극장·공방·타로 점집 등으로 매일매일 모습을 바꿔 문을 여는 가게, 이것저것 궁금한 것이 많은 이들의 문화공간, 여행객을 위한 안내소….

구도심인 인천 동구 배다리에는 이런 특별한 공간이 있다. 배다리에 활기를 불어넣는 활동을 10년 넘게 이어온 이는 본명 대신 '청산별곡'이라는 별칭으로 더 많이 알려진 문화기획자 권은숙(54)씨다.

그런 그가 딱 1년 전인 지난해 배다리를 벗어나 또 다른 구도심 미추홀구 옛 수봉공원 밑자락에 창작자들을 위한 공간인 '창작실험실 수봉정류장'의 문을 열고 새로운 일을 벌이고 있다. 수봉정류장은 창작자와 생활예술가들이 모여서 각자의 작업을 공유하는 '창작 실험실'이자 놀이터다.

수봉정류장에서 그를 만나 지난 1년을 포함한 그동안의 활동에 대한 얘기를 들었다.

권씨는 "편하게 책을 읽을 수 있는 책방이나 창작자들이 맘 편히 작업할 수 있는 창작공간 등 동네마다 각자 다른 개성이 있는 문화공간이 들어섰으면 하는 바람"이라며 "아기자기한 문화공간이 문을 열 수 있도록 싹을 틔우는 데 작은 역할이나마 하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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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부터 시작된 배다리에서의 지난 10여년의 활동을 소개하면

"'문화공간 달이네'라는 이름으로 다양한 문화 공간을 운영하고 있다. 인천에서 성장했고 인천을 떠나 환경단체 활동가로 활동하며 지역의 이슈를 따라다니며 지방을 돌았다.

그러다 부모님 건강 때문에 다시 인천에서 활동하기로 마음먹었다. 인천에 정착해 처음 시작한 것이 2009년 8월 배다리 헌책방 골목에 차도 마시고 책도 볼 수 있는 공간인 '나비날다 책 쉼터'였다. 환경·인권·평화분야의 아끼던 책들과 기증받은 책을 공간에 함께 뒀다.

그런데 손님들이 그 책들을 팔라고 아우성이었다. 그래서 쉼터가 아닌 책을 파는 책방을 직접 열게 됐다. 2012년 1월 시작한 '나비날다 책방'이다.

이후 지금의 조흥상회 건물로 옮겼다. 이 근대건축물에 남겨진 물건을 모아 생활사전시관 공간도 따로 열었다. 책방을 하다 보니 헌책방 골목에 대해 이것저것 묻는 여행객이 많아졌다. 그래서 문을 연 것이 2013년 3월 '배다리 안내소'였다.

2014년 12월에는 조흥상회에 딸린 창고 건물을 활용하기 위해 매일매일 공간의 모습을 바꾸는 상점 '요일가게 다(多) 괜찮아'라는 공간을 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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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랑할 만한 일을 꼽으라면 어떤 것이 있나

"욕심을 부리지 않은 것을 꼽고 싶다.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꾸준히 지치지 않고 해온 것 같다. 도중에 그만두는 경우가 많은데, 내가 직접 붙잡고 할 수 있는 만큼만 성실하게 끌고 온 것이 지금까지 버틴 힘이라고 생각한다. 천천히 급하지 않게 그때그때 할 일을 찾아 해오다 보니 필요에 따라 공간 모습을 바꿔온 것이다.

협동조합이나 사회적 기업의 형태를 제안하는 분도 있는데, 이 같은 가변성과 자율성을 존중받고 싶어서 고려하지 않고 있다.

무인형태의 운영 방식이 성공적으로 자리를 잡은 것 같아 뿌듯하다. 사람이 지키지 않아도 공간이 유지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냈다. 대부분 공간이 운영자가 필요 없는 무인 형태로 운영되고 있는데 사람의 빈자리를 로봇이나 컴퓨터가 대체하는 그런 방식이 아니다.

오히려 주인장의 손길이 더 많이 가는 방식이어서 무인 상점이 오히려 손님에게 친근함을 준 것 같다.

배다리에 다른 무인책방이 들어서기도 했다. 날마다 다른 '요일가게'의 경우는 거의 원조 격이다. 지금 전국에 16곳의 비슷한 개념의 가게가 활동 중이다. 이러한 공간 운영 경험들이 지금의 수봉정류장까지 이어지고 있다."

공감인터뷰 권은숙

-창작실험실 수봉정류장은 어떤 곳이며 수봉공원 인근에 자리를 잡은 이유는

"지난 10여 년 간 배다리에서 주로 활동을 하면서도 잠을 자는 집만큼은 지금 있는 수봉공원 밑자락인 숭의동에 두고 있었다. 활동하려면 지역에 대해 이해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살면서 기회를 엿봤다.

창작실험실 수봉정류장은 말 그대로 창작자들이 이것저것 마음 편하게 시도해 볼 수 있는 공간이다. 1층 75㎡ 공간을 6명의 작가가 나눠쓰고 있다. 기성 시인부터 시각예술가, 뜨개·공예 등 생활 창작자 등이 이곳에서 활동하고 있다.

창작은 새로운 것이다. 뭔가 새로운 걸 하기 전에 막연한 두려움 같은 게 생긴다. 작업실 비용도 부담되고 실패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도 하게 된다. 작가 여럿이 임대료를 십시일반 부담해 임대료 부담을 줄였다. 두려움 없이 무언가를 해보고 안되면 또 다른 것을 시도해 볼 수 있는 공간이다.

혼자가 아니라 같이 공간을 쓰는 작가들과 함께 교류하며 서로 창작의욕을 자극받기도 한다. 일반인과 작가의 경계가 크지 않다. 작가들이 창작의 소재나 에너지를 일반인에게서 얻기도 하고, 일반인은 이웃처럼 어울리며 배우고 서로 그런 것들이 좋다."

공감인터뷰 권은숙

-이곳에 대한 주민들의 반응은 어떤가

"동네 주민들이 많이 좋아하신다. 구도심 특성상 어르신이 특히 많은데 쓰임이 없어 오래도록 셔터가 내려진 채로 있던 1년 전보다 좋다고 하신다.

'수봉'이라는 이름을 쓴 것도 좋아하신다. 아무래도 공간을 예쁘게 가꾸면서 쓰다 보니 그러신 것 같다. 들어오기 불편해하시는 분들을 위해 벤치도 마련했고 지금은 많은 분이 안으로 들어와 얘기도 하고 작품도 구입한다.

한번은 이 근처 혼자 사시는 할머니가 연락을 받지 않으신다고 서울에 있는 자녀에게서 확인 좀 해달라고 연락이 온 경우도 있었다.

동네 분들이 책이나 가구를 기증해 주기도 한다. 여기 공간을 채운 물건중 새로 사온 것이 거의 없다. 화분도 작가들이 잘 키울 것 같다며 동네 어르신이 주신 거다. 조만간 주민들이 기증한 물건을 모아 시장도 열 계획이다.

지난 1년간 전시를 하기도 하고 작가를 초청해 저자와의 만남의 행사를 하기도 했다. 글쓰기 수업과 번역수업이 진행됐고 생태철학 강의는 진행 중이다. 빵을 만드는 재능을 가진 작가가 주도해 꽈배기를 만들어 파는 행사도 치렀다. 동네 주민들은 지금도 꽈배기 얘기를 많이 하신다.

미추홀구와 '수봉산 둘레 마실길'을 함께 만들기로 했는데, 작가들이 참여하는 동네 탐방도 진행했다."

공감인터뷰 권은숙

-수봉정류장이 앞으로 어떤 공간이 되었으면 하나

"지금 4층짜리 건물인데, 1층을 작가들이 쓰고 2층은 공방 겸 작업실로, 3~4층은 거주공간, 옥상을 텃밭 등으로 꾸며 창작자들이 어려움을 겪지 않고 마음껏 창작활동을 할 수 있는 '문화빌라'로 꾸미고 싶다.

수봉정류장을 거점으로 이 공간을 이용하는 사람들끼리 무언가를 기획하고 저마다 하고 싶은 것들을 마음껏 만들고 동네의 골목문화를 만들어 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또 이 같은 문화공간이 널리 퍼졌으면 좋겠다. 수봉정류장이 그 싹을 틔웠으면 한다. 이런 활동이 더욱 많아지면 좋겠다. 개인의 재능이 여러 사람과 연결되며 더 크게 발휘되고 집단을 이루고 공동체가 되고 더 큰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데 수봉정류장이 역할을 하고 싶다."

공감인터뷰 권은숙

글/김성호기자 ksh96@kyeongin.com, 사진/김용국기자 yong@kyeongin.com

■ 권은숙 대표는?

▲ 1966년 출생, 인천에서 성장

▲ 생활문화공간 달이네 대표

▲ 무인책방 나비날다책방 운영자

▲ 문화다양성 플리마켓 '만국시장' 운영자

▲ 공유공간 요일가게 '다 괜찮아' 기획자

▲ 창작실험실 수봉정류장 기획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