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내믹한 소리에 서정성 담아
손열음(34)이 2위, 조성진(26)이 3위에 입상한 이 대회는 우리 음악팬들의 기억에도 각별하게 남아있다.
조성진이 우승한 2015년 쇼팽 콩쿠르에서 트리포노프는 3위를 차지한 바 있다. 두 대회에서 1·3위를 나눠 가진 인연(?)으로 당시 조성진과 트리포노프는 종종 비교됐다. 두 피아니스트는 현재 최고의 기량과 지명도, 인기 면에서 비슷하다.
2013년 6월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트리포노프의 독주회는 현재까지도 기자의 기억에 또렷하게 남아있다.
리스트와 스크랴빈 등의 작품으로 구성된 연주회에서 트리포노프는 뛰어난 기교와 전곡을 장악하는 통찰력으로 작품들을 주조했다. 강하지만 섬세한 터치. 직관을 통해 단숨에 해치우는 듯하지만, 그 안에 동반된 스마트함(스토리텔링)까지 매력적인 요소들을 품고 있었다.
연주회 후 국내 음악계는 '예브게니 키신 이후 최고의 러시아 피아니스트가 출현했다'고 평가했다. 블라디미르 호로비츠와 스비아토슬라프 리히테르, 에밀 길렐스를 비롯해 키신까지 러시아 피아니스트들은 빼어난 테크닉, 뛰어난 음악성으로 세계 음악팬들을 사로잡아 왔다.
트리포노프의 감정표현은 대자연을 품은 러시아적 기질과 연장선에 있다. 모스크바 차이콥스키 음악원의 경우 피아노 학도들에게 먼저 큰 소리를 요구한다. 큰 소리를 내야 피아니시모도 낼 수 있다는 것이다. 즉, 러시아 피아니즘은 다이내믹을 기본으로 하되 그 위에 서정성을 담는다.
이는 러시아 대가들의 연주에서 고스란히 확인할 수 있다. 올해로 타계 25주기를 맞은 슈라 체르카스키는 생전에 '은둔자'로 불렸다. 실력과 비교해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체르카스키는 연주회를 통해서만 자신을 드러낸 대가였다. 음반에서 접할 수 있는 그의 실황 연주들은 해당 작품의 새로운 모습을 보게 한다.
포르티시모에서 풍부하고 아름다운 톤을 유지하는 체르카스키는 여타 피아니스트의 연주에서 드러나지 않는 선율선을 명징하게 이끌어낸다. 뛰어난 기교와 함께 자신만의 해석으로 차별화된 연주를 선보이는 것이다.
경직되지 않은 유연한 사고에 의한 감정표현은 러시아 피아니즘의 핵심이다. 십수 년 정도 후엔 코리아 피아니즘을 정의 내릴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김영준 인천본사 문화체육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