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마을, 2004년 체험사업 시작
'U턴형 귀어인' 여유찾아 도시 떠나
관광-전통어업 결합해 '신성장동력'
소비 트렌드 맞춰 고부가가치 창출
산업구조 변화 '재편성' 보여준 사례
연일 계속되는 장마에 태풍 소식까지 전해지면서 조용한 어촌마을의 풍경을 상상했지만 가족단위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았다. 또 마을 어촌계 사무장은 구성원들에게 공동작업 공지를 올리고 질문을 받느라 바쁜 모습이었다.
백미리 어촌마을은 10여년 전까지만 해도 어촌 중에서도 가난한 마을로 손꼽히는 곳이었다. 마을 어장조차 확보하지 못해 마을 앞에 갯벌을 두고도 변변한 작업을 못하기도 했다.
특히 1990년대 중반부터 시화호와 화옹방조제가 들어서면서 물길이 바뀌어 마을의 주 수입원이었던 바지락과 모시조개, 낙지, 굴 등 주요 수산물이 자취를 감추면서 마을을 떠나는 주민이 많았다.
하지만 2004년부터 어촌체험마을을 운영하면서 백미리는 어촌 성공신화를 쓰기 시작했다. 해산물 채취 체험부터 배낚시와 전통어법 체험을 할 수 있고, 카누·카약, 바다 래프팅 등 해양레포츠를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마을을 꾸미면서 관광객은 물론, 떠났던 주민들도 다시 백미리로 돌아오고 있다.
# 힐링의 공간, 바다
휴식의 공간으로 바다가 재조명을 받고 있다. '삼시세끼-어촌편'이나 '도시어부'와 같은 TV프로그램이 어촌이 주는 매력을 조명하면서 큰 인기를 모았던 것처럼 도시인들이 지친 마음을 회복하기 위해 바다를 찾는 것이다.
최중순(55)씨는 30여년만에 백미리로 돌아온 'U턴형 귀어인'이다. 수원에서 어린이집을 운영하던 최씨는 바다가 주는 선물에 매료돼 전문어업인이 된 경우다.
최씨는 "도시에서 마음에 여유가 없다 보니 많이 벌어도 쓰지 못하고 정신적으로 지치기 일쑤였다"며 "바지락과 꼬막을 캐는 생활은 마음에 평화와 여유를 안겨줬다. 또 부족하지 않은 소득까지 생겼다"고 말했다.
김동문(61)씨는 인천 서구의 통신장비 업체에 입사해 평사원에서 사장까지 오른 샐러리맨의 전설이었지만, 지금은 어업인으로 변신했다. 이슬을 맞으며 출근하고 다시 별을 보며 퇴근하는 삶을 살던 김씨는 어느 날 떠오른 딱 한 번 낚시를 했던 그 기억이 백미리로 이끌었다고 한다.
김씨는 "봄에는 속이 꽉 찬 바지락을 볼 수 있고 여름엔 갯골 새우를, 가을엔 소라를 잡으면서 계절을 느끼는 지금, 몸도 마음도 풍요롭다"고 했다.
꼭 귀어가 아니어도 어촌을 즐기는 도시인들이 늘고 있다. 어촌의 풍경을 그대로 살린 카페와 식당 등이 이같은 트렌드를 보여주고 있다. 도시와 다른 독특한 풍경과 분위기가 주는 휴식을 찾아 몇 시간이 넘는 길을 재촉해 어촌 명소를 찾고 있는 것이다.
강화도에는 명소로 알려진 크고 작은 카페가 몇 년 사이 120여개 들어서 도시인들에게 쉼표가 돼주고 있다.
휴식을 쫓는 도시인들의 수요를 보여주듯 어촌지역 해양 관광객 수는 매년 증가하고 있다. 경기도를 기준으로 지난 2014년 1천559명에 불과했던 해양관광객 수는 2018년 4천792명으로 연평균 32.4%나 증가했다.
# 새로운 부촌으로 떠오르는 어촌
기술의 발전으로, 또 소비 트렌드의 변화로 어촌이 새로운 부촌으로 떠오르고 있다. 경기·인천 바다의 주요 생산품으로 떠오른 김 양식은 과거 '김 고장으로 딸 시집보낸 심정'이라는 속담이 생겼을 정도로 힘이 들었다.
지금은 채취에서 가공까지 모두 기계화됐고 가공은 공장에서 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손이 덜 간다고 한다. 지난해 경기도에서만 2만1천648t이 생산돼 농가당 수익이 약 4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되기도 했다. 매년 김 생산량이 증가하는 추세여서 농가당 수익은 더욱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백미리 마을은 지난 2016년 어가 공동체 소득을 증대하기 위해 수산물의 출하·유통·가공·수출을 공동으로 추진하는 협업적 경영조직을 설립하고, 수산물 가공공장도 준공했다.
수산물 가공공장은 바지락, 낙지 등 백미리에서 공동으로 생산하는 수산물뿐만 아니라 전국의 어촌에서 생산되는 수산물을 수매해 가공·포장을 거쳐 연어장, 낙지장, 전복장, 꼬막장 등으로 상품화한다.
이곳에서 생산되는 각종 수산가공식품은 '백가지 맛 백가지 바른먹거리 바다 백미'라는 브랜드로 체험마을에서 직접 판매하거나 백화점 등에 공급한다. 대만과 홍콩 등 해외 수출도 이뤄지고 있다. 네이버푸드 온라인 쇼핑몰에도 입점해 전국 어디서나 백미리 마을이 내놓은 백 가지 맛을 즐길 수 있다.
관광산업이 전통어업과 결합하면서 어촌에 신바람을 더하고 있다. 백미리 어촌계 이창미(57) 사무장은 "백미리를 찾아온 관광객들은 돌아갈 때 마을에서 생산한 수산물을 사가고, 또 백미리 수산물이라면 믿고 먹을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면서 단골 손님을 얻게 되는 셈"이라고 말했다.
관광과 수산업, 수산물가공업이 하나의 사이클로 부가가치를 발생시킨다는 것이다. 아울러 백미리마을이 새로 시도하는 어촌스테이, '체재형주말농장'도 주목할만하다.
귀어를 꿈꾸는 도시인들에게 1년간 어촌에서 생활할 수 있는 기회를 주면서 어촌에 적응하도록 하고 도시인들의 시각에서 어촌의 변화를 이끌어내면서 강한 어촌이 되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을 논의할 때 제조업 등 흔히 2, 3차 산업의 위기를 말하고 이미 1차 산업은 설 곳을 잃어버린 사업처럼 치부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갯벌이 자원의 전부라고 했던 서해안의 작고 가난한 어촌마을이 어업부터 수산물가공, 유통, 관광, 숙박 등 1~4차 산업을 한 데 담아 국내 수산업 6차산업을 이끌어나가고 있다. 산업구조의 변화는 기존 사업의 쇠퇴와 동의어가 아닌 새로운 산업의 기회, 산업의 재편성을 뜻한다는 것을 사례로 보여주는 셈이다.
/기획취재팀
※ 기획취재팀
글 : 김대현, 김성주차장, 박현주기자
사진 : 임열수, 김용국부장, 조재현, 김금보, 김도우기자
편집 : 안광열차장, 장주석, 연주훈기자
그래픽 : 박성현, 성옥희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