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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박성현기자 pssh0911@kyeongin.com/아이클릭아트

의사 9명·간호사 10명등 24명 근무
공항서 발생하는 모든 환자들 처치
내과·신경외과·항공성 질환등 진료

비행중 긴급 상황땐 의사 승객 협조
지상에 있는 '닥터콜' 의료진과 공조
8살 소녀 치료위해 인근 비상착륙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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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는 전 세계의 이동을 가능하게 만들었지만 의학적으로 보면 인체에 좋은 환경은 아니다. 10㎞ 상공에 있는 동안 신체에 다양한 변화가 생기면서 예측 불가한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

이때 필요한 게 응급실이다. 인천국제공항에도 공항을 오가는 전 세계인이 응급실처럼 이용하는 의료기관이 있다. 인하대병원이 20년째 운영하고 있는 인천국제공항의료센터다.

인천공항 제1여객터미널 지하 1층에 있는 인천공항의료센터는 2001년 공항 개항에 맞춰 문을 열었다. 국제민간항공기구(ICAO)의 공항 서비스 매뉴얼(Airport Service manual)에 따라 인천공항에서 발생하는 모든 환자에 대한 응급 처치와 진료 업무를 수행한다.

수술실은 없지만 7만명 이상의 인천공항 상주 직원과 하루에도 19만명(2019년 기준)이 넘는 공항 이용객에게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며 실질적인 공항 응급실 역할을 하고 있다. 영종 주민들도 이용할 수 있다. 인천공항의료센터는 대학병원 의료진이 상주하는 영종도의 유일한 의료기관이기도 하다.

연중기획 공항의료센터
인천공항 제1여객터미널 지하 1층에 있는 인천공항의료센터. 약 660㎡ 규모로 방사선 촬영, 심전도 검사, 심폐 소생, 응급의료 처치 장비 등을 갖추고 있다.

인천공항의료센터는 약 660㎡ 규모의 '의원'급 의료기관이다. 하지만 인력은 의사 9명과 간호사 10명 등 총 24명이다. 통상적인 의원급 병원 의사 수가 1~2명인 점을 고려하면 월등히 많다. 센터를 365일 24시간 운영해야 하기 때문이다.

인천공항의료센터 의료진은 내과·계절성·정형외과·신경외과적 질환 등을 진료한다. 센터는 방사선 촬영, 심전도 검사, 청력 검사, 복부 초음파, 내시경, 심폐 소생, 응급의료 처치 장비 등을 갖추고 있다. 중증 환자는 센터에서 응급 처치한 후 인천 중구에 있는 인하대병원 본원이나 가까운 병원으로 이송한다.

인천공항의료센터는 항공성 중이염 등으로 대표되는 항공성 질환도 진료하는 게 특징이다. 국토교통부가 지정한 전국 45개 항공신체검사 의료기관 중 하나가 인천공항의료센터다.

항공신체검사는 기장과 관제사 등이 주기적으로 받아야 하는 검사인데, 이들의 건강 상태는 승객 안전과 직결돼 일반 신체검사보다 기준이 엄격하다. 심혈관계 질환이 발견되면 신체검사 증명서를 받지 못해 업무가 중지될 수 있다.

가정의학·항공의학 전문의 신호철 인천공항의료센터 원장은 "인천공항은 워낙 다양한 나라에서 입국하기 때문에 의료진은 외국 현지에서 유행하는 질환도 알고 있어야 한다"며 "센터를 찾은 환자를 잘 치료하고, 중증 환자를 다른 병원까지 무사히 옮겨 치료받을 수 있도록 처치하는 게 우리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연중기획 공항의료센터
인천공항 제1여객터미널 지하 1층에 있는 인천공항의료센터. 약 660㎡ 규모로 방사선 촬영, 심전도 검사, 심폐 소생, 응급의료 처치 장비 등을 갖추고 있다.

비행 중 기내에서 응급 환자가 발생하면 어떻게 할까. 항공기에서 응급 환자가 발생하면 먼저 승무원이 승객 가운데 의사 면허 소지자가 있는지 확인한다. 기내에는 항공안전법에 따라 진통제, 구토 억제제와 같은 비상약부터 화상 등 외상에 대비한 거즈와 지혈대, 간단한 수술이 가능한 응급 의료 키트 등이 있다.

하지만 응급 처치 교육을 받은 승무원이라도 응급 의료 키트 등은 의료진이 아니면 다루기 어렵다. 기내에 의사가 없으면 승무원이 지상에 있는 의료진에게 연락한다.

이를 '닥터콜'이라고 한다. 항공사마다 차이가 있는데, 항공사 자체 의료 전담 부서로 연락하거나 계약을 맺은 의료기관에 상황을 알린 뒤 의료진의 원격 지시를 따른다. 위성 통신망을 사용하기 때문에 전 세계 상공 어디서나 지상과 연락할 수 있다. 닥터콜 담당 의료진은 잠을 자다가도 전화를 받아야 해 그 긴장도는 상당하다.

의료진의 원격 진료에도 환자의 상태가 나아지지 않으면 가장 가까운 공항에 비상 착륙을 하거나 회항할 수 있다. 기장, 관제소, 항공 전문의 간 3자 통화를 통해 비상 착륙 여부를 결정한다.

지난해에도 이 같은 비상 착륙 사례가 있었다. 2019년 7월 미국 뉴욕발 인천행 아시아나 항공기에서 8살 소녀가 이륙 1시간 30분 뒤에 고열과 심한 복통을 호소했다. 다행히 기내에 의사가 있었지만 의사는 아이를 서둘러 병원으로 옮겨야 한다고 진단했다.

기장은 기내에 타고 있던 승객 470여 명에게 동의를 구하고 미국 알래스카주 앵커리지 국제공항에 비상 착륙했다. 안전한 착륙을 위해 2천만원 상당의 항공유 150t까지 버려야 했던 결정이다. 목적지인 인천 도착 소요 시간은 4시간가량 지연됐지만 아이는 무사히 앵커리지 공항 인근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았다.

아시아나
2019년 7월 미국 뉴욕발 인천행 아시아나 항공기에서 8살 소녀가 이륙 후 고열과 심한 복통을 호소하면서 항공기가 앵커리지 국제공항에 비상 착륙했다. 이후 소녀는 아시아나항공 측에 직접 그린 그림을 통해 감사의 뜻을 전했다. /아시아나항공 제공

우리나라는 국제민간항공협약에 따라 1969년부터 '항공 전문의사'를 지정하고 있다. 항공의학 전문 교육을 받은 의사로, 항공 종사자에 대한 신체검사를 진행한다. 신호철 원장을 포함해 전국에 96명만이 항공 전문의로 지정돼 있다.

국토부에 따르면 지난해 항공신체검사를 받은 항공 종사자는 약 1만5천명이다. 단순 계산하면 항공 전문의 1명이 1년에 150여 건의 항공신체검사를 진행하는 셈이다.

이들이 연구하는 항공의학은 비행 시 발생하는 기압 변화와 산소 분압, 온도, 습도, 진동 등의 환경 변화가 인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다루는 학문이다. 쉽게 말해 사람이 비행기를 타고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신체 변화 없이 무사할 수 있도록 연구하는 게 항공의학이다.

세계 항공 기술이 전쟁을 통해 발전했듯이 우리나라 항공의학도 군(軍)에서 시작됐다. 1948년 육군 항공사령부에 항공의무처가 생기면서 항공의학 개념이 도입됐다.

이듬해 공군이 창설되면서 항공의무처는 공군병원(현 공군항공우주의료원)이 됐다. 초대 항공의무처장과 공군병원장을 지낸 장덕승(1915~1962) 장군은 우리나라 항공의학의 창시자로 불린다.

초기 항공의학은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전투 조종사 선발과 건강 관리 업무 중심으로 이뤄졌다. 1952년에 공군병원에 항공의학연구소가 창설되면서 비행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가 본격화했다.

군 위주의 항공의학 연구는 1960년대 민간 분야로 확대됐다. 경향신문은 1964년 7월3일 공군병원이 개편된 항공의료원 준공식을 보도하며 "군 내는 물론 민간 항공의 의학적 문제까지도 지원 담당할 항공의료원은 동양 제일의 20인용 저압실 장치를 비롯해 항공의학 연구실과 실험실 등을 갖추고 있다"고 했다.

국영 기업이던 대한항공공사(대한항공 모태)도 1968년 항공보건관리실을 만들었다. 이 시기 승객에 대한 의학 연구가 이뤄졌고, 1989년 이 분야 전문가들로 구성한 한국항공우주의학협회가 창립했다. 현재 협회는 항공우주의학회 등 3개 학술 단체를 운영하며 항공 안전에 대한 연구를 지속하고 있다.

인천공항의료센터는 국내 공항 의료센터 중 인력과 진료 환자 수가 가장 많다. 지난해 인천공항 제1·2여객터미널 의료센터에서는 건강 검진을 포함해 월평균 6천200여 명의 환자가 진료를 받았다.

인천공항에서 일어나는 예측 불가능한 응급 상황을 다루는 것도 인천공항의료센터의 몫이다.

2009년 10월에는 인천공항에서 환승하려던 인도네시아 국적 30대 임신부가 출산 예정일을 약 2주 앞두고 탑승구 앞에서 산통을 호소한 일이 있었다. 구급대가 도착했을 때는 이미 아이가 모습을 드러낸 상태였다. 출산 과정에서 탯줄이 아기 목에 감겨 위험한 상황을 맞았지만, 인천공항의료센터 의료진의 응급조치로 무사히 태어났다.

연중기획
2009년 10월 7일 인천공항에서 인도네시아 국적 30대 임신부가 출산 예정일을 약 2주 앞두고 산통을 호소했다. 이 여성은 인천공항의료센터 의료진과 공항구급대 도움으로 무사히 아이를 낳았다. /인천공항의료센터 제공

올해 4월에는 인천공항 제2여객터미널을 통해 입국하려던 40대 여성이 기내에서 복통을 호소하며 쓰러져 의식이 없는 상태에 빠졌다. 인천공항의료센터 의료진은 약물 투여 등 응급 처치를 했고, 여성은 의식을 회복해 인근 병원으로 옮겨졌다. 인천공항의료센터는 말 그대로 '인천공항 응급실'이다.

인천공항 이용객과 상주 직원이 늘어나면서 인천공항의료센터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졌다. '안전한 비행'을 위한 항공의학은 계속해서 발달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신호철 원장은 "바다를 메운 땅 위에 세운 인천공항은 도심에 있는 다른 공항과 달리 의료 인프라가 부족하다. 인천공항의료센터의 역할이 그만큼 중요하다"며 "질병을 가진 사람도 안전하게 비행기로 여행하고, 비행기를 타기 전과 후의 몸 상태가 변함이 없는 항공의학의 궁극적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글/공승배기자 ksb@kyeongin.com·사진/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