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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천대 길병원 오영준 간호사가 페이스북에 연재 중인 웹툰 '간호사 이야기'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취재진이 사진 촬영을 위해 잠깐만 마스크를 벗어달라고 요청했으나 "병원 내부라서 절대 안된다"고 거절했다.

# 나이팅게일에 꽂힌 미술학도

군대서 "사람 고쳐주는 사람되자" 결심
중환자실 고된생활 적응후 전자펜 잡아
동양화 묘미 살려… LA타임스 주목도

# 음압병실 자원… 깊어지는 고민

메르스 경험 축적 땀범벅 방호복 익숙
내년까지 예측할 수 없는 장기전 양상
감염병 확산 예방 '거리두기' 신신당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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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음압병실에서 사투를 벌이는 간호사의 일상을 웹툰으로 연재해 최근 화제를 모은 가천대 길병원 오영준(34) 간호사.

그의 그림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코로나19와 맞서 싸우는 숨은 영웅들의 이야기이기도 했다. 웹툰이 연재되는 페이스북 '간호사 이야기' 페이지를 하나씩 넘길 때면 중증 코로나19 환자를 치료하려면 얼마나 많은 의료진의 땀이 필요한지 엿볼 수 있다.

방호복으로 땀 범벅이 돼 하루에 2~3번 샤워를 하느라 머리카락 말릴 시간도 없는 동료 여성 간호사들이 수건을 머리에 두르고 근무를 하는 모습과 외부와 차단된 음압병실에서 유리창을 칠판 삼아 좌우 반전 글자로 대화를 나누는 의료진의 고충 등은 현장에서만 나올 수 있는 그림이다.

당장 입원 치료를 받아야 하는데 목욕 용품과 휴대전화 충전기부터 챙겨달라는 환자. 택배는 기본에 배달 음식까지 병실에 넣어달라는 환자·보호자. 그리고 이들과 실랑이하는 병동의 간호사들.

의료진의 현실이 그대로 녹아든 간호사 이야기는 올해 코로나19로 인해 더욱 공감을 얻으며 '좋아요' 6만6천건의 인기 페이지가 됐다. 바다 건너 미국 LA타임스에까지 그의 그림이 소개되면서 더욱 유명세를 탔다.

인터뷰 공감 가천대길병원 오영준 간호사
가천대길병원 오영준 간호사가 코로나19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 방호복을 입고 있다. 방호복을 벗으면 땀에 흠뻑 젖고, 감염 우려 때문에 하루에 두세번 샤워를 해야 한다고 한다.

대구 출신의 오영준 간호사는 화가를 꿈꾸던 미술학도였다. 한국화를 전공하다가 군에 입대에 미래에 대해 고민하던 중 간호사가 돼야겠다고 결심했다.

"군대에서 미술의 길을 계속 갈 수 있을까 곰곰이 생각하다 보니 점점 확신이 들지 않더라고요. 그러다가 어릴 적 읽었던 나이팅게일 위인전이 머릿속을 휙 하고 지나갔어요. 사람을 고쳐주는 사람이 되자. 그리고 간호대로 편입해 이 길에 접어들었습니다."

국가고시에 합격하고 2013년 가천대 길병원에서 간호사 생활을 시작했다. 그리고 가장 어렵다고 정평이 난 중환자실에 배정됐다. 주·야간 3교대 생활에 적응하며 타향 생활에 점점 익숙해 질 때쯤 잠시 잊고 있었던 그림이 생각났다.

"워낙 어렸을 때부터 해왔기 때문에 그림은 취미로 계속 하고 있었는데 직업에 적응을 할 무렵인 3년 차 때부터 여유가 생기면서 어떻게든 그림이라는 재능을 써먹어 보자고 생각을 했어요. 내가 매일 경험하는 곳이 병원이니까 병원을 무대로 한 일상 웹툰을 그려보기로 했죠."

일종의 그림일기처럼 그려보자고 생각해 종이와 붓 대신 태블릿PC에 전자펜으로 그림을 그려 나갔다. 아무래도 직장이 무대이다 보니까 익명으로 시작했는데 여기저기 그림이 공유되다 보니 금방 정체가 드러나고 말았다.

"직장 생활을 그리다 보니 상급자 뒷담화도 그리게 되고, 내부 현실에 대한 비판도 제기하다 보니까 이름을 드러내고 활동하기 부담스러운 부분이 있었어요. 그런 이유로 잠시 웹툰을 쉬기도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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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지난 2015년 국내에 발생한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 때 가천대 길병원 격리 병동에 자원해 근무했다. 지금은 코로나19 중증 환자치료 병동에서 '헬퍼' 역할을 하고 있다.

"메르스 당시만 해도 신종 감염병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던 시기여서 의료 인력조차 불안해하던 때였어요. 우리 병원에도 음압병실이 필요한데 의료진 역시 필요했죠.

대부분 여성에, 결혼해 자녀가 있는 분들이 많아 혼자 사는 남성인 제가 자원하기로 했죠. 그때는 지금처럼 방호복도 제대로 못 갖추고, 수술 가운에 모자 하나 쓰고 투입됐던 것 같아요."

그는 올해 초 코로나19가 발생하자 역시 의료진에 자원했다. 처음에는 수도권에 피해가 적었지만, 3월부터 대구 신천지 관련 확진자가 넘쳐나 대구·경북 의료체계가 한계에 달하면서 중증 환자가 인천으로도 오기 시작했다.

"일반 폐렴 환자는 일정 기간 경과를 두고 진행되는데 대구에서 오신 한 어르신이 하루 만에 중증으로 악화한 상황을 보고 보통 일이 아니라는 것을 예감했죠. 그래도 메르스 때 경험이 축적돼 방호복을 입고 벗는 것은 좀 익숙해졌어요. 중환자실에 있다 보니 중증 환자가 발생할 경우 순발력 있게 대처할 수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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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환자를 치료하는 가천대 길병원 간호사들의 일상. /오영준 간호사 페이스북 제공

그가 의료현장에서 보고, 듣고, 느낀 부분은 그림으로 남았다. 그림 하나가 주는 전달력은 열 마디 말과 글보다 파급이 컸고, 더 많은 공감을 얻었다.

"동료 간호사들을 보면 내가 예전에 했던 고민 때문에 힘들어 하는 경우도 있었고, 나 역시 공감을 하다 보니 당시 상황을 사진으로 찍어두거나 머리 속에 담아뒀다가 집에 와서 그림으로 표현했어요.

의학 드라마를 보면 의사들이 주목되고 간호사는 주변 사람으로 그려지는 경우가 많아 우리가 일하는 모습을 포장하고 싶다는 생각도 강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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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압 텐트에 실려 후송된 환자를 안전하게 격리 병실로 이동해야 하고, 겹겹의 방호복을 입고 주사를 놓을 환자의 핏줄을 찾는 것도 간호사들의 몫이다. /오영준 간호사 페이스북 제공

그림은 짧게는 5분에서 길게는 1시간이면 완성된다. 한국화를 전공한 그는 주로 선으로 표현하는데 크로키(빠른 시간에 그리는 스케치) 기법을 많이 사용한다.

다만 의료장비 등 기계나 인물을 묘사해야 하는 그림은 시간이 더 걸린다고 한다. 외신들이 주목하는 이유도 선과 여백이 조화를 이루는 그의 동양화기법 때문이다.

그는 웹툰 작가가 아닌 평범한 간호사로서 일상이 돼버린 코로나19를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이 많다. 뉴스로만 아는 게 아니라 직접 현장에 투입된 당사자인 터라 느끼는 점이 남다를 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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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에 2~3번 샤워를 해야 하는데 머리를 말릴 시간도 없어 아무렇게나 수건을 두른 채 일을 하고 있다. /오영준 간호사 페이스북 제공

그는 가천대길병원에서 인터뷰를 하는 동안 한 번도 마스크를 내리지 않았다.

인터뷰용 사진을 찍기 위해 잠깐 마스크를 벗어달라고 정중히 요청했으나 "병원 안에서 간호사복을 입은 사람이 어떻게 마스크를 벗을 수 있느냐"며 완강히 거절했다.

"코로나 19는 단기간에 끝나는 게 아니라 장기전으로 이어지는 분위기고, 내년 또 내후년까지 어떻게 갈지 모르는 상황이라고 봐요. 국민들은 지쳐가고 있고 경제·사회 전 분야에 코로나19는 이제 떼려야 뗄 수 없게 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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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환자에게 사용하고 남은 의료 폐기물을 처리하는 고되고 위험한 일도 간호사들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하다. /오영준 간호사 페이스북 제공

'코로나 블루'라고 하는 우울증도 문제고요. 어떻게든 더 이상 확산하지 않도록 시민들이 거리두기와 마스크 착용에 더 힘써줬으면 좋겠어요. 그래야 더 건강해지고 밝아진 사회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글/김민재기자 kmj@kyeongin.com, 사진/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 오영준 간호사는?

대구에서 유년기와 학창시절을 보냈다고 한다.

미대에 입학해 한국화를 전공했지만, 군 제대 후 "새로운 승부를 걸어보자"고 결심해 가천대 간호학과에 편입했다.

'혼자 사는 남자'라는 이유로 격무 부서인 중환자실에 반강제로 끌려가다시피 했지만, 적성에 맞았는지 어느덧 8년 차에 접어들었다.

미술학도의 본성을 감추지 못하고 2015년부터 페이스북에 웹툰 '간호사 이야기'를 연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