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고립 피하려 시작한 '침묵'… 발언권 약한 젊은층 위해 더 필요
급변하는 시대… 직설적인 요즘세대의 사고·표현 불편한 감정도
팍팍한 현실 물려줬다는 '부채의식'… 우리가 이해·양보 노력해야
"나이가 들수록 입은 닫고, 지갑은 열어라"라는 말이 기성세대의 입에서 입으로 유행처럼 전해지기도 한다.
지난 11일 서울 봉은초등학교에서 만난 59년생인 한상윤 한국초중고등학교교장총연합회 이사장은 이 말에서 '생존'이라는 의미를 떠올렸다. 누군가에게는 우스갯소리에 지나지 않을 표현이지만 그는 기성세대가 '사회적 고립'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처세라고 봤다.
한 이사장이 이런 생각을 하게 된 일화가 있다. 그는 20대부터 6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교직자들로 구성된 독서모임에 나가고 있다. 젊은 세대의 이야기를 직접 듣고 싶어 이 모임에 참여했다.
그러던 어느 날 누군가의 의견을 반박했다가 분위기가 한순간에 얼어붙었다. 상대방의 얼굴색은 차갑게 변했다. 그는 "이러다 모임에서 '투명인간'이 될 수도 있겠다"는 불안감이 커졌다.
"말 그대로 불상사였죠. 기분이 상한 그 친구에게 용서를 구하는 문자 메시지를 보냈고, 상대방도 다행히 이해를 해줬습니다. 나름대로는 그를 아끼는 마음으로 했던 말인데, 다시 생각해 보면 자식한테도 잘하지 못하는 이야기를 타인에게 했던 거였죠.
다른 세대들과 만나 얘기를 듣는 것만으로 만족하기 때문에 앞으로는 오해를 줄이기 위해서라도 최대한 발언을 아끼려고 합니다."
30년 넘는 세월 동안 교직 생활을 이어오고 있는 한 이사장은 청년세대의 인식 변화를 가장 가까이서 체감한 인물이다. 몇 년 전까지 대학에서 강의도 해봐서 그가 지켜본 청년들의 스펙트럼이 넓은 편이다.
하지만 그 역시 급변하는 요즘 세대의 사고가 처음에는 낯설게 느껴졌다고 한다. 머리로는 그들의 생각을 이해한다지만 가슴 한편에 끓어오르는 불편한 감정은 어쩔 도리가 없었다.
"2014년쯤 대학교에 강의를 나갔을 때 일입니다. 10년 전에도 대학생들을 가르쳐본 경험이 있지만, 그들과 비교해도 요즘 세대들은 자신의 의견을 표출하는 데 거리낌이 없다는 차이를 느꼈습니다. 특히 학생들의 교수 평가가 매우 직설적이었습니다.
강의 중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의 내용을 일부 인용해 성별 간 차이를 설명했는데, 강의 평가에 '젠더 감수성'이 부족하다는 수위 높은 지적을 받았습니다. 저는 그런 의도가 아니었는데, 서운했죠. 하지만 지금은 그 일에 대해 저 자신을 성찰할 수 있었던 기회였다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입니다."
한 이사장이 '침묵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이유는 비단 개인의 생존 문제에만 국한하지 않는다. 기성세대와 청년세대의 발언권이 기본적으로 불평등한 상태라고 진단한 그는 변화한 시대상이 투영된 청년들의 이야기에 기성세대가 먼저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조언한다.
"나이 든 사람과 젊은 사람이 만났을 때 보통의 경우 나이 든 쪽이 '라떼는 말이야'로 시작해 자기 이야기만 합니다. 젊은 사람들이 말할 기회를 기성세대가 줘야 한다는 것이죠.
사회적으로는 어떻습니까. 취업, 연애, 출산 등을 포기해 'N포 세대'라고 불리는 이들의 요구가 국가의 정책에 반영되는 통로가 충분하지 않은 상황입니다. 국회의원을 포함한 선출직에 청년 비율을 의무적으로 할당하는 등의 대안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이유입니다."
한 이사장은 동년배인 기성세대의 역사에 강한 자부심을 드러내면서도 이 세대가 '꼰대'라고 불릴 수밖에 없는 이유를 청년세대의 입장에서 설명하려고 부단히 노력하는 모습이었다. 청년세대가 겪고 있는 현실의 팍팍함을 기성세대인 자신들이 물려줬다는 부채의식 때문이었다.
"저는 밀레니엄세대인 청년들이 기성세대를 꼰대라고 표현하는 것에 100% 동의하고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성과를 내기 어려운 세상에서 저희 세대가 자꾸 '노오오력'을 강조하니까 청년들은 거부감을 느낍니다.
노력을 이야기하기보다 기성세대가 가진 권력(자원)을 청년세대와 어떻게 나눌지 고민하는 게 보다 합리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기성세대가 청년세대의 삶을 이해하고 양보하려는 노력이겠죠."
/기획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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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취재팀
글 : 임승재차장, 김준석, 배재흥기자
사진 : 조재현, 김금보, 김도우기자
편집 : 김영준, 박준영차장, 장주석기자
그래픽 : 박성현, 성옥희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