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터울' 신경철 명장·우진구 대표 협업
수제가구 품질·마케팅 조화… 젊은층 어필
서로에게 멘토 역할도… 세대간 장벽 넘어
신 명장이 쌓은 40년의 기술이 우 대표 사업의 뿌리가 됐고, 정보기술(IT) 시대에 걸맞은 고객 맞춤형 서비스와 마케팅 능력이 뛰어난 우 대표는 신 명장과 젊은 소비자 사이의 간격을 좁혔다.
살아온 시대가 다른 둘은 서로 이해하고 멘토가 되어주면서 그들 사이의 장벽을 무너뜨렸다. 우여곡절도 있었다. 한참 어린 우 대표가 사업 파트너가 되어 달라고 내민 손을 신 명장이 열 번이나 뿌리쳤다. 어떤 이유였을까?
신 명장은 대한민국의 전통가구목공예 명장(제16-명71호)이다. 최고의 숙련 기술을 보유한 사람에게 국가가 부여하는 자격이다. 그는 수제 가구를 만들기 시작한 1977년부터 40년 넘는 경력을 쌓았다. 하지만 수십 년 간 제조 공장만 운영하다가 직접 판매까지 하는 매장을 차렸는데 경기 불황에 부닥치며 큰 피해를 봤다.
우 대표가 2016년 말 처음 찾아와 사업 파트너가 되어 달라고 했을 때도 이 같은 실패를 물려줄까 봐 거절했다. 하지만 이후 1년간 열 번이 넘도록 끈질기게 요청한 우 대표의 '십고초려'는 결국 신 명장의 마음을 돌렸다.
"주문 제작 가구는 가격이 비싸지만 수요가 적어 수익을 올리는 데 기간이 오래 걸립니다. 그래서 계속 거절했는데 매일같이 찾아와 시키지도 않은 일을 도우며 매달리니 결국 마음이 움직이더라고요. 과거에 내가 사업에 실패했던 건 마케팅 능력이 부족했기 때문이에요. 그런 점을 우 대표가 채워주고 있습니다."
우 대표는 수년간 호흡을 맞춘 젊은 동료 가구 디자이너가 곁에 있었다. 하지만 그가 신 명장을 고집했던 이유는 자신만의 고유한 디자인과 품질을 갖춘 주문 제작 가구를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다. 수제 가구 40년 인생을 살아온 신 명장과의 협업이 필요했다.
"젊은 기업 대표로서 마케팅과 고객서비스 등은 물론 기술도 어느 정도 있었지만 아무 매장에서나 볼 수 있는 기성 제품은 싫었어요. 오랜 연륜과 경험을 바탕으로 단 하나뿐인 가구를 만들어 내는 명장님과 어떻게든 협업을 해야겠다고 판단했죠. 30년의 나이 차는 걸림돌이 아니었습니다."
베이비붐 세대인 신 명장은 "나도 꼰대"라고 말한다. "우리 땐 '까라면 까!'라는 게 있었는데 요즘 세대는 그런 걸 찾기 힘들어요. 대신 요즘 젊은이들한테 느끼는 열정은 분명 남다르죠."
하지만 우 대표는 신 명장을 꼰대로 보지 않는다. "분명 자기 고집도 있으실 텐데 절대 본인 의견만 내세우지 않고 뭘 제안하든 끝까지 들으세요." 그렇게 블라노스에서는 신 명장의 오랜 기술과 경험, 우 대표의 젊은 감각이 합쳐져 단 하나밖에 없는 원목 수제가구가 만들어진다.
열 번의 거절 끝에 우 대표의 요청을 받아들인 신 명장도 "젊은 대표와 함께 일하는 지금이 정말 행복하다"고 말했다.
/기획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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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취재팀
글 : 임승재차장, 김준석, 배재흥기자
사진 : 조재현, 김금보, 김도우기자
편집 : 김동철, 박준영차장, 장주석기자
그래픽 : 박성현, 성옥희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