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운동신경은 평범하지만 갑자기 찾아온 호기심
손녀와 시작 " 물위서 보는 송도 풍경 아름다워"
체험용 카약 성에 안차 시합용 K-1 감독에 부탁
강습 3일째 끝끝내 완주 6일째 시원한 물살 갈라
안전문제 고려 최대한 감독이 직접 레이스 챙겨
올해 대회 신청 놓쳐… 섬투어링 계획 '대리만족'

일흔의 나이를 바라보는 한 인천 할머니의 '카누' 도전기가 주변 생활체육 동호인들 사이에서 화제다.
카누 경기에 쓰이는 K-1 카약을 처음 접하는 이들이라면 열이면 열, 균형을 잡지 못해 물에 풍덩 빠지기 마련이다. 운동 좀 한다는 젊은 사람들도 혀를 내두를 정도로 배우기가 만만치 않다는 종목이 바로 카누다.
지난 13일 찾아간 인천 송도국제도시 카누 훈련센터. 빌딩 숲으로 둘러싸인 송도 달빛공원에서 송도2교(컨벤시아교) 아래로 걸어 내려가면, 길게 뻗은 하천을 따라 레이스를 펼치는 인천시청 직장운동경기부 소속 카누팀 선수들을 만날 수 있다. 카누 동호인들이 휴일에 즐겨 찾는 곳이기도 하다.

화제의 주인공인 이은진(69)씨는 집 근처 공원에 나갔다가 우연히 K-1 카약 강습을 받는 동호인들을 보게 됐다. 평소 다니던 수영장이 코로나19로 문을 닫자 답답한 마음에 바람이라도 쐬려고 자전거를 끌고 송도2교 주변 산책로를 지나던 차였다.
호기심이 생긴 이씨는 재능기부로 카누 동호인들을 가르치고 있던 이에게 다가가 한참 귀를 기울이다 용기를 내서 자신도 배울 수 있느냐고 물었다. 그는 국가대표 감독 출신인 강진선 인천시청 카누팀 감독이었다.
그 인연으로 이씨는 지난달 초 연수구 카약동우회에 가입해 손녀딸과 함께 초보자를 위한 체험용 카약을 타봤다. 이씨는 "물 위에서 보니까 송도의 풍경이 더욱 멋졌다"며 "타 보지 않은 사람은 이 말의 의미를 절대 모른다"고 말했다.

하지만 뭔가 성에 차지 않았다는 그는 강 감독을 다시 찾아가 시합용 K-1을 배우고 싶다고 졸랐다. 이씨의 부탁에 황당할 수밖에 없었다는 강 감독은 '연세가 있으신데 한두 번 해보다가 힘들어서 그만두시겠지'라는 생각에 못 이기는 척하고 이씨의 부탁을 들어줬다.
이씨는 "하도 조르니까 감독님이 '제가 오늘 포기시켜드리겠다'고 하시더라고요"라며 호탕하게 웃었다. 강 감독은 일흔을 앞둔 이씨가 강습 중 혹시 모를 사고라도 당하면 어쩌나 싶어 일찌감치 그만두게끔 하려고 이런저런 궁리를 했던 거였다.
이씨는 예상대로 중심을 잡지 못해 배에 제대로 올라타지도 못하고 숱하게 물에 빠졌다. 하지만 강습 3일째 되던 날 그가 송도1교에서 2교로 이어지는 2.5㎞ 코스를 딱 두 번만 물에 빠지고 끝끝내 완주하자 강 감독은 깜짝 놀랐다. 아이로 치면 걸음마를 뗀 셈이다.
강 감독은 "이 코스에서 K-1을 타고 혼자서 스스로 끝까지 와야 테스트를 통과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카누 입문 6일째쯤 되던 날 시원하게 물살을 가르는 이씨의 레이스가 촬영된 휴대전화 동영상에는 자전거를 타고 쫓아가며 잔뜩 흥분한 목소리로 "그렇지! 과감하게! 좋아!"라고 외치는 강 감독의 육성이 담겨 있어 웃음을 자아냈다. 누구보다 신이 났던 강 감독이었다.
이씨는 "처음에는 몸 여기저기에 멍이 들 정도로 넘어지고 빠지면서 고생을 했다. 노력한 끝에 완주해서 정말 행복했다"며 "물 위에서도 내가 원하는 대로 움직일 수 있다는 게 무척 신기했다"고 소감을 전했다.
'왕 누님'으로 통한다는 이씨의 도전에 체험용 카약을 즐겼던 동우회의 젊은 회원들도 자극을 받았는지 K-1에 속속 도전장을 내고 있다.
이씨는 "도전은 행복을 가져다준다"며 "내 자식도 취미 활동을 함께 못 해주는데, 카누에 도전한 덕분에 이 나이에 젊은 친구들과 어울릴 수 있게 돼 정말 행복하다. 감독님께 감사하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추석에 아들에게 블로그를 배워 카누 동호인으로서의 행복한 삶을 기록해 나가고 있다.

이씨는 자신도 여느 평범한 할머니들과 다를 바 없다고 했다. 시집 간 딸의 육아를 돕기 위해 예순 즈음에 인천에서 운영해 왔던 학원을 정리하고 스스로 정년을 맞이했다고 한다. 또 스포츠에 남다른 관심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나이에 비해 운동신경이 뛰어나다고 스스로 믿는 것도 아니다.
이씨는 "코로나19가 돌기 전까지 취미로 인천시(체육회)가 운영하는 수영장 등을 다니던 정도였고, 그런 체육시설들이 모두 문을 닫게 되면서 거의 집에서만 생활했다"며 "아픈 무릎에 도움이 된다고 해서 운동 삼아 집 근처 공원에서 자전거를 타기 시작한 것도 얼마 되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코로나19 시대에 내가 즐길 수 있는 취미 활동을 찾다가 카누가 갑자기 눈에 들어온 것 같다. 그전까지는 집 앞에 큰 공원이 있어도, 카누를 타는 사람들이 보여도 관심을 두지 못했다"고 했다.
이씨는 요즘 마실 다니듯 송도2교 카누 훈련센터를 찾는다. 그의 기량도 하루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있다. 하지만 강 감독은 안전 문제를 고려해 가능하면 자신이 지켜보는 중에 이씨가 레이스를 펼치도록 하고 있다.

이씨를 여사님으로 부른다는 강 감독은 "젊은이들에게 도전 정신을 몸소 보여준 여사님의 용기와 열정에 크게 감동 받았다"며 "카누 대중화와 저변 확대를 위해 더욱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이씨는 강 감독을 졸라 내년 전국생활체육카누대회에 출전시켜 주겠다는 약속까지 받아냈다. 올해 대회는 참가 신청 기간을 놓쳤다고 한다.
최근 동우회 임원들과 홍천에서 카누를 즐기고 온 이씨는 또 한 번의 도전을 앞두고 있어 무척이나 설렌다고 했다. 그는 강 감독이 올해 안에 카누 동호회원들을 이끌고 갈 인천 앞바다 섬 카누 투어링에 함께 가기로 한 것이다. 이씨는 "상상만 해도 신난다"며 활짝 웃었다.
글/임승재기자 isj@kyeongin.com, 사진/김용국기자 yong@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