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교수 생활 20년·원장 취임 6개월
학교와 다른 현장 체감 "새로운 언어 배우는 기분"
"짧게 손만 대고 멈추면 똑같은 문제 다시 생겨나"
소·부·장 산업은 '긴 호흡' 필요… 꾸준한 지원 역설
# 원천 기술 개발하지만 핵심은 연결
연구원이 직접 장비·특허·포트폴리오등 문제 해소
화학물질 승인 중기 부담… 누구나 와서 실험 가능
경기도 유일 공공 R&D 지원기관으로서 책무 강조

한국 경제를 떠받치는 반도체·디스플레이 산업 등에 영향이 불가피했다. 특히 다수의 반도체·디스플레이 업체가 소재한 경기도엔 직격탄이 예상됐다. 도가 3개 품목을 비롯해 대일 수입 의존도가 높은 품목을 제조하는 기업 전반에 지원을 결정한 이유이기도 하다. 경기도형 소재·부품·장비 국산화 사업의 시작점이었다.
재료공학 전문가인 주영창 서울대학교 재료공학부 교수를 차세대융합기술연구원(이하 융기원) 원장에 선임한 것도 이 때문이다.
융기원은 지방자치단체 연구기관 중 기업의 R&D 지원에 특화돼 있는 거의 유일한 기관이다. 그런 융기원이 이른바 소·부·장 국산화 지원을 이끌게 된 가운데 선두엔 재료공학 전문가인 주 원장이 서게 됐다.
반년이 지난 지금 국내는 물론 전 세계를 강타한 코로나19 이슈 등에 일본의 수출 규제에 대한 공분도, 소·부·장(소재·부품·장비) 국산화에 대한 관심도 한풀 꺾인 상황이다.
소·부·장 개발은 긴 호흡이 필요하지만 모처럼 붙은 불씨가 꺼져버릴까 우려의 목소리가 번지고 있다. 주 원장 역시 인터뷰 내내 꾸준한 지원의 필요성을 거듭 역설했다.

#소재·부품·장비, 긴 호흡 필요
올해 초까지 그는 서울대 교수였다. 국내 최고로 꼽히는 대학에 20년 넘게 몸담으며 많은 논문을 쓰고 기술을 개발하는데 기여했지만 늘 갈증이 있었다.
"결국 기술은 사람을 위해 만드는 것인데 학교엔 그 기술을 직접 쓰는 사람, 현장이 없었다. 괴리감을 많이 느꼈다"던 주 원장은 "원장이 된 지 6개월이 됐는데 당연히 학교와 현장이 다르다는 것을 느낀다. 완전히 새로운 언어를 배우고 있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그런 그가 원장으로 부임한 후 가장 주력해왔던 게 경기도형 소·부·장 국산화 지원 사업이다. 재료공학 전문가인 그가 이곳 원장으로 온 결정적인 이유이기도 하다.

"재료공학을 전공한 사람으로서 이렇게 소재·부품·장비 산업이 유명해진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온 국민이 '소부장'이라는 말을 쓰게 됐다. 그런 점에선 아베 전 총리에 감사해야 할까"라며 웃은 주 원장은
"반도체도, 자동차도, 가전도 모두 1등인데 왜 그 안에 들어가는 소재·부품·장비는 우리 손으로 만들지 못했을까 생각해보면 사실 우리나라의 관련 산업 역사가 짧다. 소재·부품 제조 기업 중 세계적으로 가장 큰 기업이 독일의 바스프라는 곳인데 설립한 지 150년 가량 됐다. 우리나라는 그때 조선 시대였다. 그런 역사를 단기간 따라잡는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며
"소재나 부품 등은 다른 나라에서 사다 쓰면 됐고 그동안 제품 생산에 문제가 없었으니까 중요성을 크게 인지하지 못한 측면도 있다. 이번 수출 규제를 통해 공급 체계 자체가 무너질 수 있다는 점을 깨닫게 된 것이다. 이것도 우리가 해야 할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하게 된 점이 가장 뜻깊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계기가 생긴 것은 의미가 있지만 짧게 손만 대고 멈추면 똑같은 문제가 다시 생길 것"이라며
"반도체나 자동차 등 완성품은 인력을 투입하면 상대적으로 단기간에 성과를 낼 수 있다. 그런데 소·부·장은 긴 호흡으로 끌고 가야 한다. 모처럼 국산화 기회가 생겼는데 '1년이나 됐는데 이것밖에 못 했어?', '아직도 소부장이야?'라고 볼까봐 걱정이 큰 것도 사실"이라고 토로했다.
#핵심은 '연결'…과학기술도 '공정'이 중요
융기원은 경기도내 17개 기업의 소재·부품·장비 국산화 작업을 돕고 있다. 단순히 비용만 지원해주는 게 아니라 문제가 무엇인지 살피는 게 핵심이다.
주 원장은 "원천기술을 개발하기도 하지만 핵심은 연결"이라며 "좋은 소재나 부품을 개발할 수 있는 역량은 있는데 도중에 문제가 생기면 이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막막해 하는 중소기업들이 많다. 그러면 연구원들이 '문제해결사'로서 직접 해당 기업을 찾아 어떤 문제가 있는지 살피고 관련 전문가를 연결해주거나 절차를 알아봐 준다"고 설명했다.
어떤 장비를 써야 하는지, 소재를 제대로 만든 것인지, 특허는 어떻게 내야 하는지, 대기업에 납품하려면 어떻게 포트폴리오를 작성해야 하는지 등 작은 기업들이 혼자선 풀기 어려운 문제들을 함께 해결해주는 것이다. 융기원 차원에서 포럼을 열어 대기업이 지금 필요한 소재나 부품 등이 무엇인지 직접 설명하는 장도 만든다.

중소기업들이 이를 듣고 맞춤형 개발에 나설 수 있도록 한 것인데 지난 9월에는 삼성디스플레이와 LG디스플레이가 포럼에 참석해 앞으로의 디스플레이 개발 구상을 설명했다.
27일 개소한 오픈 랩(개방형 실험실)도 경기도형 소부장 국산화 지원의 한 축이다. 다양한 물질을 결합해 소재를 만들어내는 데 있어 각종 실험이 필요하지만 이를 진행할 수 있는 공간이 없어 전전긍긍했던 중소기업들을 위한 곳이다.
주 원장은 "역량은 있는데 가지고 있는 기본 자원에 차이가 있어 이를 시도조차 해보지 못하는 게 중소기업의 현실"이라며 "대기업은 장비도, 안전 설비도 갖추고 있는데 작은 회사에선 그렇지 못하다. 안전 문제 때문에 화학물질을 취급하려면 그때마다 일일이 승인을 받아야 하는 것도 중소기업으로선 큰 부담이다.
융기원이 이번에 만든 오픈 랩은 이미 중소기업이 취급하려는 화학물질 다수에 대해 승인을 받았고 안전하게 실험할 수 있는 장비 등도 모두 갖췄다. 누구나 와서 실험할 수 있도록 하는 게 핵심"이라고 말했다.

결국 '공정'의 가치와 맞물려있다는 게 주 원장의 설명이다.
그는 "과학기술이 경제를, 세상을 바꾸는 주된 요인이 됐는데 그동안 과학은 특정 우수 집단만이 다루는 것으로 치부돼 왔다. 그렇다 보니 과학기술을 자본력을 가진 소수가 독점하기 쉬운 구조가 됐다"며
"지금은 플랫폼을 가진 소수가 이익을 독점하지 않나. 과학기술 역시 이를 실현하기 위한 인프라, 플랫폼이 중요한 만큼 이를 토대로 얻어진 이익을 특정 소수만이 누린다. 인력과 자금을 오랜 기간 꾸준히 투입해야 하는 소·부·장은 특히 그렇다"고 언급했다.
내로라하는 대기업들이 첨단기술을 기반으로 초고속 성장을 이룬 점도, 소재·부품·장비 원천기술을 가진 일본이 수출규제라는 카드를 꺼내 든 점도 과학기술의 이런 특성과 맞물려 있다는 얘기다.
이 때문에 과학에도 공정, 기회의 평등을 구현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주 원장은 "과학기술 부문에서도 누구나 기회를 공정하게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공공의 힘이 필요하다. 융기원은 그런 공공 차원의 플랫폼을 마련하는 기관이다. '공정'을 앞세운 경기도의 정책 기조와도 맞물려 있다"며 "경기도의 유일한 공공 R&D 지원 기관으로서 융기원이 '과학의 공정'을 실현하기 위해 더욱 앞장설 것"이라고 밝혔다.
글/강기정기자 kanggj@kyeongin.com, 사진/김도우기자 pizza@kyeongin.com
■ 주영창 원장은?
# 학력
1965년생
1987년 서울대 졸업
1995년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학 MIT 대학원 재료공학 박사
# 경력
1999년 ~ 서울대학교 재료공학부 교수
2017년 2월 ~ 2019년 2월 대학기술산업지원단(UNITEF) 박사
2020년 3월 ~ 차세대융합기술연구원 원장
# 수상
1987년 포스코 철강상
2004년 신진학술상
2010년 해동학술상
2012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공로상
2015년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상, LS-Nikko 학술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