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장르 접합… 한국전통음악 최선두
반복·파괴 넘나든 곡, 정형 깨뜨리며 압도

서정민갑1
미래는 어떻게 오는 것인가. 지난 13일 오후 8시, 수원 경기아트센터 대극장에서 열린 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의 레퍼토리 시즌 2020 '21세기 작곡가 시리즈' 공연이 끝나자마자 이 질문이 날아들었다.

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의 예술감독 원일이 연출하고 부지휘자인 장태평이 연주한 이날 공연은 짧았다. 한 시간 남짓 이어진 공연은 양지선의 곡 '아_에_이_오_우', 라예송의 곡 '먼 바당 작은 테우 위 Ⅱ', 아직(AZIK)의 공연창작·연주곡 '평온 속에서 눈을 뜰 때', 장영규의 곡 '수제천', 윤은화의 곡 '국악관현악을 위한 사이클'로 이어졌다.

몇 개의 단을 쌓아 계단처럼 배치한 무대 위에서 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는 동양고주파를 비롯한 다른 연주자들과 함께 다섯 곡을 소화했다.

가장 궁금한 것은 얼마나 새롭고 도전적인지였다. 전통 음악의 생성 원리이자 고유한 창작음악 개념을 동시대의 예술과의 만남에 창의적으로 적용하며 현대가 요구하는 다양한 형태의 음악 행위를 하겠다는 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의 포부 때문이었다.

지금 한국전통음악계는 그 어느 때보다 용솟음친다. 새로운 팀들이 등장하고 전례 없던 시도가 이어진다. 대중음악과 만나고 다른 장르와 접합한다. 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 역시 그 길의 최선두에 있다. 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의 21세기 작곡가 시리즈는 그 도전의 일환이다.

무대를 연 곡은 양지선의 '아_에_이_오_우'. 2007년에 작곡해 2008년 네덜란드 Orkest Ereprijs가 초연한 작품을 개작했는데 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와 아홉 명의 소리꾼이 협연했다. 단순한 구조의 음과 리듬을 계속해서 반복하며 상승하는 방식이었다.

음악을 구성하는 최소한의 요소만 남기고 모두 지워버린 다음 알짜들을 들이미는 것 같은 고집스러운 집요함이 돋보였다.

라예송의 '먼 바당 작은 테우 위' 역시 단순명료했다. 단말마의 비명을 지르거나 단숨에 비수를 꽂듯 순식간에 치고 빠지는 곡은 군더더기 없이 명징했다. 소품처럼 느껴졌던 곡들에 비해 아직의 '평온 속에서 눈을 뜰 때'는 격정적이었다.

밴드 잠비나이의 멤버인 이일우가 음악감독으로 참여해 공동창작한 곡은 대중음악과 손을 잡았을 뿐 아니라 노이즈 사운드로 나아가며 소리의 경계를 넘나들었다. 한국대중음악의 오래된 전위라고 불러도 좋을 장영규의 '수제천'은 미디음악으로 버무렸다.

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가 수제천을 연주하는 사이 출몰하는 미디사운드는 생경함으로 제 역할을 다했다. 동양고주파가 함께 연주한 '사이클'은 마지막 곡다운 야심이 분출했다. 테마를 발산하고 흩트리고 터트리는 곡은 응집하며 분산했다. 반복과 파괴를 넘나든 곡은 정형을 깨뜨리며 압도했다.

개별곡의 성공과 실패를 따지는 일은 무의미했다. 묻고 싶은 대로 묻고, 듣고 싶은 대로 듣는 공연은 매순간 소진하듯 산화함으로써 자신의 길을 갔다. 맨 처음 질문에 답할 때다. 부서지기를 두려워하지 않을 때 미래가 온다.

/서정민갑(대중음악의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