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살때 혜각스님 만나 불화 입문… 국보 1호 작업 등 업적
코로나 탓 강의 힘들지만 다행히 제자 3~4명 꾸준히 지도
단청 작업한 숭례문 전소땐 눈물… 복원 도움 주고자 조언
일본기내 소개방송 경험… 우리 정부·기관 인식 변화해야

불전의 서까래와 기둥을 아름답게 장식하는 오방색은 처마 밑 무늬의 기품을 더한다. 오방색은 우리 실생활과도 밀접해 있다. 흔히 집에서 사용하는 방석을 비롯해 접시, 그릇 등 실생활 속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우리 전통유산인 '단청(丹靑)'을 살펴봐도 그 화려함과 색감에 놀란다. 이런 오방색 무늬를 수놓으면서 70년 동안 단청을 지켜온 명장 김종욱(87·경기도 무형문화재 제28호) 단청장을 '인터뷰 공감'에 모셔봤다.
"우리 스스로가 문화재를 지켜야 합니다. 유형문화재도 무형문화재가 만듭니다. 관심과 지원이 필요합니다."
올해 코로나19 확산으로 외부인을 만나지 못하는 상황에서 김 단청장은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그는 "코로나19로 인터뷰를 응하지 않으려고 했다. 올해는 강의하지 못할 정도로 힘든 하루를 보냈는데 다행히 경기도 제자 3~4명을 꾸준히 지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단청이라는 것이 워낙 힘들고 밥벌이가 쉽지 않아 배우려는 사람이 많지 않아 걱정이다. 우리의 전통 문화가 사라질까 우려스럽다"고 덧붙였다.
단청은 목조건물에 여러 가지 빛깔로 무늬를 그려 아름답고 장엄하게 장식하는 것을 말한다. 건물에 색을 입히는 작업만 하는 단청장을 '어장(魚杖)'이라 부르고 불화(佛畵·불교의 종교적인 이념을 표현한 그림)까지 그려내는 단청장을 '금어(金魚)'라고 부른다.
경기도무형문화재 제28호 장인으로 손꼽히는 김 단청장은 '탱화(幀畵·천이나 종이에 부처, 보살, 성현들을 그려 벽에 거는 것)와 불화, 벽화까지 작업 가능한 국내 유일의 장인이다.

김 단청장은 "단청은 서까래나 기둥, 전각을 장식하는 용도뿐 아니라 부식과 습기를 막아 목재를 오래도록 보호하기 위한 기능도 갖고 있다"며 "대개 단청이라 하면 전각에 색을 입히는 정도를 떠올리게 되지만 불화, 벽화, 공예품에 오방색을 그리는 것도 단청에 포함된다. 특히 한국의 단청은 중국과 일본에 비해 단아하고 정제된 색감으로 기품을 더해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 단청장은 주로 잿빛 승복을 입는다. 사념을 없애고 온전히 작품에만 집중하자는 의미다. 그는 "곱고 화려한 색은 작품에만 사용할 뿐 스스로는 치장하지 않는다는 것이 나의 마음가짐"이라고 전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의 얼굴은 마치 수행하는 불자의 모양처럼 여유로움이 느껴진다.
그는 요즘 수원시 무형문화재 전수회관에서 작업하며 후대 양성에 애를 쓰고 있다.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작업에 몰두하고 있지만 코로나19 상황으로 올해는 이마저도 쉽지 않다. 물론 고령의 장인 입장에선 코로나19 감염을 무시할 수도 없고 이 때문에 사람들을 만나는 것조차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면 김 단청장은 어떻게 단청을 접했을까.
그는 "올해로 붓을 잡은 지 70년이 됐다. 당시 13세가 되던 때 6·25 전쟁으로 피란을 나온 혜각 스님을 만난 것이 계기가 됐는데 혜각 스님을 따라 개성 안화사로 거처를 옮겨 불화에 대해 배우게 됐다"면서 "모두 그렇듯이 그 시절은 힘든 시기였는데 절 생활은 더 힘들었다. 청소는 물론 선배들의 불화 작업실까지 정리하다 보면 하루가 금세 지나간다"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절에서 생활한 지 5년이 되면서 붓을 잡게 됐다. 감회가 새로웠고 뭐든지 그리고 싶은 욕망도 생겼지만 그럴 때마다 내 자신을 되돌아보고 오로지 단청에만 집중했다"고 덧붙였다.
김 단청장은 어려움 속에서도 대단한 업적을 남겼다. 경주 불국사 석굴암 입실을 비롯 경복궁 근정전, 덕수궁, 창경궁, 남한산성 수어장대, 수원화성 방화수류정, 통도사, 직지사, 월정사, 국보 1호 숭례문까지 전국 고찰의 단청과 불화 작업으로 전통을 이어왔다.

그는 "1988년 숭례문 단청 작업에 참여했는데 그로부터 21년이 지난 2008년 방화로 숭례문이 전소되면서 너무나 아쉬웠다. 정성을 들이고 전통의 맥을 이었는데 한순간에 무너져 눈물이 났다"며 "현재 숭례문 복원 작업에 조금이나마 도움을 주기 위해 조언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단청장은 경기도 무형문화재 제28호 기능보유 장인 단청장으로 1999년 10월에 지정됐다. 당시 문화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그의 존재감을 세상이 알게 됐고 그를 장인으로 인정했다. 그는 북한 단청도 직접 봤다고 했다.
그는 "문화재보호법 시행과 동시에 경기도무형문화재로 지정된 뒤 다음 해 북한에서 전시회를 했는데 당시 북한 무형문화재 연구가 역시 단청에 많은 관심을 보였다"며 "북한의 단청 기술력도 뛰어나다"고 강조했다.
김 단청장은 작은 바람이 있다. 무형문화재에 대한 많은 관심과 지원이 있어야 우리의 문화유산을 지켜내고 미래 세대들에게 전해줄 수 있다는 것이다.
김 단청장은 "한번은 일본 항공사가 운영하는 비행기에 몸을 싣고 일본으로 가는 길이었는데 기내 안에서 안내 방송을 했다. '한국의 단청 무형문화재 김종욱님이 타고 있습니다'라고 말이다"며 "이처럼 일본은 무형유산에 대한 가치 존중과 인식이 우리와는 분명 달랐다"고 전했다.

그는 "단청을 배우는 사람은 예나 지금이나 삶이 여유롭지 못하다"며 "단청을 배우고 장인이 되기 위해선 정부나 관계 기관의 관심과 지원이 절대적이다. 단청을 통해 이익을 얻는 것은 어려운 일이고 생활고에 시달리는 현대인들이 단청을 쉽게 접하고 배울 수 있겠는가"라고 말했다.
이어 김 단청장은 "우리 문화는 우리가 지켜야 한다. 문화는 그 시대를 반영하듯 미래 세대에 우리의 문화를 제대로 전달해줘야 한다"며 "우리가 느끼고 영위하는 현재의 역사와 문화를 후세에 남겨주기 위해선 우리 스스로가 문화를 계승 발전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유형유산도 무형문화재가 만드는 것이다. 무형문화재에 대한 인식의 변화와 절대적인 관심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글/신창윤기자 shincy21@kyeongin.com, 사진/김금보기자 artomate@kyeongin.com
■ 김종욱 단청장 프로필·주요작품
▲1952년 故 혜각스님 입문(1대 제자) ▲1953년 서울 창신동 안양암 사미계 수계수지 ▲1964년 통영 세병관 벽화 ▲1973년 경주안압지, 경주오릉, 분황사, 칠백의총 단청 ▲1977년 김천 직지사 조사전, 천불전, 명월당, 금강문, 일주문 벽화 ▲1978년 경주 불국사, 석굴암 입실, 부여 박물관 단청 ▲1980년 통도사 천왕문 단청 ▲1982년 남한산성 수어장대 단청, 수원 방화수류정 단청, 수원 동문서문 홍예반자 단청 ▲1984년 통도사 사명암 백자동, 취운암 설법전 불교설화벽화, 직지사 단청 및 벽화, 월정사 단청 ▲1985년 통도사 천왕문 불벽, 일주문 산수, 관음전 불벽벽화 ▲1988년 서울 숭례문 단청 ▲1994년 진천보탑사 대웅전 금강, 사천왕 단청 및 벽화, 진천 보탑사 명부전 지옥도, 지장도 벽화 ▲1998년 진천 보탑사 사왕전 극락도 벽화, 용인 와우정사 팔상도 벽화 ▲1999년 10월 28일 경기도 무형문화재 제28호 단청기능보유자 지정 ▲1999년 ~ 2004년 울산 정관사 대웅전 심우도, 산수, 팔상도, 은중정벽화, 양주 흥국사 백자동, 요사체산수벽화, 대구 동화사 산수벽화, 파계사 원통보전내부 관음시현도 벽화, 청도 운문사 조영당 백자사미금강산유람도벽화 등 ▲2005년 수원 심우선원 개금불사, 수원행궁 신풍루 단청 ▲2006년 수원 심우선원 약사, 관음, 지장탱화불사 ▲2007년 용인 와우정사 고구려 보덕성사 영정 제작 ▲2008년 여수 향일암 탱화불사 ▲2009년~2012년 수원 심우선원 탱화불사, 수원 서문 홍예반자 백용 모사단청, 안양 석남사 대웅전 팔상전벽화, 부천 석왕사 팔상도 산수벽화 등 ▲2013년 양양 낙산사 지장전 지장후불탱화불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