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인터뷰 김의광 목인박물관장
김의광 목인박물관 관장은 평소 "유물은 적재적소에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옛 수인선 열차의 목적지 표지판을 든 김 관장은 "수인선 협궤열차가 이번에 인천으로 간 경우는 적재적소와 함께 적시까지 맞아떨어진 경우이며, 보다 많은 인천시민들께서 볼 수 있어서 행복하다"고 말했다.

#25년간 소장한 협궤열차

운행중단 소식 듣고 폐기직전 3량 매입
사업수완 없어 활용 못했지만 팔지 않아
'송도역 복원 테마공원' 딱맞는 타이밍

#목인 1200점·석물 800점 소장

외국인 친구 보유 한국유물에 문화충격
퇴근후 골동품가게서 모아 '박물관 완성'
상여 판인형 '우리만의 문화' 연구 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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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인선이 지난 9월 완전히 개통하며, 수도권 남서부를 잇는 광역철도로 재탄생했다. 운행 중단 25년 만에 표준궤도의 복선 전철로 이어진 것이다.

옛 수인선은 일제강점기인 1937년 3월 개통했다. 인천~수원까지 50여㎞에 17개 역이 설치됐으며, 시점에서 종점까지 2시간 가까이 걸렸다. 수인선은 일제의 수탈 목적으로 건설됐다. 소래 등지의 소금을 비롯해 수원~여주 간 철도(수여선)와 연결돼 여주와 이천의 곡창지대에서 나는 쌀을 인천항까지 운반하는 데 이용됐다.

특히 수인선 협궤열차는 궤도 너비가 762㎜에 불과했다. 표준궤도(1천435㎜)의 절반 정도였다. 후일에 꼬마열차 혹은 소철(小鐵) 등의 애칭이 붙었던 이유다.

인천과 수원을 오가며 인천시민과 경기도민의 애환을 실어나른 꼬마열차는 1995년 12월 운행을 중단했다. 이후 대전 철도차량정비창에 보관됐다. 이를 김의광 목인박물관 목석원 관장이 3량의 열차를 매입해 충북 진천에 보관했으며, 김 관장의 기증으로 열차는 고향인 인천으로 돌아와 시민 품에 안겼다.

꼬마열차의 객차 1량은 지난달부터 인천시립박물관 우현마당 한편에 자리를 잡고 서 있다. 열차 외부는 항시 볼 수 있으며, 내부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매시 정각에 10분 동안 개방한다. 시립박물관 안내 데스크에 접수하면 개방 시간 동안 내부에 들어가 볼 수 있다.

인천시립박물관 '협궤열차' 전시

열차 내부엔 '1969 인천공작창'이라고 쓰인 표지판이 있다. 1969년 인천 동구 화수동에 있었던 인천공작창에서 제작된 걸로 볼 수 있다. 열차는 나이가 비슷하거나 그 이상인 중장년의 시민들을 추억으로 이끌고 있다.

'타임머신'과도 같은 열차를 인천에 기증한 김의광 관장을 지난 22일 오후 서울 종로구 부암동의 목인박물관 목석원에서 만났다.

김 관장은 "마침 오늘 오전에 연수구로 갈 협궤열차 2량의 운반에 대해 서명을 했으며, 내일 보낼 예정"이라고 인사를 건넸다.

참고로, 23일 김 관장의 품을 떠난 협궤열차 2량은 화성시에 있는 업체로 이동해 보존처리 과정에 들어갔다. 인천 연수구는 내년 봄께 옛 수인선 송도역 역사의 복원사업을 마무리하고 보존처리를 완료한 열차 2량이 전시된 '문화공원'을 조성할 방침이다.

김 관장에게 기증까지의 전말을 들어봤다.

"협궤열차의 운행이 중단됐다는 소식을 듣고는 폐기 직전의 열차 3량을 매입했습니다. 비용이 꽤 나갔어요. 운반비도 만만치 않았죠. 당시 기차나 비행기, 배 카페 등이 유행할 때였고, 매입하면서 이런 부분을 염두에 뒀어요.

그러나 25년 동안 소장하고 있다가 얼마 전 인천에서 이 열차에 대한 관심이 있다는 걸 알았고, 아무래도 열차의 원래 고향인 인천에 가는 게 맞는다고 생각했지요.

마침 연수구에서 옛 송도역을 복원해 테마공원을 만든다고 하고 시기도 딱 맞았습니다. 적재적소에 적시까지 맞아떨어졌어요. 저보다 인천시민 여러분들이 볼 수 있게 돼 기쁘게 생각합니다."

공감인터뷰 김의광 목인박물관장

그간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김 관장이 아니었다면 열차 3량이 25년 동안 온전히 보전됐으며, 인천으로 고스란히 올 수 있었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곧장 폐기됐거나 엉뚱한 곳으로 팔려갔다면 어떻게 사라질지 모를 일이었다.

유물에 대한 애정과 안목이 깊은 김 관장의 소유가 아니었다면 현재 인천에서 꼬마열차를 보는 건 불가능했을 터였다.

김 관장은 "사업 수완이 없어서 매입한 열차를 활용하지 못했고 팔지도 않았다"고 했지만, 겸손의 대답이라는 건 약 1만㎡ 부지(국유지 포함)에 조성된 목인박물관을 돌아보면서 이내 알 수 있었다. 현재 실내 전시장에 1천200여점의 목인(木人)과 야외전시장에 석물(石物) 800여점이 전시돼 있다.

코로나19로 휴관 중인 박물관을 김 관장과 돌아보면서 이야기를 이어갔다.

"어린 시절부터 우표를 수집하는 등 소중하게 생각하는 물건들을 모으는 취미가 있었어요. 그러다 20대 중반에 외국인 친구 집을 방문했어요. 친구 집에서 우리나라 민속예술품인 반닫이를 봤지요. 한국사람인 저도 잘 모르는 유물을 보면서 문화적 충격을 받았어요. 그때부터 취미로 민속예술품을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주)태평양에서 근무하던 시절이어서 퇴근 후나 주말을 이용해 골동품 가게를 찾았고, 그렇게 모은 게 박물관이 되었네요. 또한, 박물관이 있기까지 곁에서 아내(서혜숙 씨)가 많이 도와주고 응원해 줬습니다."

공감인터뷰 김의광 목인박물관장

김 관장의 민속예술품 사랑엔 부친인 김일환(1914~2001) 선생의 영향이 컸다. 김일환 선생은 국군 창군의 산파 역할을 했으며, 육군 중장으로 예편한 후 이승만 정부에서 상공부 장관, 내무부 장관, 교통부 장관을 지냈다.

"아버지께선 한국전쟁 당시 한국은행에 보관된 금괴와 경주에 있는 국보 15점, 보물 124점을 미국으로 반출시켜서 전쟁의 피해를 비껴가게 하셨습니다. 전쟁 당시 국방부군수경리국장이셨어요.

반출해 미국으로 옮겨졌던 금괴는 40여년 후 한국이 국제통화기금(IMF)에 가입할 때 출자금으로 충당되었고, 국보는 미국 순회전시 후 돌아왔죠.

제2대 국립중앙박물관학회 회장(1984~1987)을 역임하셨고, 영부인이었던 프란체스카 여사에게서 선물로 받은 병풍 그림 '해학반도도'(서울시유형문화재 제420호)를 이화여대박물관에 기증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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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일보 취재에 미리 준비한 듯 인천과의 인연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상공부 장관으로 일하시던 아버지를 따라 인천의 한국중공업과 한국유리 등을 갔던 기억이 있습니다. 월미도와 송도유원지도 갔었고요. 또한, 아내를 대학 1학년 때 만났는데, 당시 서울역 근처에서 그레이하운드 고속버스를 타고 인천에 가서 데이트를 즐긴 경험도 있어요(웃음). 태평양 돌핀스 야구단 대표이사로 재직(1984~1987) 때 한국시리즈에 진출했던 때의 기억도 또렷합니다."

박물관을 다 돌아볼 즈음에 김 관장은 상여의 판 인형(목인)에 대한 자료(연구)를 준비 중이라고 했다.

"지금은 잘 볼 수 없는 상여는 우리만의 독특한 문화예요. 상여의 인형은 인간의 삶과 죽음을 아우르고 있습니다. 어른들에겐 과거를 떠올리게 하고, 우리 민족이 미적으로도 뛰어남을 보여주고 있죠. 작지만 독특하고 아름다운 문화를 보유하고 있다는 부분에 자부심을 느끼며, 앞으로도 우리 문화를 알려갈 것입니다."

공감인터뷰 김의광 목인박물관장

인터뷰 후 박물관을 나서는 기자에게 김 관장은 "야외 전시장에 자리한 다양한 석물들은 봄이면 7만여 그루의 철쭉꽃과 어우러져 장관을 이룬다"며 "봄에 꼭 놀러 오라"고 했다.

인천으로 돌아오는 길에 김 관장의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누군가 그런 것(목인)들을 모으지 않았다면 쓰레기통 비슷한 곳에 뿔뿔이 흩어져 있지 않겠어요? 지금 생각해봐도 목인들은 '나만의 것'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우리 시대의 것'입니다."

글/김영준기자 kyj@kyeongin.com, 사진/김용국기자 yong@kyeongin.com·인천시 제공

■ 김의광 관장은?

△1949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연세대학교 정외과 졸업 후 동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1975년 (주)태평양에 입사했으며, 태평양 장업(주) 전무, 태평양 돌핀스 야구단 대표이사, 장원산업(주) 회장을 역임했다.

△2004년 직장 생활 마감 후 이듬해에 서울 종로구 인사동에 목인박물관을 열었다. 2018년 현재의 자리로 이전했다.

△제23대 대광중·고등학교 총동창회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재)대광발전재단 이사장, (재)목인문화재단 이사장, (사)한국사립박물관협회 회장으로도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