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학으로 시작… 김포서 활동하다 배다리상가에 공방 '둥지'
가구·조명·지갑 등 다양… 전통문양 선호 오랜시간 정성 들여
페트병 샹들리에 등 재활용 공예품만으로 전시회 올해 목표
'선하고 똑똑한 종이' 강조… 제조공장·체험관 등 산업화 '꿈'

인천 중구 신포동에서 한지공예 갤러리·공방 '한지생각이다(주)'를 운영하고 있는 이미자 명장은 30년 넘게 한지의 우수성을 알리고 실용화하는 일에 매진하고 있다. 이 명장은 최근 인천시 공예명장(인천 6호)으로 선정됐다.
그는 "단지 재미있어서 시작한 일이었는데 명장이라는 이름까지 얻어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며 "앞으로는 우리 전통 한지가 실생활 곳곳에 사용될 수 있도록 확산하는 일에 매진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 명장은 고등학교 시절 취미 삼아 박공예를 하다가 한지의 매력에 빠져 1980년대 후반부터 한지 공예를 독학으로 시작했다. 인터넷도 없던 시절이라 관련 서적을 사다가 종이를 찢고, 오리고, 붙이는 작업을 스스로 터득해 자신의 것으로 발전시켰다고 한다.
처음엔 김포에서 전시회를 열고, 공예 강좌를 운영하면서 유명해졌고, 20여년전부터 인천에 공방을 차리고 공예 활동과 후진 양성에 힘을 쏟고 있다.
"김포에서 작업을 하는데 어느 날 신문에 당시 최기선 인천시장이 배다리 지하상가를 인사동처럼 공예 거리로 만들겠다고 발표를 한 걸 봤어요. 세상 물정 모르던 시절에 뉴스만 믿고 요즘 말처럼 은행 돈을 '영끌(영혼까지 끌어 모았다는 뜻)'해서 배다리 상가에 공방을 차렸어요."
결과적으로 배다리는 인사동처럼 되진 않았지만 이때부터 이미자 명장은 인천에 자리를 잡고 한지 공예품을 만들었다. 지금 신포동에 공방을 차린 지는 12년 정도가 됐다고 한다.
전통 한지는 닥나무 껍질에서 나오는 섬유질을 한지 틀에 띄워 만든다. 섬유 조직이 우물 정(井)자 배열이라 질기고 단단하다.
조선 시대 이규경(李圭景)이 지은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에는 "고려의 종이는 천하에 이름을 떨쳤는데, 그것은 다른 원료를 쓰지 않고 닥나무만을 썼기 때문이다. 그 종이가 매우 부드럽고 질기며 두꺼워서 중국 사람들은 고치종이라고도 했다"라는 기록이 있다.

이 명장은 제조공장에서 한지를 받아 고유의 문양을 새기고, 이를 활용해 각종 공예품을 만드는 작업을 한다. 가구부터 조명, 지갑, 가방, 벽지, 바구니, 인형, 액세서리 등 종류도 다양하다.
"저는 우리 전통 문양을 좋아해요. 한지에 전통 문양을 새겨 넣고 그걸 가공해 실용품을 만들어요. 종이라서 내구성이 나쁠 것이란 인식이 있지만, 오히려 가죽처럼 질기고 단단해서 손으로 절대 찢어지지 않아요."
공예품을 만드는 일은 오랜 시간과 정성이 들어간다. 먼저 문양이 새겨진 동판에 원하는 색깔의 한지를 대고 밀가루 풀을 바른다. 그리고 단단하고 넓은 유화용 붓으로 수백~수천번을 내리친다. 그래야 종이에 풀이 잘 먹어 단단해지고, 문양이 잘 새겨진다.
이 작업을 4~5번 반복해 여러 겹의 한지가 한 몸처럼 붙으면 비로소 공예품에 사용될 수 있는 자격을 얻는다.
이 명장은 훈민정음과 도깨비 문양, 전통 기와 문양 등을 주로 활용한다. 한지의 색은 청(靑)·적(赤)·황(黃)·백(白)·흑(黑)의 오방색을 주로 사용한다. 우리 전통 색으로 음양오행 사상을 기초로 한다.
황은 중앙, 청은 동쪽, 백은 서쪽, 적은 남쪽, 흑은 북쪽을 말한다. 나쁜 기운을 막고 좋은 기운을 들이는 의미의 색으로 전통 공예품에 많이 사용된다.
"가죽은 칼로 그으면 스크래치가 생기지만 풀을 먹인 한지는 흠이 나지 않아요. 그래서 눈으로만 감상하는 예술작품에 그치는 게 아니라 우리 실생활에 사용되는 소품으로 가공할 수 있는 거에요. 전통 공예품은 오히려 외국인들이 큰 관심을 보이는 작품이라 한글 무늬를 선호하고 있어요. 'ㄱ', 'ㄴ', 'ㄷ' 모양으로 만든 브로치도 큰 인기를 끌었어요."

그는 '전통'과 '정통'은 다르다고 한다. 전통 한지공예라고 해서 꼭 옛것 그대로의 정통 방식만을 고집하는 것은 싫다고 했다. 무형문화재처럼 수백년전 전통 기술을 그대로 보전하고, 남기는 것이 아니라 전통 기법을 바탕으로 현대적인 활용법을 찾아가는 게 더 좋다고 했다.
공예인들이 겪는 가장 큰 어려움은 경제적 문제다. 시간과 정성이 투입되는 만큼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거나 판매가 저조하기 때문이다. 이 명장은 공방에서 차(茶)도 팔고, 갤러리도 여는 등 유인책을 펼쳤지만 지난해 코로나19 악재를 만나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래도 올해 다양한 전시와 판로 개척을 계획하고 있다.
"올해는 재활용품을 활용한 한지 공예품에 도전해보려고 해요. 공중화장실의 휴지 심처럼 생긴 지관을 활용해 연필꽂이를 만들기도 했고, 페트병을 한지 공예와 접목해 샹들리에 조명을 설치미술처럼 만들어 보고 싶어요. 이런 재활용 공예품만 따로 모아서 전시회를 여는 게 올해 목표에요."
그는 한지는 '선하고 똑똑한 종이'라고 했다. 친환경 소재를 사용해 자연에 이롭고, 항균 효과도 있기 때문에 사람에게도 이롭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지 섬유를 활용한 장판과 벽지, 옷, 양말, 이불이 개발되기도 했다. 그는 한지만을 활용한 체험방을 만들어 한지의 산업화를 이루는 게 꿈이라고 했다.
"한지 산업은 원주와 전주를 최고로 치는데 인천은 아직 한지 관련 부분은 불모지나 다름없어요. 인천공항이 있는 영종도에 한지를 만들 수 있는 닥나무 숲을 만들고, 바로 옆에 한지 제조공장과 공방, 체험관을 만들어서 인천공항에 내리는 외국인들이 꼭 들렀다가 가는 명소를 만들고 싶은 게 꿈이에요. 경제적 투자가 이뤄져야겠지만 일단 꿈은 크게 가져 보려구요."

이 명장은 최근 '제5회 인천시 공예명장' 선정 심사에서 공예명장으로 선정됐다. 3번째 도전 끝에 명장의 영예를 얻었다고 한다. 각 군·구에서 추천한 5명의 후보 중에 이 명장이 공예명장으로 결정됐다. 인천에서는 6번째로 명장의 칭호와 함께 개발 장려금 지급, 국내외 전시회 참가 우선 선정의 기회가 제공된다.
이 명장은 "어떤 명예를 얻는다거나 대우를 받으려고 명장이 된 게 아니라 자기만족이 가장 큰 것 같아요. 경제적으로 어렵고 힘들어도 꾸준하게 한 길을 걸어왔다는 점에서 저는 '개근상'이라는 표현을 쓰고 싶어요. 이 분야가 사양 길에 접어들고 있기는 하지만, 앞으로 인천에서 더 많은 역할을 할 수 있게 되길 기대합니다"라고 말했다.
글/김민재기자 kmj@kyeongin.com, 사진/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 이미자 명장은?
▲ 1967년 6월 출생
▲ (사)한지산업기술발전진흥회 이사 및 인천지부장
▲ (사)문화예술소통연구소 이사
▲ 전주전통고예전국대전 운영위원
▲ 한지생각이닥(주) 대표
▲ 1989~2019년 개인전·초대전 15회, 그룹전 40회
▲ 1992~2020년 이태원 글로벌빌리지센터 외국인 관광객 한지체험 강의
▲ 2011년 제14회 인천시 관광기념품공모전 대상
▲ 2013년 제9회 청주국제공예공모전 입선
▲ 2015년 소공인 맞춤형 성장지원사업 선정(조선종이 미래를 만나다)
▲ 2016년 제30회 인천공예품대전 대상
▲ 2021년 인천시 6호 공예명장 선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