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비부머세대 건축사들 그때 많은 걸 보고 배워 부와 지식 축적
공고 졸업후 실습생 거쳐 '라이선스'… 도면부터 현장까지 섭렵
용인 회장 시절 사회공헌활동비 10배로… 재수끝에 경기도회 입성
'사람들과 함께 볼수 있는 건축물' 마음가짐 연장선상 활동 강조
지난해 2차례 건축사 시험을 통과한 인원은 2천298명(1천306명·992명)으로 2016년 456명의 합격자를 냈던데에 비해 불과 5년 새 5배 이상이 불었다.
일감은 늘지 않았는데 배출되는 건축사는 크게 늘었고, 이 때문에 평균 사업소득이 줄어드는 악순환이 벌어진다. 건설붐의 혜택을 보며 자리를 잡은 기성세대 건축사와 막 사회에 첫발을 내딛은 1인 건축사사무실의 격차는 어느 때보다 크다.
1천800명 회원을 보유한 전국 두 번째 규모의 지역건축사회를 이끌게 된 정내수 경기도건축사회장은 어려운 상황에 맞닥뜨렸다. 그래서인지 인터뷰 내내 그는 '책임'을 강조했다. 선배 건축사로서의 책임, 구체적으로는 '황금기'를 보낸 선배로서의 책임이었다.
"지금 막 건축사 시험을 통과한 후배 건축사들에게 무엇인가 해줘야겠다는 생각이 큽니다. 새로운 업역을 개척하지 않으면 지금 포화된 시장 속에서 가망이 없어요. 지금까지 안 해 왔지만 충분히 해볼 만한 업역을 찾아서 회원들에게 소개하는 게 가장 큰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배출되는 건축사의 수가 늘며 과다 경쟁이 발생했고, 이는 건축사 1인당 평균 소득이 3천870만원이란 상황을 만들기에 이르렀다. 전문직으로 분류되는 의사와 변호사가 각각 1억원·2억원이 넘는 소득을 거두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최근 열린 대한건축사협회장 선거에서도 이 문제가 화두에 올랐다. 건축사계의 최대 과제는 회원의 40% 정도를 차지하는 '신진 건축사'·'1인 건축사'를 지원하는 것이 됐다. 이들이 어떻게 새로운 시장을 개척할 것인지, 그 과정을 건축사회가 어떻게 지원할 것인지가 과제로 떠오른 것이다.
정 회장은 신진 건축사와 1인 건축사를 지원하는 것이 협회의 "목표이자 과제"라고 강조했다. 그는 "상황은 더 악화될 겁니다. 55세 이상이면서 자리를 잡은 선배 건축사와 어려운 환경 속에서 건축사를 시작한 후배들을 아우르고 융화시키는 게 숙제"라고 했다.
건축사가 언제나 이랬던 것은 아니었다. 정 회장은 한국에서 올림픽이 열렸던 1988년부터 아시안게임을 치른 2002년까지를 건축사계의 '최대 호황기'라고 설명했다.
"88년 서울올림픽부터 전국적으로 건설붐이 일었어요. 그때는 안 되는 건축사 사무실이 없던 시절이었습니다. 오픈만 하면 무조건 잘 되던 시절이었어요. 그때 사무실을 하던 사람들은 직업적으로 성공을 거둘 수 있었죠. 나이로 치면 회원 중에서도 50대 중반 이상 세대인데 그 선배 세대 건축사들은 때를 잘 타고 난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어요.
그때 정말 많은 걸 보고 배울 수 있었습니다. 베이비부머 세대 건축사들은 부는 물론이고 많은 현장을 통해 지식도 축적할 수 있었어요. 사실 지금 라이선스를 따서 문을 여는 건축사들은 운이 없다고도 볼 수 있죠.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현업에 종사하는 40대 중반 이후 나이의 건축사들도 황금기를 맛보지 못했다. 수요(현장)는 정해져 있는데 공급(건축사)이 증가하다 보니 일거리가 떨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사실은 정 회장도 건설 붐의 절정에선 살짝 비켜난 사람이다. 공고를 졸업하고 건축계에 발을 들였을 때가 1981년. 용인의 한 건축사사무소에서 실습생으로 일하면서다. 정 회장은 "공고에서 건축을 전공했고 자연히 건축사 사무소에서 일하게 됐다"고 회상했다.
당시 용인에 고작 3곳밖에 없었던 건축사 사무소는 현재 250여곳으로 불어났다. 논과 밭 일색이던 곳이 도시로 상전벽해했고, 건축사 정내수도 이 과정에서 성장한다.
"저는 실무로 건축사 라이선스를 딴 사람이죠. 1981년에 들어가서 1991년에 실장이 됐고, 건축사 자격증은 2001년에 땄으니까요. 용인은 장점이 계획부터 시작해서, 말하자면 처음 도면부터 시작해서 (모든 분야를)섭렵할 수 있다는 데 있어요. 다른 지역은 토목을 하는 사람, 구조를 하는 사람이 다 나눠져 있어요. 그런데 용인은 도면 그리는 것부터 현장까지 다 보기 때문에 토털 시스템을 배우기 좋았어요."
정 회장은 경기도 회장이 되기 전, 용인 지역 회장을 4년 동안 역임했다. 사회에 첫발을 딛은 것도 용인이었고, 용인에서 건축이라는 꿈을 이뤘기 때문에 자연히 이르게 된 자리였다.
경기도건축사회장 선거는 지난 2017년 이후 2번째다. 그는 재수 끝에 회장으로 당선될 수 있었다. 그 당시에도 '후배들을 위해'라는 마음으로 선거를 치렀다고 한다.
용인 회장으로 있으며 400만원이었던 사회 공헌 활동 비용은 4천만원으로 10배가 증가했다. 건축사회가 이익집단처럼 비쳐서는 안 된다는 신념 때문이다.
이를 통해 매해 김장을 천포기씩 담갔고, 적을 때는 두 채 많게는 여섯 채까지 차상위계층의 집을 고쳤다. 보수 현장에는 건축사들이 직접 땀을 흘리며 작업에 매진했다. 겨울에는 연탄을 돌렸고, 장학금도 마련해 사회로 환원했다.
정 회장은 "건축사들도 이런 활동을 한다는 것을 지역사회에 알리고 싶어요. 건축사의 근본 마음은 후대에 물려줄, 사람들과 함께 볼 수 있는 건축물을 만드는 것입니다. 돈만 벌려고 하는 일이 아니에요. 사회 공헌 활동도 그런 마음가짐의 연장선에서 펼치는 것이죠"라고 말했다.
이어 "이익집단이 아니라 사회와 함께하는 집단이라는 걸 알리고 싶어요. 경기도건축사회 산하 23개 지역 협회가 있는데 사회 공헌 비용을 다 합치면 1억원이나 됩니다. 매년 1억원씩 사회에 쓰고 있는데 그런 걸 아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게 아쉽습니다. 더 알리고, 더 많이 사회 활동을 하고 싶습니다"라고 덧붙였다.
정 회장은 선거에서 '일하는 회장', '섬기는 회장', 그리고 '매일 출근하는 회장'을 약속했다. 그는 돌려주고 싶다고 했다. 좋은 시절을 보낸 선배로서 후배들이 새로운 업역에 접근하게끔 도움을 돌려주고 싶고, 건설붐이란 사회 현상으로 성공한 만큼 사회에 봉사와 헌신을 돌려주고 싶다고 했다.
갓 고등학교를 졸업해 혈혈단신으로 용인에 발을 내린 정 회장은 물려받은 유산 없이 맨몸으로 성공을 거뒀다. 40년 전 건축사 사무실의 실습생 청년은 이제 경기도건축사회를 이끄는 성공한 건축사가 됐다.
그는 "건축사들이 꿈꾸는 게 자기 집을 자기가 짓는 거거든요. 저는 용인에 제가 지은 집에서 거주합니다. 어찌됐든 나름의 성공을 거둔 셈이죠"라고 말했다.
정 회장은 "건축이라는 직업에 돌려줄 수 있는 무언가가 있지 않을까 고민합니다. 제가 회장으로 재직하는 3년 동안 많은 변화는 아니겠지만, 변화의 시작 만은 제가 제 손으로 이뤄내고 싶습니다"라고 강조했다.
글/신지영기자 sjy@kyeongin.com, 사진/김도우기자 pizza@kyeongin.com
■ 정내수 회장은?
▲ 전라북도 익산 출생
▲ 이리공업고등학교
▲ 한양대학교 공학대학원
▲ 건축사사무소 데카
▲ 경기도건축사회 28대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