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원래 직업은 KBS공채 출신 탤런트
'허·동·택'과 중앙대 함께 다녔고 평소에도 농구 관심
야구장도 아나운서 없던 시절 프로 출범과 함께 마이크
'이름 없이 등번호만' 얼굴과 매치 안돼 시행착오도
# '내 인생의 모든 것' 즐거운 농구
우승경험 없지만 평균관중 2위… '19년째 동고동락'
가족같은 팬에 선수·프런트와 유대… '러브콜' 거절
무관중 경기에 속상… 함께 웃고 울었던 시간 떠올라

2007년 프로에 입문해 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에서만 500경기 이상을 소화한 주장 정영삼 선수와 2009년부터 팀을 이끌고 있는 유도훈 감독, 농구팬 사이에서 이른바 '삼산동 우미관 형님'으로 불리는 삼산월드체육관 경호업체 김광구 대표 등이다.
전자랜드 엘리펀츠 홈 경기장의 장내를 뒤흔드는 목소리도 2003년부터 변하지 않고 있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전자랜드 앨리펀츠 함석훈(55) 아나운서다.

전자랜드가 올 시즌을 끝으로 프로농구단을 운영하지 않기로 하면서 전자랜드 엘리펀츠란 이름도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햇수로 19년째 전자랜드 엘리펀츠와 동고동락한 함 아나운서는 "올 시즌에는 농구장을 찾은 관객들에게 '감사합니다'란 말을 많이 전하려고 했으나, 코로나19로 팬들과 함께할 수 없어 매우 안타깝다"며 "화면으로 경기를 접하는 팬들이 체육관의 생생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함 아나운서의 원래 직업은 배우다. KBS 공채 탤런트 출신으로 '야망의 전설'과 '야인시대' 등 큰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에 출연하기도 했다. 배우로 활동하던 그는 1997년부터 농구장 아나운서란 또 다른 직업을 갖게 됐다. 당시는 프로야구 경기장에도 장내 아나운서가 없던 시절이었다고 한다.
함 아나운서는 "어릴 때부터 농구를 좋아했다. 허재와 김유택, 강동희 선수 등과 같은 시기에 중앙대학교를 다녀서 평소에도 농구에 관심이 많았다"며 "우연한 기회에 전국 대학교 응원대전 사회를 보게 됐는데, 현장에 있는 관계자가 '곧 출범하는 프로농구 장내 아나운서를 해보지 않겠느냐'고 권유해 매우 생소한 농구장 아나운서를 시작하게 됐다"고 말했다.

프로농구 장내 아나운서가 흔하지 않았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함 아나운서도 처음에는 시행착오를 겪을 수밖에 없었다. 그는 "프로농구 초창기에는 유니폼에 선수 이름 없이 등번호만 적혀 있었다"며 "선수 얼굴과 등번호가 매치되지 않다 보니, 선수들의 플레이를 관중들에게 정확히 알려주기 어려웠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때부터 함 아나운서는 선수들의 경기 모습을 관찰해 별명을 붙여주거나 경기 장면을 설명해주는 추임새를 만들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런 과정에서 생겨난 것이 그를 대표하는 유행어 '사랑의 3점 슈터 정인교'와 '뜨리 뜨리 뜨리, 뜨리 포인트!'(3점 슛이 성공할 때마다 내뱉는 추임새) 등이다.
함 아나운서는 "현장에 온 관객에게 경기 상황을 임팩트 있게 설명하고 선수들에게 힘을 북돋아 주기 위해 했던 말들이 많은 농구팬에게 사랑받게 돼 정말 기쁘다"고 웃으며 말했다.

전자랜드 엘리펀츠는 프로농구 챔피언 결정전 우승 경험이 없다. 그럼에도 많은 팬이 경기장을 찾아 열성적인 응원을 보내고 있다. 코로나19로 리그가 중단된 2019~2020시즌 전자랜드 엘리펀츠 경기당 평균 관중은 4천257명으로, 10개 구단 중 2위를 기록했다.
함 아나운서는 전자랜드 엘리펀츠 팬들에 대해 "끈끈한 정이 있는 사람들"이라고 정의했다. 그는 "수도권 지역이란 특성 때문일지 몰라도 인천 지역 팬들은 창원, 부산, 전주 등 비(非)수도권 팀 관중들만큼 흥이 많거나 열정적이지 않다"면서도 "전자랜드 팬들만의 가족과 같은 특유의 분위기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프로농구 초창기부터 경기장을 찾던 팬들이 많다"며 "혼자 오던 팬들이 결혼해 자신의 배우자와 자녀들을 데리고 경기장에 오는 모습들을 보면 뿌듯한 생각도 든다"고 했다.
국내 프로농구에서 가장 인기 많은 아나운서다 보니, 많은 팀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왔다고 한다. 이를 거절할 수 있었던 것도 전자랜드 엘리펀츠의 팬들 때문이었다고 한다.
함 아나운서는 "플레이오프에서 우리 팀과 대결했던 다른 구단 관계자가 이적 제의를 한 적도 있다"며 "비즈니스적으로 생각하면 더 많은 돈을 주는 팀으로 옮기는 게 맞지만, 삼산월드체육관을 찾아주는 관중들이 눈에 밟혀서 다른 팀으로 가지 못했다"고 했다.
이어 "관중들과 직접 만나 약속한 것은 아니지만, 다음 시즌에도 삼산월드체육관에서 만나자는 '무언의 다짐'을 주고받은 것 같다"며 "선수와 사무국, 코치진과도 끈끈한 유대감이 있지만 우리 체육관을 방문하는 수많은 팬 덕분에 19년간 이곳에서 일할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지난해 미국 프로농구(NBA) '농구황제' 마이클 조던과 시카고 불스의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더 라스트 댄스'는 전 세계 스포츠팬들의 엄청난 관심을 받았다. 다큐멘터리 제목인 더 라스트 댄스는 시카고 불스가 마지막 우승을 거머쥔 1997~1998시즌을 앞두고 당시 감독이던 필 잭슨이 내건 슬로건이다.
이 시즌 이후 구단이 리빌딩(Rebuilding)을 하기로 결정하자 마이클 조던과 스코티 피펜, 데니스 로드맨을 주축으로 한 선수 구성으로는 마지막 시즌임을 알린 메시지다.
올 시즌을 끝으로 구단 운영을 마무리하는 전자랜드 엘리펀츠도 팬들과 함께 마지막 춤을 추고 있다. 전자랜드 엘리펀츠는 'All of my life(내 인생의 모든 것)'란 슬로건을 내걸고 투지를 불태우고 있다. 함 아나운서를 포함한 구단 관계자들도 선수들에게 힘을 보태고 있다.
함 아나운서는 "올 시즌이 시작하기 전부터 경기장을 찾는 관중들의 모습을 사진으로 남겨 놓자는 마음을 가졌는데, 코로나19로 무관중 경기가 계속돼 속상하다"고 아쉬워했다.
그는 "전자랜드 엘리펀츠 아나운서로 선수·관중들과 함께 웃고 울었던 시간이 하나씩 생각난다"며 "전자랜드 엘리펀츠란 이름으로 뛰는 마지막 경기까지 팬들이 즐겁게 농구를 관람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글/김주엽기자 kjy86@kyeongin.com, 사진/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 함석훈 팀 아나운서는?
서울에서 학창 시절을 보낸 함석훈 아나운서는 1997년 프로농구 출범 이후 '원주 나래 블루버드'로 팀 아나운서를 시작했다.
2003년부터 19년 동안 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 아나운서로 활동하며 홈 경기장인 삼산월드체육관을 찾은 관객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