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8년부터 8년 가까이 개성을 오갔던 입주기업체 직원 김모(47)씨는 아직도 당시의 기억이 선명하다. 금단의 영역에 가봤기 때문만은 아니다. 비슷한 생김새에 같은 언어를 쓰면서도 경계와 긴장을 늦출 수 없었던 그들과의 특별한 경험은 지금도 많은 걸 생각하게 한다.
밥을 같이 먹을 수도, 식후에 가벼운 운동을 함께 할 수도 없었다. 소소한 안부를 묻는 것 외엔 대화를 나누는 것조차 제약이 따랐다. 정치·경제 문제는 절대 입 밖에 낼 수 없었다. 함께 모여 일을 하면서도 대화의 수위를 어디까지 맞춰야 하는지 정확한 선은 아무도 몰랐다. 혼란스럽고 조심스러웠다.
'초코파이' 건네며 안부인사도
한때 이념 넘어 '통일 시험무대'
하지만 이들은 함께 일하는 동료였다. 이념과 규제에 가로막혀 있지만, 그들도 결국엔 사람이었다. 독한 북한 담배와 부드러운 남한 담배를 바꿔 피워보기도 하고, 초코파이와 자일리톨껌을 건네주며 묻는 "아(자식)는 말을 잘 듣습네까"라는 안부 인사에 서로 미소 지으며 거리를 좁혀갔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지만 남과 북은 한 공간 안에서 그렇게 눈에 보이지 않는 벽을 무너뜨리는 연습을 해나가고 있었다. 그곳이 바로 통일 한반도의 시험 무대, 개성이었다. 김씨는 "만약 통일이 된다면 이런 모습이지 않았을까 싶었다"고 말했다.
2016년 설 연휴 마지막 날이었던 2월10일, 입주기업 (주)영이너폼 이종덕(62) 대표는 급히 연락을 받고 서울 종로에 위치한 통일부 남북회담본부로 달려갔다. 연휴 기간 중 이례적인 소집에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직감했다. 그 자리엔 당시 홍용표 통일부 장관과 20여명의 입주기업 대표들이 모였다.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우리 정부가 공단을 폐쇄키로 결정했고, 곧 발표가 있을 것이라는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이 전해졌다. 그리고 세 시간만인 그날 오후 5시 공식 발표를 통해 공단 폐쇄는 현실이 됐다.
기업들은 반대할 겨를도 없었다. 현지에 있는 자재만이라도 정리할 수 있도록 최소 한 달의 시간을 달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정부는 "하루밖에 드릴 수 없다. 기업 피해 정상화에 노력과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는 공허한 답변만 내놨다.
'평화의 싹' 신기루처럼 사라져
북한은 다음 날 오후 4시50분 "오후 5시30분까지 모든 남측 인원을 추방한다"고 통보했다. 추방 시한을 불과 40분 남긴 시점이었다. 입주기업에 허용된 건 탑차 한 대와 인원 한 명이 전부였다. 결국 이들은 공장 내 모든 물품을 그대로 둔 채 개인 소지품만 겨우 챙겨 숨 가쁘게 개성을 빠져나와야 했다.
이 대표는 "125개에 달하는 기업에 단 하루 만에 철수하라고 하는 게 상식적으로 말이 되느냐"고 분개했다.
경제 협력을 통해 남북 평화를 싹 틔우던 공간은 하루아침에 신기루처럼 사라졌고, 평화의 시계는 5년 넘게 멈춰 있다. 기업 성장과 동시에 평화전도사로서의 역할도 충실히 이행했던 입주기업들은 그 사이 하나둘씩 쓰러져갔다.
이들은 정부의 일방적 공단 폐쇄가 위헌이라며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 심판을 청구했으나 5년째 아무런 소식이 없다.
/기획취재팀
※기획취재팀글 : 황성규차장, 공승배, 남국성기자사진 : 조재현기자편집 : 김동철, 박준영차장, 장주석기자그래픽 : 박성현, 성옥희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