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 문헌속 닭갈비의 조상은
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 '자계' 기록
장 바르고 익힌 '닭구이'로 조리법 유사
# 4·19와 연관된 닭갈비 기원설
혁명 당시 물가 폭등… 돼지고기 귀해져
'중앙로 2가 18번지' 닭으로 구이 대체
2005년 춘천시 '공식적' 유래조사 불구
'밀도살 파동' 영향 신빙성 더 높아보여
# 갈비 없는데 왜 이름은 닭갈비
옛 칼럼서 역사성·논리성 '빈명' 지적도
누군가는 '닭고기 야채볶음'이라 주장
소란 뒤로하고 춘천엔 '골목들' 성업중
춘천시내는 물론 외곽지역에도 닭갈비 골목, 닭갈비 거리의 이름이 붙은 곳이 여럿 생겨났고, 조리법도 날로 다양해 지고 있다. 사실 음식 이름에 지역명이 덧대진다는 것은 상당히 영광스러운 일이다.
'원조(元祖)'의 이미지를 사람들에게 지속적으로 각인 시킬 수 있고 이를 통해 음식에 대한 신뢰도를 높여 관광 자원에 포함시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부산 밀면이나 전주 비빔밥처럼 말이다.
# 닭갈비 유래는?
닭갈비를 한자로 바꿔쓰면 닭 '계(鷄)'에 갈빗대 '륵(肋)', '계륵(鷄肋)'이 된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그 단어다.
이 단어는 후한서의 양수전(楊修傳)에서 유래된 고사성어로 유비와 조조가 한중 지역을 놓고 전쟁을 벌일 때 일화에서 비롯됐다. 그리 큰 쓸모는 없지만 버리기는 아까운 사물이나 상황을 비유적으로 표현할 때 쓰인다. 하지만 음식 이름으로 계륵(鷄肋) 또는 닭갈비라는 표현이 나오는 옛 문헌은 찾기 힘들다. 아니 아직까지는 없다.
이전에 보도된 닭갈비 관련 기사들을 찾아보면 닭갈비의 유래는 약 1천400년 전 신라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신라시대에 닭갈비와 유사한 음식이 있었다고 전해지지만 문헌에서는 찾아볼 수 없고 증빙할 자료 또한 없다는 것이 그 주된 내용이다. 문헌도 증빙자료도 없다면 구전됐다는 소리인데 논거 자체가 빈약하다.
누군가 내놓은 추측이 인용에 인용을 반복하면서 정통한 닭갈비의 '음식 문화사'로 변신해 유력한 기원설로 그대로 쓰여지고 있는 것이다.
문헌 속에서 닭갈비와 유사한 음식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 28권(1497년) 등에 나오는 '자계(炙鷄)'가 거의 유일하다고 할 수 있다. 구울 자(炙), 닭 계(鷄) 구운 닭 즉, '닭구이'다.
닭구이는 '음식디미방(飮食知味方·1670년)', '규합총서(閨閤叢書·1809년)',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朝鮮無雙新式料理製法·1924년)' 등 다수의 요리책에서 그 이름을 확인할 수 있다. 각각의 책에는 조리법도 비교적 상세히 소개돼 있는데 대부분의 내용들이 특별히 다르지 않고 '대동소이'하다.
요리 과정만 놓고 보면 닭고기를 불에 구워 익히는 방식이나 일정 시간 양념에 재워둔다는 점에서 닭갈비의 그것과 닮아있다. 특히 장을 바르고 익힌 후 장에 먹는다는 방식까지 유사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또 1450년께 편찬된 종합농서 '포계' 부분에서도 현대의 닭갈비 조리법과 유사한 부분을 찾을 수 있는데 양념만 다를 뿐, 닭을 여러 조각으로 토막을 내 조리하는 방법이나 과정까지 매우 비슷하다.
# 왜 춘천 닭갈비인가
'닭구이'를 '닭갈비'의 먼 조상 정도로 가정해 본다면, 경북 청송지역의 향토음식으로 알려진 '닭불고기'는 '달갈비'의 사촌지간 정도에 위치시켜 두는 것도 그리 무리는 아닐 듯하다. 실제 춘천닭갈비도 초기에는 닭불고기로 불렸다고 하니 어찌보면 사촌 그 이상의 관계였는지도 모르겠다.
춘천닭갈비에 관한 확인되지 않은 설(說)들이 난무하니, 급기야 춘천시청이 춘천닭갈비의 발생에 대한 '유래 제정'을 하고 나섰다. 지난 2005년 2월의 일이다.
당시 춘천시청은 닭갈비 가게 종사자들에 대한 인터뷰 등을 통해 1년여에 걸친 조사를 진행했고, 춘천닭갈비가 생겨난 역사적인 장소로 춘천시 중앙로 2가 18번지(도로명:춘천시 중앙로 59)를 지목하기에 이른다.
춘천 닭갈비 골목과 직선거리로 불과 60~70m 떨어져 있는 곳으로 현재는 5층 빌딩이 들어서 있어 옛 흔적을 찾을 수는 없다.
당시 공터로 남아있던 춘천닭갈비 근원지 터에 춘천시청은 '춘천닭갈비 발생유래 안내'라는 이름의 푯말도 세우는데 지금은 춘천닭갈비와 관련된 어떠한 표시도 찾을 수 없다. 아무튼 공식적(?)인 닭갈비의 기원은 이렇다.
춘천시 중앙로 2가 18번지에서 선술집을 운영하던 김영석씨는 1960년 당시 자신의 음식점에서 막걸리 안주로 돼지갈비를 팔았는데 4·19혁명이 일어나면서 돼지고기를 구하기 힘들어지자 고민 끝에 닭 2마리를 구입해 돼지갈비처럼 양념을 하고 12시간 재워서 숯불에 구워 팔기 시작했는데 이것이 춘천닭갈비의 시작이라는 것이다.
# 닭갈비가 만들어진 것은 4·19혁명 때문?
정말 4·19 혁명이 닭갈비를 탄생시킨 결정적인 이유였을까? 정말이라면 뭔가 극적이고 재미있는 스토리텔링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사실이 맞아 떨어지려면 4·19혁명으로 인해 당시 물가, 특히 돼지고기 가격이 폭등하는 요인이 분명 있어야 한다. 그래야 김영석씨가 돼지고기를 구하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하지만 당시 애석하게도 신문 등 자료들을 찾아보면 1960년 상반기 곡물가격이 물가 상승을 주도했다는 내용은 나오지만 4·19혁명 이후 시기인 하반기 물가는 오히려 안정세를 보이는 것으로 나온다.
그런데 1960년 언저리에 돼지고기와 관련된 흥미로운 사실들이 발견된다. 당시 비위생적인 돼지고기가 시중에 유통되면서 이로 인한 각종 사건·사고가 발생된 것. 실제 1960년을 전후해서 밀도살한 돼지고기를 먹고 식중독에 걸리거나 사망하는 사고가 빈번하게 발생했다.
검인을 조작해 정식으로 도살한 것처럼 속이는 사람까지 나타나면서 피해가 확산되자 당시 당국은 밀도살한 돼지고기 단속에 대대적으로 나서기도 했다.
이러한 사실들을 종합해 보면 춘천에서 닭갈비가 태동하게 된 이유가 실은 '4·19혁명'으로 인한 물가상승과 이로 인한 돼지고기 가격상승 또는 품귀현상이라기 보다는 '돼지고기 파동' 때문은 아니었을지 생각해 볼 필요도 있을 것 같다.
이처럼 1960년 사건·사고로 인해 돼지고기 공포증이 생겨났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돼지고기를 멀리하는 사회적인 분위기가 만들어졌고, 닭고기가 돼지고기의 지위를 승계했을 개연성은 모든 정황상 충분하다.
# 닭갈비에는 닭갈비가 없다?
닭갈비와 관련된 자료를 찾다가 재미있는 글 하나를 발견했다. '닭갈비'라는 작명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는 1995년 어느 한 신문 칼럼이 그것이다.
글쓴이는 닭갈비라는 이름에 최소한 역사성도, 논리성도, 과학성도 담겨 있지 않다고 비난했다. 구이인지 찜인지도 분명히 하지 않은 채 그저 '갈비'의 좋은 이미지만을 도용했다는 것이다. 한발 더 나아가 닭갈비는 기존의 역사, 언어, 과학적 지식을 무시했다고 일갈한다.
그리고 글쓴이는 능력에 어울리지 않는 자리를 빈위(貧位), 이름을 빈명(貧名)이라고 한다는 친절한 설명을 곁들이고는 이제 '빈명'은 버리고 제 이름을 찾으라고 권유한다. 이 글은 닭갈비들에게 '닭 허벅다리 구이'라는 이름으로 만족하라는 조언을 남기며 매조지 된다.
몇 해 전에는 어느 유명 음식 칼럼니스트가 TV 프로그램에 출연해 닭갈비에는 우리의 '욕망이 투영돼 있다'는 말과 함께 '닭고기 야채볶음'이라고 불러야 한다고 한 적도 있다. 돈은 없어도 적어도 갈비를 먹었다는 위로를 받을 수 있는 음식이라는 설명도 곁들였다.
그의 말대로라면 김치는 '배추 고춧가루 양념 무침', 감자탕은 '돼지뼈 감자전골'이라고 부르는 것이 옳다. 아무튼 음식에 덧씌워진 인간의 욕망과 그로 인해 생겨나는 음식 사이의 서열이 우스꽝스럽다는 생각이 든다.
닭갈비는 닭의 갈비로 만들어진 음식이 아니다. 100%라고는 말할 수 없지만 결론적으로 닭갈비에는 닭갈비가 없다. 그렇다고 해도 이 정도로 비난을 받을 만큼의 시빗거리를 이 음식이 만들어 냈다는 말인가.
느닷없이 나타난 해부학적 분석으로 인해 살벌하게 상처를 입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오히려 갈비라는 단어에 부(富)의 이미지를 탑처럼 쌓아 놓은 사람들의 치기 어린 분석과 글쓰기 때문에 벌어진 일은 아닐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런 소동들을 뒤로하고 명동 닭갈비 골목, 낙원동 닭갈비 골목, 온의 닭갈비 거리, 소양댐 닭갈비 거리에서 춘천닭갈비는 여전히 성업 중이다.
한편 춘천시는 지난해 코로나19 확산에 따라 온택트 방식으로 치러진 '막국수 닭갈비 축제'가 산업적 가치를 높일 수 있는 시도였다고 평가하고 올해 축제도 온라인 플랫폼을 지속적으로 활용하는 한편 오프라인에서도 춘천시 전역을 축제의 장으로 활용한다는 계획이다.
/강원일보=오석기기자, 사진/강원일보 제공, 그래픽/성옥희기자 okie@kyeongin.com/클립아트코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