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라진 '숭의야구장 추억' 잊지 못해… 시즌권 끊어 항상 경기장行
'현대' 야반도주에 한때 보지 않다가… 'SK' 악바리 근성으로 '힐링'
'시장내 야구박물관' 모기업에 제안… 직접 수집·기증물품으로 꾸며
지역 정체성 담은 'SSG 랜더스' 팬들과 적극 소통하며 성장하길

1920년 경인선 기차를 타고 서울로 통학했던 인천 학생들을 중심으로 구성된 인천 최초의 야구단 한용단(漢勇團)에서부터 지금의 인천 연고 프로야구팀 SSG 랜더스에 이르기까지, 야구는 오랜 세월 인천시민 곁에 있던 대표적인 스포츠 종목이다.
웃터골경기장(인천공설운동장), 숭의야구장, 문학야구장 등에서 경기를 펼치는 선수들의 뒤에는 언제나 이들을 응원하는 인천시민이 있었다.
인천 미추홀구에 있는 신기시장의 김종린(66) 상인회장은 인천 야구의 오랜 팬이다. 그는 인천에서 홈 경기가 열리면 어김없이 구장을 찾는다고 한다. 김 회장은 성인이 돼 고향인 인천에 다시 돌아오면서 야구의 매력에 푹 빠졌다.
그는 "인천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낸 후 교직 생활을 하시는 아버지를 따라 다른 지역에서 10여년 동안 살다가 성인이 돼서 고향으로 돌아왔다"며 "어렸을 때부터 스포츠를 좋아했는데, 고향에서 홀로서기를 하는 동안 인천고 등 지역 고교야구가 전국대회에서 활약하는 것을 라디오 중계를 통해 들으면서 많은 힘을 얻었다"고 말했다.

김 회장에게 1982년은 잊을 수 없는 해다. 신기시장에서 지금의 '찬수네 방앗간'을 운영하기 시작했고, 큰아들이 태어났다. 그리고 그해 국내 프로야구가 출범했다. 우리나라에 프로야구가 출범한다는 소식을 듣고 김 회장은 깜짝 놀랐다고 한다.
그는 "미국의 메이저리그처럼 우리나라에서 프로야구를 한다는 것은 생각지도 못한 일이어서 흥분됐다"며 "인천을 연고지로 하는 팀에 대해서도 기대감이 컸다"고 했다.
인천과 경기·강원을 아우르는 '삼미 슈퍼스타즈'가 창단하면서 인천의 프로야구 역사가 시작됐다. 하지만 김 회장의 기대와는 달리 삼미 슈퍼스타즈는 리그의 대표적인 약팀이었다.
1985년 구단을 인수해 창단한 '청보 핀토스'도 하위권을 벗어나지는 못했다. 뒤를 이은 '태평양 돌핀스'는 플레이오프(1989년)와 한국시리즈(1994년)에 진출했으나 정상의 자리엔 서지 못했다.
그래도 김 회장의 인천 야구 사랑은 멈추지 않았다. 경기가 있는 날이면 시장 상인들과 함께 TV 중계를 보며 고기를 안주 삼아 술잔을 기울이는 것이 삶의 즐거움이 됐다고 한다. 팀이 이기면 함께 기뻐하고, 지면 푸념도 하면서 인천 야구에 대한 애정은 갈수록 커졌다.
지금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 숭의야구장을 아이들과 소풍 가는 기분으로 즐겨 찾았던 옛 추억을 여전히 잊지 못한다는 그는 "당시엔 형편이 어려워 가끔 아들과 딸을 데리고 경기장에 갔다"며 "어린 시절의 기억 때문인지 아들과 딸도 나만큼 야구를 좋아한다. 지금은 시즌권을 끊어 홈 경기가 있는 날이면 항상 경기장으로 응원을 간다"고 웃으며 말했다.
태평양의 뒤를 이어 창단한 '현대 유니콘스'는 인천 프로야구의 부흥기를 이끌었다. 창단 첫해인 1996년 한국시리즈에 진출했고, 1998년 인천 연고 프로야구팀 중 처음으로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

김 회장은 "삼미와 청보 시절 때에는 패배가 익숙했기 때문에 경기에 자주 이기는 현대가 처음에는 낯설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기대감이 커졌다"며 "한국시리즈까지 우승하니 그만큼 구단에 대한 애정도 컸다. 지금도 아내는 당시 감독이었던 김재박 감독을 제일 좋아한다"고 했다.
하지만 2000년 현대 유니콘스가 서울을 연고로 하겠다며 그야말로 '야반도주'하면서 인천 야구팬들은 한순간에 응원팀을 잃어버렸다. 현대 유니콘스에 대한 애정은 실망감과 배신감으로 되돌아왔다. 김 회장도 한동안 프로야구를 보지 않았고, 지인 중에서는 이때 프로야구에 완전히 등을 돌린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현대 유니콘스에 이어 2000년 창단한 SK 와이번스는 김 회장이 역대 인천 연고 프로야구팀 중 가장 좋아하는 구단이다.
그는 "성실한 마음으로 최선을 다한다는 게 좌우명인데, SK 와이번스의 경기를 볼 때마다 '악바리' 근성으로 항상 최선을 다한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며 "야구는 인생과 닮아 한 게임을 하다 보면 반드시 2~3번의 기회가 찾아오는데, 포기하지 않고 기회를 잡아 이기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배운 점이 많았다"고 했다.
김 회장의 응원에 보답이라도 하듯 SK 와이번스는 4차례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하는 등 명문 구단으로 자리 잡았다.

김 회장이 있는 신기시장에는 특별한 곳이 있다. 인천 야구의 역사가 담긴 '야구 박물관'이다. 야구 박물관에서는 '한용단'부터 시작하는 인천 야구 100년사와 역대 인천 연고 프로야구팀의 유니폼과 사인볼 등을 볼 수 있다.
2013년 SK 와이번스의 모기업인 SK텔레콤과 신기시장이 전통시장 활성화를 위한 업무협약을 맺게 됐는데, 야구를 좋아하는 김 회장이 '인천 야구와 관련한 곳을 만들고 싶다'고 제안한 것이 야구 박물관의 시작이었다고 한다.
SK텔레콤이 야구 박물관에 필요한 장식장 등을 지원했고, 김 회장이 직접 수집하거나 지인과 구단으로부터 기증받은 물품으로 박물관을 꾸몄다.
그는 "오랜 야구 역사를 자랑하는 인천에 야구 박물관이 없다는 게 아쉬웠었다"며 "매년 전시 물품을 추가해 야구 박물관을 조금씩 확장해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시즌 9위라는 아쉬운 성적표를 남긴 SK 와이번스. 새 시즌을 기다리던 김 회장에게 신세계그룹의 SK 와이번스 인수 소식은 충격, 그 자체였다. 구단 사정이 어려웠다면 예상이라도 했겠지만, 운영을 잘하고 있던 곳이 매각한다고 하니 날벼락을 맞은 기분이었다고 한다.
가장 애정을 가지고 응원했던 SK 와이번스가 사라진다는 실망감과 함께 혹시나 '새로운 구단이 연고지를 옮겨 인천을 떠나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도 있었다. 현대 유니콘스가 인천 야구팬들에게 남긴 일종의 '트라우마'였던 것이다.
그의 우려와 달리 신세계그룹은 인천을 연고지로 이어가며 지역 특색을 살려 야구단 이름을 '랜더스(LANDERS)'로 정했다. 여기엔 인천국제공항·인천항 등이 있는 '관문도시'로서 '상륙' 또는 '착륙'의 의미가 담겼다고 한다.

김 회장은 "SSG 랜더스 구단주인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이 야구를 좋아한다고 알고 있어 구단에 애정을 가지고 운영할 거라는 게 그나마 위안이 됐다"며 "추신수 선수를 영입하는 등 구단이 적극적으로 움직이는 모습을 지켜보니 결국 응원하게 됐다"고 했다.
김 회장은 앞으로 SSG 랜더스가 성적뿐 아니라 지역 사회, 팬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했으면 하는 바람을 전했다.
그는 "프로야구단인 만큼 성적으로 팬들의 응원에 보답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SSG 랜더스 만의 색을 가진 야구를 보여줬으면 한다"며 "팀 이름에서도 지역 정체성을 담기 위해 노력했듯이 지역사회, 야구팬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하면서 함께 성장해나갔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글/김태양기자 ksun@kyeongin.com, 사진/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김종린 회장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