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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저가 트림 기준. 그래픽/성옥희기자 okie@kyeongin.com/클립아트코리아

1991년부터 배기량만 과세 기준 적용
가격 무관해 비싼 전기·수입차 '이득'
재산세 성격 불구 '역진 현상' 나타나
내연기관車 판매중단 앞둬 개편 필요
국내 '개정안' 발의됐으나 통과 못해
"누군가 '증세' 될 수 있어 쉽지 않아"


현대차 로고
가격이 3천만원인 차량과 6천만원인 차량. 같은 연식의 차량이라고 했을 때 어떤 차량의 자동차세가 더 많이 나올까. 정답은 '알 수 없다'다. 자동차세는 차량 가격과 상관없이 책정되기 때문이다.

자동차 소유자에게 부과하는 자동차세의 과세 기준은 엔진의 배기량이다. 차량 가격과 관계없이 배기량이 클수록 더 많은 자동차세가 부과된다. 현 자동차세 과세 기준이 '비합리적'이라는 비판이 끊이지 않고 있다.

과거엔 자동차 배기량이 자동차 가격과 비례하는 경향이 강했기 때문에 큰 논란이 없었으나, 최근 전기차·수소차 등 배기량이 '0'인 차량이 급속도로 증가하면서 차량 가격과 배기량의 상관관계가 깨지고 있다.

1억원이 넘는 수입 전기차는 배기량이 없어 10만원대의 자동차세를 내고, 1천600cc의 배기량을 가진 국산 자동차는 20만원이 넘는 자동차세를 내는 게 현실이다.

# 30년 된 배기량 기준

한국지방세연구원에 따르면 우리나라 자동차세는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인 1921년 도입된 이후 지금껏 이어지고 있다.

과세 기준에 엔진 배기량이 포함된 건 1967년부터다. 비영업용 승용차의 경우 차량 크기와 엔진 배기량, 엔진 피스톤 숫자 등을 종합해 세금을 부과했다. 피스톤 수가 적고 차량 크기가 작을수록, 배기량이 적을수록 더 낮은 세금을 냈다.

자동차세 과세 기준을 엔진 배기량만으로 삼은 건 1991년부터다. '1천cc 이하', '1천600cc 이하', '2천cc 이하', '2천500cc 이하', '3천cc 이하', '3천cc 초과', '그 밖의 승용자동차' 등으로 구분해 세금이 책정됐다.

이후 과세 구간이 통합돼 '1천cc 이하', '1천600cc 이하', '1천600cc 초과' 등으로 바뀌었으나 배기량이 기준이라는 틀은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다.

'내연기관 차량=자동차'라는 등식이 성립될 수 있었던 시기에는 이 과세 기준에 대해 이견이 없을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은 내연기관이 없는 전기차와 수소차가 큰 폭으로 늘고 있다. 정부도 친환경 차량 확대를 위해 팔을 걷어붙이고 있다.

하지만 자동차세 체계에서 만큼은 '그 밖의 자동차'로, 어디에도 끼지 못하는 처지다. 자동차세 부과 기준을 현실에 맞게 변경해야 한다는 주장이 커지는 이유다.

# 형평성에 어긋나

내연기관 엔진을 가진 현대자동차 아반떼의 경우, 차량 가격은 1천570만~2천500만원 수준이다. 배기량은 1천596cc이며, 과세 기준으로 보면 '1천600cc 이하'에 해당한다. 아반떼 소유주는 연간 29만원의 자동차세(교육세 포함)를 낸다.

최근 높은 인기를 얻고 있는 테슬라는 어떨까. 상위 모델인 '모델X' 가격은 1억1천599만~1억3천599만원이다. 아반떼와 비교하면 차량 가격이 8배 정도 비싸다. 하지만 모델X 소유주가 내야 하는 자동차세는 13만원에 불과하다. 전기차는 배기량이 없어 '그 밖의 자동차'로 분류되기 때문이다.

전기차 가격은 대부분 내연기관 자동차보다 비싸다. 최근 현대차가 출시한 아이오닉5 가격도 5천만원 안팎이다. 역시 아반떼보다 2배 이상 비싸지만 내야 하는 자동차세는 적다.

자동차세는 자동차를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내는 일종의 재산세 성격을 가진다. 많은 재산을 가질수록 세금을 많이 내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자동차세는 배기량만을 과세 기준으로 하고 있어 더 적은 재산을 갖고 있어도 더 많은 세금을 내야 하는 '역진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정부는 전기차와 수소차 등 친환경차 보급에 앞장서고 있다. 충전시설 등 인프라 확충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정부 정책과 자동차 공급·수요 추세를 보면 전기차와 수소차 등 친환경차가 큰 폭으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유럽 일부 국가에서는 2030년부터 내연기관 차량 판매를 중지한다는 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우리나라도 시기의 차이가 있을 뿐 향후 내연기관 차량 판매가 중단될 것으로 예상된다. 자동차세 과세 체계를 새롭게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는 이유다.

전기차뿐 아니라 수입차의 확대도 형평성 논란에 가세한다. 같은 배기량임에도 수입차 대부분이 국산차보다 비싸다. 6천만원대의 벤츠 승용차와 3천만원대의 현대차가 배기량이 동일하다는 이유로 같은 자동차세를 내고 있기 때문이다.

2019년 차량을 기준으로 수입차 가격은 국산차에 비해 1.82배 비쌌으나, 배기량은 1.06배에 그치는 것으로 분석됐다. 수입차 비율은 점차 늘어 연간 판매되는 자동차의 약 10%에 달한다. 이 때문에 "국산차 구매자만 왜 상대적으로 더 많은 세금을 내야 하느냐"는 불만이 커지고 있다.

# 어떻게 바꿔야 하나

미국은 주(州)마다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대체로 차량의 가치에 대해 세금을 부과하고 있다. 캘리포니아주는 차량의 가치에 따라 차등 부과하고 있고, 미시간주는 차량의 권장소비가격에 기초해 과세한다.

일부 주는 자동차세를 부과하지 않고 있기도 하다. 애리조나주와 콜로라도주 역시 세부적 내용은 다르나, 차량의 가치가 세금 부과의 기준이 되고 있다.

영국은 자동차세를 배기가스 배출량에 따라 부과하고 있다. 이에 따라 연비가 좋은 차량은 적은 세금을, 연비가 좋지 않은 차량은 많은 세금을 내야 한다. 독일은 실린더 용량과 유해물질 배출량을 조합해 세금을 부과한다.

국내에서도 자동차세 개선을 위한 연구가 꾸준히 이뤄졌다. 국회에서 관련법 개정안이 발의되기도 했으나 통과되지 못했다. 전문가들은 현행 배기량 기준 부과 방식을 차량 가치 또는 환경 기준을 토대로 바꿔야 한다고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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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필헌 한국지방세연구원 소득소비세제연구실장은 "배기량 기준의 자동차세가 불합리하다는 점은 대부분 공감하고 있지만, 법 개정이 누군가에게는 '증세'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쉽지 않은 것 같다"고 했다.

이어 "많은 이가 비합리적이라고 생각하는 배기량 체제를 벗어나는 것이 중요하다"며 "가격, 환경 지표 등 여러 방식을 검토하고 공감대를 이룰 수 있는 합리적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지금이라도 관련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했다.

/정운기자 jw33@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