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독일 오가며 '1인 다역' 행보
연세대 객원교수·라디오 프로 출연 계획도
클랑아카데미 페스티벌 CEO '공연 변화'
함부르크 예술 미디어 경영학과 석사과정
# 바로크 레퍼토리는 '인생의 열정'
원주시향과 협연 무대에 두 악기 독주회도
연주법이 달라도 예술 표현하는 근원 같아
챙겨야 할 일들 많아도 매일 피아노에 앉아
피아니스트 안종도(35)씨를 처음 만난 건 2013년 1월이었다. 2012년 말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롱 티보 크레스팽 콩쿠르'에서 우승(1위 없는 2위) 후 방학을 맞아 귀국해 인천 부평의 본가에서 모처럼 쉬고 있을 때였다.
롱 티보 크레스팽 콩쿠르에서 '그랑프리'와 함께 '최고 독주자상', '최고 현대음악 연주상'도 거머쥐며 화제의 중심에 섰던 안씨는 당시 기자와 인터뷰에서 "바로크에서 현대까지 연주 레퍼토리를 넓히고 싶다"고 포부를 밝힌 바 있다.
당시 함부르크 국립음대 연주학 박사과정 졸업까지 1년을 남겨두고 있었던 안씨는 연주 활동과 함께 학교 졸업 후 현지에서 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쳤다.
수년 후 연세대 피아노과 객원교수로도 활동하며 국내 활동을 늘린 안씨가 다시 화제의 중심에 섰다. 안씨는 지난 4월 말 서울에서 하프시코드와 피아노를 한 무대에서 선보이는 '하프시코드, 피아노 리사이틀'을 열었다.
피아노의 전신(前身)인 하프시코드는 16~18세기 바로크 시기에 중심이 되는 악기였다. 쳄발로(이탈리아어)라고도 하는 이 악기는 건반을 누르는 건 현대 피아노와 같지만 소리를 내는 원리는 전혀 다르다. 피아노는 해머가 현을 때려서 소리를 내지만 하프시코드는 현을 뜯어서 소리를 낸다. 기타나 하프를 떠올리면 된다.
안씨는 이번 연주회에서 바로크 시기에 각각 프랑스와 독일에서 활동한 쿠프랭과 프로베르거의 곡은 하프시코드로, 모차르트와 슈만의 곡은 피아노로 연주하는 이색 무대를 선보였다. 두 악기에 대한 완벽한 이해 없이는 불가능한 무대였다.
또한, 독주회 1주일 전에는 '2021 교향악축제'에서도 원주시립교향악단(지휘·김광현)과 하프시코드 협주곡을 연주했다. 교향악축제 역사상 하프시코드가 협연 악기로 등장한 건 이날이 처음이었다.
안씨의 최근 연주 활동은 그동안의 노력을 고스란히 드러내 주는 것이었다. 인터뷰를 통해 인천 출신 피아니스트의 노력과 행보를 알리고 싶어서 연락을 취했고, 연주자 또한 8년 만의 인터뷰에 흔쾌히 응했다.
근황을 묻자 "현재 피아니스트이자 학생들을 지도하는 선생님으로서, 음악 칼럼니스트로서, 함부르크에서 제가 설립해 운영하는 북독일 클랑아카데미 페스티벌 CEO로서, 또 이번에 새로 시작한 함부르크 국립 예술 미디어 경영학과 석사생으로서 챙겨야 할 일들이 많다"고 소개했다.
최근 연주회를 화제로 삼았다. 바로크 레퍼토리에 대한 안씨의 견해가 궁금했다.
"제게 있어 바로크 레퍼토리는 큰 즐거움이자 행복, 또 인생의 열정인 것 같아요. 그러니 해당 시기 작품에 몰두하는 시간 또한 많아졌고요.
모차르트와 베토벤을 비롯해 이후 낭만주의 시기 작곡가의 작품들 못지 않은 예술성을 갖춘 작품들이 많습니다. 다른 각도의 예술을 보여주는 작품들로, 또 다른 즐거움과 아름다움을 찾을 수 있다는 게 매력적이죠. 바로크 시대 레퍼토리가 그 좋은 예인거 같아요."
바로크 시기 작품에 대한 관심과 연주는 자연스럽게 하프시코드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안씨는 프랑스 바로크 음악을 현대 피아노로 연주하다가 난관에 부딪혔단다. 바로크 시기 작곡가의 의도와 달리, 표현이나 감정을 과장하고 있진 않은지 되묻게 됐다는 거였다. 그로 인해, 3년 전 하프시코드를 전공했다.
"독일에 계신 은사님께 수업을 받으며 하프시코드의 아름다움에 빠져들었고, 문득 이런 생각도 했어요. '아, 내가 10년 전에 이 악기를 알았다면 아예 하프시코드 연주자가 되었을텐데'라고 말이죠."(웃음)
'하프시코드, 피아노 리사이틀'을 통해 청중에게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도 들어봤다.
"다른 두 악기가 한 무대에 오르고 제가 번갈아 연주하는 형식이었어요. 저는 연주를 통해 한 사람이 두 악기를 다룬다는 1차원적인 메시지를 넘어 악기가 다르고, 악기가 요구하는 연주법이 달라도 그 예술을 표현하는 근원은 같다는 걸 전하고 싶었습니다."
하프시코드를 통해 바로크 레퍼토리에 대한 애정을 보여줬다면, 함부르크에 세운 '북독일 클랑아카데미'는 컨템포러리를 비롯해 다양성에 대한 안씨의 애착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북독일 클랑아카데미에선 연주자, 미술가, 역사가, 현대무용가 등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와 함께 바로크부터 현대 창작 공연까지 진행하고 있습니다.
독일 대표 공연장 중 하나인 함부르크 엘브필하모니를 비롯해 수백 년 역사를 자랑하는 교회와 세계 최고의 함부르크 예술박물관, 또한 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한 옛 항구의 창고 지대 등 함부르크의 다양한 장소에서 공연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간 이어진 정형화된 공연 관람 형식에서 탈피해 다가올 새로운 공연의 패러다임을 제시하는 프로젝트들을 진행 중입니다."
인천에서 태어난 안씨는 네 살이 되던 해에 학원에서 피아노를 처음 접했으며, 옥련초등학교에 다니던 12세 때 이형천씨를 만났다. 인천예고를 비롯해 대학 등에서 후학을 지도한 이씨는 현재 천안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선생님을 만나면서 피아노를 더욱 깊게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그분으로 인해 연주자의 코스인 예원학교를 거쳐 서울예고에 입학했고요."
고교 2학년 때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로 유학을 간 안씨는 함부르크 국립음대에서 수학하면서 활동 본거지를 함부르크로 옮겼다.
"고향 인천과 현재 살고 있는 함부르크 모두 항구 도시예요. 겨울 바다의 거친 바람, 여름 바다에서 느껴지는 특유의 향, 또 항구 도시 특유의 국제적인 오픈 마인드가 저의 예술 활동에 중요한 영감을 제공하는 걸 느껴요. 그런 부분을 두 도시에서 접할 수 있어서 감사한 마음입니다."
작품 해석과 연주 시 중요하게 여기는 부분에 대해 질문했다. 악기를 배우는 학생, 음악 애호가들과 함께 듣고 싶었던 부분이었다.
"음악은 한 시대의 총체적 결과물이 소리로 나타나는 하나의 반향이라고 생각해요. 작품에는 작곡가 개인의 예술성만이 아닌 그에게 영감을 준 당시의 역사, 문화, 정치, 경제, 하다못해 기후까지 많은 것들이 스며들어 있습니다.
저 개인의 해석 전에 이것들을 최대한 많이 조사하고 연구하려고 합니다. 그것을 토대로 제 영혼이 담긴 소리가 나올 때까지 연습의 연습을 거듭하는 것이겠죠. 그리고 이것이 해석의 마무리 작업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향후 계획에 대해 묻자 그는 "국내 몇몇 도시에서 연주가 예정돼 있고, 6월에는 한국방송 클래식 FM의 한 프로그램에 매주 화요일마다 출연해 연주를 들려드릴 예정입니다. 그 외에 6월까지 연세대에서 학생들 지도에 힘을 쏟을 예정이며, 7월 독일로 돌아가서 북독일 클랑아카데미 활동을 이어가고, 미디어 예술 경영대 수업도 참가해야 하고요"라고 밝혔다.
끝으로 안씨는 "챙겨야 할 일들이 많지만, 무슨 일이 있어도 피아노에 하루에 한 번 이상은 앉아서 연습하고 있다"면서 "많은 일들을 처리하면서 방황도 하고 거기서 얻는 깨달음도 있을 거라 생각되는데, 다음 고향에 올 땐 조금 더 발전된 모습이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글/김영준기자 kyj@kyeongin.com, 사진/예술의전당·더브릿지컴퍼니·강태욱씨 제공
■ 피아니스트 안종도는
△ 인천에서 태어났으며, 4세 때 학원에서 피아노를 처음 접했다.
△ 서울예고 재학 중 유학을 떠나 잘츠부르크 모차르테움 국립음대에서 학사, 석사 및 대학원 과정 졸업 후, 독일 함부르크 국립음대 연주학 박사과정을 졸업했다.
△ 세계 7대 콩쿠르 중 하나인 '2012 롱 티보 크래스팽 콩쿠르'에서 1위 없는 2위를 차지했다.
△ 국내외 정상급 오케스트라들과 협연했으며, 유럽 주요 공연장 무대에 섰다.
△ 함부르크 스타인웨이 본사에서 스카를라티와 라모의 곡을 녹음해 음반을 냈으며, 2018년 피아노 소리 연구를 위한 북독일 클랑아카데미를 설립해 운영하고 있다.
△ 한류문화공헌 국회 문화외교위원장상, 서울음악상, 대한민국창조문화예술대상 음악부분 대상 등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