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녹색 잎으로 갈아 입었던 봄날도 잠시. 벌써 헤어져야 할 시간이 온 것 같다. 걸어 다니면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혀 벌써 여름을 기다리는 때가 왔다. 하지만 여전히 걷는 것도, 보는 것도 즐겁다. 마음 깊이 행복을 선사하고 있는 유월이다.
수원 팔달문 행궁로 일대는 어릴 적 추억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학교 앞 문방구도 그대로 있고, 책방들도 여전하다. 골목 구석구석은 옛 추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높은 건물도 없다. 기껏해야 3층 정도다. 이십여년 전만 해도 젊은이들의 로데오 거리로 불렸던 이 일대는 최근 관광객들에게는 여행지로, 토박이들에게는 추억의 장소로 자리 잡고 있다.
수원 팔달문(위)과 화성어차. /경인일보DB
#행리단길 따라 걷는 골목 투어
서울 '경리단길'처럼 예쁜 카페와 맛집 등이 몰려 있어서 행궁동을 합쳐 '행리단길'이라 불린다.
어릴 적 건물들이 그대로 남아 있다. 마치 드라마 '응답하라'에 나온 것처럼 옛 추억이 그대로 있어 마음 한구석이 따뜻해진다. 내가 걸었던 길. 초등학교 수업을 마치고 뛰놀던 골목을 다시 걷는 기분은 오랜 시절 그때 그대로다.
몇 년 전 수원 출신 연예인이 이곳을 다녀간 방송 프로그램을 보고 깜짝 놀랐다. 수원 팔달산 바로 밑 화성행궁부터 남창 초교까지 있던 그 골목길이 그대로이기 때문이다.
어릴 적 친구들과 다녔던 길이다. 이제는 그런 동네 꼬마 녀석들을 보니 세월이 빠르게 느껴진다. 바뀐 거라면 다양한 공방과 카페가 어우러져 모여 있는 것이 특징이다.
서울 경리단길처럼 카페·맛집 몰린 행궁동 어릴적 건물 고스란히·벽화·공방 하모니
행궁동 벽화 골목. /경인일보DB
예전 건물들을 고쳐 만든 공방거리는 물론, 알록달록한 색과 나름대로 인테리어를 이용한 카페까지. 화려하지도 않다. 거창하지도 않다. 조그만 골목에 조그만 가게들이다.
거기에 골목마다 그려진 벽화까지 보면 이곳이 수원이 맞는지 의아하기도 하다. 코로나19로 다들 지쳐있는 지금 그래도 많은 이들이 이곳을 찾고 있다. 팔짱을 끼고 이곳을 찾은 연인은 물론, 아이들과 함께 온 가족들까지. 그들 나름대로 각기 다른 이유로 이곳을 찾았겠지만 모든 이들의 얼굴에는 행복이 가득하다.
#노포집 찾아 떠나는 수원 남문 인근 맛집
예전 문헌에 나왔던 '노포집'은 이젠 '오래된 맛집'의 의미로 통용되고 있다. 수원 팔달문을 기준으로 노포집을 꼽으라면 셀 수 없이 많다. 그래도 이 동네 좀 다녀봤다고 몇 군데 간단하게 소개해 보려 한다.
팔달산을 오르는 길에 위치한 수원 시골집 우렁이 쌈밥집은 말 그대로 시골집 같다. 정확히 몇 년 됐는지는 모르겠지만, 암튼 오래됐다.
우렁쌈밥에 더해 맵게 만든 제육쌈밥으로 업그레이드 시키면 사람들이 굳이 왜 이 집을 찾아오는지 알 수 있다. 반찬으로 나오는 고등어조림에 마른 김, 그리고 방금 만든 것 같은 두부까지 먹으면 최고다.
지동시장 근처 순대곱창타운 또한 추억이 가득한 곳이다. 어릴 적 부모님께 용돈 받아 친구들과 함께 가면 서너 명이 단돈 1만~2만원에 배부르게 먹곤 했다. 워낙 가게들이 많으니 알아서 잘 찾아 맘에 드는 곳에 앉으면 된다.
추억의 음식 하면 역시 떡볶이다. 특히나 남문떡볶이는 예전 오래된 백화점 바로 앞에 포장마차 서너 군데에서 동시에 팔았던 기억이 있다. 가래떡으로 만든 남문떡볶이는 떡도 굵고 맵다. 그 맛을 다시 느끼고 싶다면 인터넷에서 '남문떡볶이'를 검색해 보면 맛볼 수 있다.
팔달문 주변 쌈밥집·떡볶이 등 곳곳 노포 매스컴 여러 번 소개된 '통닭골목' 유명세
수원지동시장. /경인일보DB
수원천변 일대 안내판. /경인일보DB
수원의 3대 냉동삼겹살집은 모두 이 근처에 위치해 있다. 특히나 동흥식당은 냉동삼겹살과 육개장으로 유명하다. 주인 아주머니께서 생삼겹살을 오래 된 냉장고 2층 냉동고에 급냉시켜 만든다. 이 집 냉동삼겹살의 특징은 은박지 위에 구워 먹는 것으로 옛 추억이 가득하다. 육개장도 꼭 맛볼 만하니 추천해 본다.
수원만두는 동흥식당 바로 옆에 있다. 화교 분들이 운영하는 곳으로 짜장, 짬뽕이 없는 특이한 중국음식 전문점이다. 다양한 것을 맛봤지만 역시 군만두가 최고다. 다른 메뉴는 몰라도 군만두만큼은 대한민국 최고로 인정하고 싶다.
수원에서 곱창 하면 바로 입주집을 빼놓을 수 없다. 오래된 노포집으로 '곱창구이란 이런 거다'를 경험해 보고 싶다면 이 집에 꼭 가보길 바란다.
역시 수원 남문, 그리고 종로 근처를 말하면 통닭 골목을 빼놓을 수 없다. 너무 많은 유명한 통닭, 치킨집들이 있어 하나하나 열거 하기가 힘들다. 진미, 용성, 매향 통닭집 등 오래된 통닭집들이 즐비하다. 요즘은 영화 '극한직업'에서 소개된 수원왕갈비통닭이 대세로 떠올라 색다른 맛을 볼 수 있다.
#달빛 아래 거니는 야간 화성행궁
화성행궁 야간개장 모습 /수원문화재단 제공
화성행궁은 마지막으로 소개해 주고 싶었다. 핫플 중의 핫스팟이라고 할 수 있지만 약간 뒤로 빼서 소개해 주고 싶은 곳이다.
왜일까. 워낙 유명하기도 하지만 동네 한 바퀴 다 돌아보고 맛집에 들러 뭐 좀 먹고 배부르다 싶으면 꼭 들러보라는 의미다. 날이 더워지면 걷기도 귀찮다. 하지만 6월의 늦은 저녁 시원한 바람에 이끌려 화성행궁을 가볼 것을 추천해 본다.
수원 화성행궁은 지난달 1일을 시작으로 오는 10월까지 야간에도 운영된다. 최근 한국관광 100선에 소개될 정도로 명소로 자리매김했다. 내 어릴 적 이곳은 역사가 깊었던 신풍초등학교 자리였다. 지금은 조선 정조시대 화성행궁을 재연한 곳이 됐다.
핫스팟 화성행궁 10월까지 야간개장 주목 성벽길·팔달산서 보는 구도심 야경도 추천
화성행궁 야간개장 모습 /수원문화재단 제공
역시나 코로나에도 불구하고 일상에 지친 이들의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다. 도심 속 아름다운 궁궐의 야경을 감상할 수 있는 곳으로 이미 유명세를 타고 있다. 최근에는 비대면을 위해 QR코드를 통한 스마트 매표소가 눈길을 끌고 있다.
화성행궁을 돌아봤다면 인근 성벽을 따라 걷는 길도 추천할 만하다.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걷는 성벽 돌담길은 한여름이 다가오기 전 모두에게 큰 추억을 선물해 준다. 이 밖에 근처 서문과 동문에는 다양한 볼거리도 많다. 혹시 시간이 허락된다면 팔달산에 올라 수원 구도심의 야경도 즐겨볼 것을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