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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상 수상자 엄다현씨의 편지

21년만에 '그녀'에게 보내는 반성문

음...어떻게 운을 떼어야할지 모르겠습니다...항상 제 곁에 계시며, 저의 편이 되어주시는 '그녀'. 제게 고맙기만 한 존재

남은 평생을 그녀를 위해 살아도 아깝지 않고 오히려 부족하다고만 느껴집니다. 그런 그녀를 위해 이 자리를 빌려 마음을 전합니다.

어렸을 적에는 항상 친구를 대상으로 편지를 써왔는데, 이렇게 '당신'만을 위해 편지를 쓰려니 어색하면서 동시에 복이 매어옵니다.

어렸을 적, 학교에서 수학여행만 가면 당신께서 짐을 싸 주셨던게 기억납니다. 항상 비밀리에 두장가량의 편지를 써서 수건 사이에 돌돌 말아 숨겨놓으셨지요. 고작 이틀 못보는건데 당신께서는 왜 그리도 아쉬워하는지, 왜 항상 출발전에 나를 꼭 껴안으셨는지 그때는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사실 숨겨놓은 편지를 찾고, 그 편지를 친구들과 함께 큰소리로 읽으면 얼마나 어깨가 으쓱했는지 모르지만 당신께는 편지 같은거 부끄럽고 애 같으니까 쓰지 말라 투정부렸었지요. 

지금 생각해보면 참 후회되는 행동이 많습니다. 어린 마음에 친구들에게 잘 보이고 싶어 예쁘게 머리를 땋아 달라 했지만, 완성된 머리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탓에 당신께 울며불며 소리를 지른적도 있지요. 아침 6시부터 졸고 있는 나의 머리로 연습을 해보시고, 수차례 끊어지는 고무줄에 다가워하시면서도 머리를 완성시켰다는 사실은 제게는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땡볕에 모자를 쓰고 가라고 슬리퍼 신고 뛰어오시던 당신이 부끄러웠던 것 밖에 모릅니다. 

세 개의 새싹을 피운 후, 20년 넘도록 당신 인생이라곤 없는 듯 살았던 그녀를 생각하니 눈물이 납니다..요즘 세상과는 다르게 힘들게 살아온 당신의 어린시절 이야기는 '행복'이라는 존재를 전혀 모르고 살아왔을법한 이야기 같습니다. 내가 당연시 여기는 '가족'이라는 존재, 친구라는 존재, 행복, 그것들을 빼앗은 것도 모자라 당신의 이름 석자마저 빼앗았으니...시간을 돌이켜 당신의 삶을 보상해주고 싶습니다. 어느덧 제가 20대가 되어보니 알겠습니다. 20내는 너무 어리고, 그 청춘은 너무나 짧다는것을요. '엄다현' 이라는 이름으로 살기에는 너무나 짧은 듯 싶습니다. 

그런 당신은 누군가의 '어머니', 누군가의 '와이프', 누군가의 '딸'이라 불리며 당신의 일 석자를 불러주는 이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종교가 없지만, 만약 진정 신이 있다면 빌고 싶습니다. 다음 생에는 꼭 당신과 함께 늙어갈 수 있게 해달라고, 당신의 젊음을 지켜주고, 행복이 무엇인지 깨닫게 해주며, 당신의 이름 '혜란'을 원없이 불러주고 싶습니다. '장혜란'이라는 한명의 인간으로서 자기 자신을 위해 살게해주고 싶습니다. 염치없지만, 저라는 존재가 당신께 '악'으로 남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많이 죄송하고 사랑합니다.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당신께 받은 '행복'을 앞으로 천천히 전해드리겠습니다. 엄마의 둘째 딸 다현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