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외아들이 된 장남에게!
형제 중 장남에서 이제 장남 겸 외아들이 된 내 아들아! 그간도 잘 지냈느냐? 지금 우리 집은 온통 꽃 대궐이란다. 산수유 꽃이 피더니 할미꽃이 피고 진달래꽃이 피었다. 향기의 여왕 작약꽃이 반발하고 아카시아꽃이 벌들을 불러모으고 있구나.
그렇지만 전혀 즐겁지가 않단다. 그 이유는 7년 전 네 동생이 산재사고로 하늘나라로 떠났기 때문이다. 그처럼 큰 사고로 근로자 5명이 동시에 숨졌지만 그 후로도 김용균 사고로 김용균법이 생기고 산업안전법이 생겨도 계속해서 산업재해 사고 뉴스가 그치지 않는구나. 뉴스를 접할 때마다 나는 가슴을 쓸어안고 슬픔에 잠기는구나!
자고로 부모가 죽으면 천붕이요, 자식을 먼저 보내면 참척이라고 했단다. 이 세상에서 가장 가혹한 형벌이라는 것을 깨닫고 마지못해 살고 있단다. 연암 박지원 선생은 자식을 잃고 열하일기를 쓰며 상처를 달랬다. 작가 박완서 선생도 참척을 당하고 '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을 쓰며 아픔을 달랬단다. 어디 자식을 잃은 슬픔이 유명인사만 겪는 것은 아니란다.
특히 더 가슴이 아픈 것은 아비가 무능하여 대학공부도 시키지 못하고 전세방 하나도 얻어주지 못한 자괴감이다. 몇 달만 있으면 정규직이 되고 월세방에서 전세방으로 옮길 수 있다던 막내였다.
사랑하는 아들아! 나도 무척이나 정직하게 열심히 살았단다. 투기하지 않고 도박판에 가지 않고 오직 가족을 위하여 일했단다. 그렇지만 유산 한 푼 물려받은 것 없이 도시에서 다섯 식구가 산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더구나.

지하셋방에서 지상으로 올라오는 세월이 십 년이 걸리었다. 무려 31차례 이사를 전전하다가 환갑이 지나서 비로소 전원주택을 지을 수 있었단다. 호사다마라는 말이 있듯 살만하니 네 동생이 우리 곁을 떠났구나.
충격이 너무나 커서 식음을 끊기도 했다. 편한 잠을 자지 못하고 마음속으로는 24시간 막내를 그리며 살아왔단다. 해마다 봄이 오면 신록은 다시 피지만 한 번 간 막내는 소식도 없구나.
동생과 그렇게 의좋게 지내던 너도 무척이나 쓸쓸한 줄 안단다. 먼 인천에서 이곳 양평까지 어김없이 한 달에 두 번씩이나 찾아오는 너의 효성이 참으로 고맙기 그지없단다. 네가 다녀가면 다시 올 날이 기다려진단다.
지금 생각하면 보릿고개 시절 대가족제도가 가장 호시절이라는 생각이 든다. 할아버지부터 손자까지 무려 열 식구가 북적거리며 살던 때가 말이다. 너도 생산공장에서 일을 하니 한 시도 마음이 편치가 않단다. 조심 또 조심하고 안전수칙을 잘 지키기 바란다. 네 엄마는 너를 위해 주야로 기도를 한단다. 70인생 살아보니 가족사랑이 우선이고 화목이 우선이라는 것을 알았단다. 네가 오면 맛있는 산나물과 막걸리로 조촐한 파티를 열자구나. 슬픔은 묻어두고 꽃향기 맡으며 오붓한 시간을 보내자구나!
그럼 만나는 날까지 건강하게 잘 지내기 바란다. -끝-
2021년 5월17일 아비가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