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랑하는 아버지께
아버지 보내주신 붕어즙 잘 받았습니다. 속만 썩이는 사위 뭐 그리 예쁘다고 때마다 보양식이랑 몸에 좋다는 약들을 보내주시는지요. 영특한 둘째 딸이라고 자랑하며 귀해 하시던 아버지의 바람만큼 잘 살아주지 못해 죄송할 따름입니다.
아버지는 무엇이든 아낌없이 다 보내주시는데 저는 제 형편 고려한답시고 손꼽을 만큼 용돈 조금 보내며 생색만 내기에 바빴습니다. 좀 섭섭하더라도 아버지는 저를 이해할 거라고 저 편한 대로만 생각했습니다.
큰 애 초등학교 입학 때 보내 주셨던 축의금과 함께 필통 속에 잘 깎여진 연필들을 선물 받고 얼마나 울었던지요.
일찍 홀로된 어머니를 모시고 4남매 가장으로 학업을 중단하고 무릎이 까이고 손바닥이 물러질 때까지 미싱을 돌리며 가방을 만드셨던 아버지. 개성 강한 5남매를 다독이며 아무리 늦은 시간이라도 손수 연필을 깎아주시며 아버지가 못다 한 공부의 한을 풀어주길 바라셨지요.
그렇게 애지중지하던 자식들이 각자 짝을 찾아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고 아버지 얼굴에 웃음꽃이 핀 것도 잠시, 든든한 맏사위가 암으로 세상 떠나던 날. 아버지는 얼마나 큰 통곡을 하셨던지요.

설상가상으로 저마저 남편과 불화로 친정으로 갔던 날, 시간 지나면 해결될 일이라고 남자들은 다 그렇다며 용서해주라 하셨지요. 그 말을 듣고 오히려 제가 화내며 참으로 부끄러운 투정을 했던 저는 아무래도 당신 딸이 될 자격이 없다고 해야겠습니다.
아버지 저를 용서하세요.
큰 사위 보내고 새롭게 시작한 낚시, 아버지 취미생활인 줄 알았습니다. 물 맑고 좋은 곳 찾아 붕어를 낚아 올리는 것이 붕어즙 때문이라는 것을, 큰 사위 부재가 충격으로 남아 다시는 그런 일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자식들의 건강을 챙기는 깊은 뜻을 뒤늦게 깨달았습니다. 아버지 그 큰 사랑은 평생 제가 갚지 못할 마음의 빚입니다. 이제는 저희가 아버지를 보살펴드려야 하는데 끝까지 못난 불효자라 죄송합니다.
그동안 넉넉히 드리지 못했던 용돈을 보냅니다. 하찮은 돈 몇 푼으로 아버지 은혜 다 갚을 수 없지만 불효한 저희를 용서하시고 못난 둘째 사위와 제가 조금만 더 불효의 빚을 갚을 수 있도록 오래 살아주세요. 아버지, 언제나 건강하시고 감사하고 사랑합니다.
둘째 딸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