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제한 염두 토지사용승낙 안해
여주군, 시·발굴조사 앞두고 무산
양주 불곡산 보루 대부분 사유지…
예산 한정돼 1곳당 최소 4년 '지체'
무너진 석축·등산로 겹쳐 훼손 가속
'술천성' 복원을 위한 여주시의 자체 동력은 소멸됐다.
여주시는 시 승격 전인 2013년 이전 군의회와 손을 잡고 술천성 복원·개발을 강력하게 추진했었다. 그 옛날 삼국시대 한반도의 지도 모양을 바꿀 수 있었던 대규모 전투가 벌어진 술천성의 역사적 가치를 보존하기 위해 각계각층의 힘도 모아졌다.
특히 사적 251호로 지정된 여주 파사성과 이포보를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있는 형태의 술천성을 둘레길 등으로 연결하는 연계 사업 구상까지 세워져 복원계획이 순조롭게 추진됐다.
여주군은 즉각 지표조사 및 학술조사를 진행했다. 당시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신라 시대 초기 석축으로 돌을 쌓아 만든 파사성과 백제가 토축에 흙을 올려세운 술천성이 묘한 대비를 이루며 역사적으로는 물론 관광자원으로 사업성이 크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여주군의 계획은 시굴·발굴 조사를 앞두고 무산됐다. 시·발굴조사를 위해서는 토지주가 토지사용승낙을 해줘야 하는데 강력하게 반대를 했던 것.
당시 토지주는 술천성이 문화재보호구역으로 지정되면 국가지정 반경 500m, 도 지정 반경 200~300m까지 보존지역으로 설정돼 개발이 제한되는 것을 염두에 두고 재산권 피해 등을 이유로 거부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당시 여주군 관계자 등의 수차례 설득에도 토지주는 끝내 거부했다. 현행법상 문화재가 발굴되기 이전 시·발굴조사 단계에서는 토지주가 토지사용승낙을 해주지 않으면 강제화할 수 있는 조항이 없다.
복원계획은 끝내 무산됐고, 현재 술천성으로 지목되고 있는 태봉산 정상 성터 지점과 불과 수십여m 떨어진 중턱에는 전원주택이 한두 채씩 들어서고 있어 술천성 보호는 앞으로 더욱 어려워진 상황이다.
먼 옛날 백제를 멸망시킨 신라와 이를 탐탁지 않게 여긴 고구려의 국운을 건 처절한 전쟁이 벌어졌던 술천성이 아슬아슬 위태롭게 방치되고 있다.
여주시 관계자는 "최초 술천성 복원을 추진했을 때 탄력을 받았다면 지속적으로 예산을 배정해서 복원과 관리가 진행되고 있을 것"이라며 "지정 문화재가 아닌 경우 조사 단계에서 토지주의 반대를 무릅쓰고 자치단체가 강제로 추진할 수 있는 권한이 없어 아쉽다"고 말했다.
또 "국가 또는 도 지정 문화재가 아닌 경우 지자체가 예산을 100% 충당해 복원과 지속적인 관리를 해야 하는 데 열악한 여주시의 예산으로는 쉽지 않다"고 덧붙였다.
양주시 불곡산 보루도 같은 상황이다. 9개의 보루 대부분이 사유지다.
양주시는 재정여건을 고려해 보루가 건립돼 있는 지점의 땅을 매입해 추가 훼손을 막고 싶다는 입장이지만, 산의 특성상 큰 필지로 나뉘어 있어 토지주들이 보루 있는 곳을 사려면 필지 전체를 매입하라고 맞서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실정이다.
양주시는 지난 2005년부터 관내 25곳의 보루 등 산성에 대한 전수조사를 마치고 순차적으로 복원과 정비, 관리를 진행하고 있다. 그러나 한정된 예산과 많은 시간이 소요되는 문화재 복원의 특성상 16년이 지난 현재 보루 2곳의 정비를 마쳤고, 현재 독바위 보루 1곳은 복원과정이 진행 중이다.
시는 역사적 가치와 훼손 정도 등을 고려, 우선순위를 정해 순차적으로 복원, 관리를 진행하고 있지만 보루 1곳의 정비에만 1년에 4억여원, 최소 4년 이상이 소요되기 때문에 당장 불곡산 보루의 정비 계획은 엄두도 못내고 있다.
하지만 시민들은 물론 외지 등산객들도 불곡산 보루 정비의 시급성에 대해 지속적으로 민원을 제기하고 있다.
양주 불곡산(해발 470m)은 적당한 높이와 호젓한 등산로 등으로 수도권 산행코스로 각광받고 있는 곳으로, 등산객들의 방문이 많아질수록 역사의 흔적이 조금씩 지워지고 있는 셈이다.
양주시 최규철 학예사는 "불곡산 보루의 무너진 석축이 등산로와 겹치는 구간이 많아 훼손 등을 우려한 일부 등산객들이 민원을 제기하고 있다"며 "시 차원에서 보루가 있는 곳만 매입하면, 아쉬운대로 훼손을 막고 관리를 할 수 있을텐데, 한정된 예산으로 보루가 포함된 전체 필지를 매입하기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시 차원에서 관내 보루 등 문화재에 대한 복원·관리 계획을 세워 장기적으로 추진하고 있지만 어려움이 있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여주 술천성 등 방치되고 있는 산성을 문화재로 지정하거나, 최소한의 관리 등 보존을 하려면 관련법 개정이 시급하다. 또 산성 대부분이 규모가 커서 문화재 보호구역 지정으로 인한 재산권 침해가 우려되는 만큼 유연한 기준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현행 문화재보호법상 국가문화재로 지정되는 경우 해당 토지매입은 정부 차원의 지원이 가능하나, 지정된 구역을 초과하는 토지매입비 지원 및 강제수용은 불가하다.
하지만 산속에 위치한 산성의 특수성을 고려하면, 대부분이 대형 필지로 구획돼 있어 토지주들은 산성이 위치한 지점만 매도하려 하지 않고 필지 전체를 팔려고 한다. 정부 지원이 가능해 산성 매입이 추진된다고 해도, 자치단체에서 필지 내 다른 부지 매입을 위해 더욱 많은 예산을 추가로 투입해야 되는 셈이다.
특히 문화재보호법상 성터의 경우 성곽의 외곽 경계로부터 50m 이내의 구역을 보호구역으로 지정하도록 해 필지 내 산성이 문화재 또는 향토유적 등으로 지정되면 소유하고 있는 필지 전체가 보호구역으로 지정, 결국 토지주는 재산권 행사를 할 수 없게 된다.
이로 인해 문화재적 가치를 측정하기 위한 지표조사와 시·발굴조사 등 초기 단계에서 토지주들은 거부권을 행사할 수밖에 없고, 산성들은 방치, 훼손되는 악순환이 지자체마다 되풀이되고 있다.
이에 따라 일선 자치단체 관계자들은 지표조사와 학술조사 등 산성의 역사적 가치를 측정하기 위한 기본 조사는 강제화할 수 있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초기 조사가 진행돼야 기본적인 보호 또는 향토유적 지정 등 후속 절차를 논의하거나 진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문화재가 발굴되거나, 지정된다면 현실성 있는 적절한 보상이 진행되고, 주변의 보호구역 지정도 최소화해 토지주의 재산상 피해를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산성의 경우 자연 침하에 의한 훼손이 불가피하기 때문에 이를 막기 위해 전수조사와 함께 산성별 최소한의 보호계획 수립과 사유지이지만 산성 주변 잡목 관리 등을 할 수 있는 근거 마련 등도 필요한 실정이다.
도내 자치단체 관계자는 "방치되는 산성들에 대해 절차를 밟고 예산을 투입해 제대로 보호하면 좋겠지만, 현실적 제약이 많으니 더 이상 훼손되지 않도록 보호할 수 있는 최소한의 정책마련은 필요한 것 같다"며 "추가 훼손을 막아야 당장은 아니더라도 순차적으로 계획을 세워 관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대현기자 kimdh@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