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악기… 고장 난 악기 못 써"
한 문화재단 대표 '소모품'에 비유
"그분들은 사실 몸이 악기입니다. 그런데 악기가 고장이 났는데 고장 난 악기를 그대로 쓸 수는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지난해 12월 경기도의 한 지자체 문화재단에 대한 의회 행정사무감사가 열린 날. '예술단 상임화'와 관련한 이슈가 주요 의제로 떠올랐다.
한 시의원은 문화재단 대표에게 "상임화를 하면 정년 될 때까지 나중에 실력이 부족하든 그것과 상관없이 정년 끝까지 가야 된다는 얘기 아니에요" 등을 질문했고, 대표는 "(단원들이)평가를 거부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며 위와 같은 견해를 밝혔다.
예술인의 몸은 흔히 악기에 비유되곤 한다. 하지만 소모품인 악기를 사람과 동일시할 수 없는 노릇이다. 공식 석상에서 위와 같이 발언한 문화재단 대표 역시 단원의 '기량 유지'가 중요하다는 점을 염두에 뒀을 것이다.
1~2년 주기 '평정제도' 곳곳 갈등
정성평가 큰 영향… 공정성 논란
81.7% '상호평가 필요성' 긍정적
■ 쉬운 해고 vs 기량 향상
문제는 예술단원의 기량을 평가하는 '평정 제도'와 관련한 갈등이 경기도 지자체 예술단에서 끊이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예술단 소속 단원들은 대체로 평정 시스템이 '쉬운 해고'를 가능하게 만든다고 평했다. 반대로 운영 주체 측은 단원들의 실력을 향상·유지시키기 위한 최소한의 평가 절차라고 인식했다.
최근 경기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단원이 해촉돼 노사 간 갈등을 빚고 있는 사례는 양측의 이러한 인식 차이를 극명히 보여준다.
이 단원은 지난 24년간 경기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단원으로 일했으나, 지난달 3일 경기아트센터로부터 해촉 통보를 받았다. 2018년과 2020년 종합평정에서 기준 점수 미달로 연달아 '경고'를 받은 탓이다.
이 단원은 2번째 경고를 받은 이후 3개월이 지나 재평가를 받았지만, 해당 평가에서도 기준 점수를 충족하진 못했다.
노동조합 측은 "평정이 기량 향상을 목적으로 한다면 평정 결과에 따라 부족한 점이 무엇인지 단원들에게 정확히 설명하고 재교육 기회를 부여해야 한다"며 "이런 과정이 생략되다 보니 단원들은 (평정을) '기량 향상'보다 '쉬운 해고'로밖에 느낄 수 없다"고 전했다.
경기아트센터는 기량 발전을 위한 기회를 충분히 부여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아트센터 측은 "2년마다 열리는 종합평정에서 2회 경고를 받은 단원에게는 3개월간의 시간을 추가로 준 뒤 재평가를 하고 있다. 총 4년 3개월의 시간이 부여되고 있는 것"이라며 "센터도 단원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고 있기 때문에 기회를 주려고 하는 것이지, 단순 해촉을 위한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기간과 방법 등은 저마다 다르지만, 지자체 예술단은 통상 1~2년 주기로 단원들의 실력과 근무태도 등을 평가하고 있다.
평정과 관련한 보다 근본적인 갈등 요인은 결과 그 자체보다 결과를 산출하는 과정의 공정성과 투명성이다. 단원들은 객관적 지표를 활용한 정량평가보다 지휘자 혹은 예술감독 등 평가자의 주관이 개입한 정성평가가 평정에 큰 영향을 끼친다고 주장한다.
이는 결국 평가자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지고 있다.
경인일보가 지난달 18~24일 네이버 오피스 폼을 이용해 '경기도 지자체 예술단 노동 실태조사' 설문을 한 결과 응답자의 81.7%(414명)가 지휘자 혹은 예술감독에게도 단원들이 받는 유사한 평가 시스템을 적용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응답자들은 대체로 일방적인 평가의 부당함과 상호평가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평정과 관련해 예술단 내 만연한 불신과 갈등 요인을 줄이기 위한 노력이 아예 불가능한 건 아니다. 재단법인 세종문화회관 노사는 지난 2015년 '예술단 단원평가제도 노·사합의서'를 체결했다.
양측은 단원평가 방식을 '상시평가'와 '다면평가'로 합의했다. '조직성실도' '단체공연활동' '예술적 자기 계발' 등의 평정 지표도 함께 만들었다.
또한, 악장과 지도단원, 단원대표, 노동조합 대표 등이 참여하는 운영위원회를 구성해 평가의 객관성을 높이고자 했다. 평가의 목표는 단원 평가 제도의 본래 목적인 '공연 기량 향상'이었다. → 3면에 계속([경인 WIDE] 비민주적 부실 운영·재단 법인화 갈등 '잇단 잡음'… 처우 '열악')
/배재흥기자 jhb@kyeongin.com
